중국 미학 이해를 위한 기초지식
고대 중국과 미적 인간상
중국 미학을 처음 접했을 때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 이해가 어려웠던 경험이 있다. 때문에 중국미학을 이해하기 위해 내가 필요했던 아주 기초적인 지식들을 정리해 본다.
고대 중국 시기 정리
고대 중국은 크게 세 시기로 구분된다. 그중에서 가운데 위치한 선진시대가 중국미학의 첫 발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은殷왕조 시대를 거쳐 주周시기에 나타난 고대 인문적 제도와 사고의 출현은 중국 최초의 문화적 결정체로서 향후 중국 역사 전체에 걸쳐 원형적 디딤돌이 되었다.
- [미학의 역사] <중국 선진시기에 나타난 미학적 문제와 초기의 사고(박낙규)> 발췌 -
고대중국의 상황
구성원들의 강력한 결속을 위해.
상고대 중국에서는 인간의 행위가 원시주술적 종교의 형태를 띤 종합예술이었다. 그 시대에는 신에게 공물을 바치기 위해 제사를 지냈는데, 이 전례의 궁극적인 목표는 구성원들의 강력한 결속을 위해서였다. 생존하려면 이웃부족이랑 싸워야 한다. 그리고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이 똘똘 뭉쳐야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때의 중국인들에게는 제사가 중요했다. 제사 후에는 잔치를 열어 춤과 노래로 신이 내린 복을 찬송했을 것이라고 하는데, 가악무(노래,연주,춤)로 흥을 돋운 환희의 순간에 그들의 결속은 절정에 올랐을 것이다.
주나라가 유혈혁명으로 은나라를 밀어내다.
사실 은나라시기에는 자연의 마력을 실재의 것으로 믿는 원시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절대자는 곧 신, 자연, 하늘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잔인한 무력으로 은나라를 밀어낸 주나라는 자신들이 이루어낸 집권의 정당성을 확보해야만 했다. 주나라가 필요로 했던 정당화는 두 가지였다.
비록 유혈혁명이었지만 불의의 은왕조를 인간의 힘으로 멸하고 천명을 받아서 주왕조의 개국을 성취함으로써 마침내 인간의 힘으로 천명을 개혁했다.
천명이라는 신의 권한이 왕에 의해 확보되고 계승되었다. 왕에게는 그럴만한 뛰어난 능력이 있다.
주왕조는 이를 증명하기 위해 많은 영웅담을 유포했고 이제 절대자는 자연이 아니라 '왕'이라는 인간이 되었다. 당연하게도 주의 전례는 인간중심이 되면서 세속화의 경향이 나타났다.
세속화의 경향
이 경향으로부터 많은 윤리적, 미학적인 인간의 행태와 의미가 파생되기 시작한다.
덕德이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특수한 능력이 되었다.
덕은 원래 신의 대리자(사제)가 가지는 특수능력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세속화로 인해 덕은 더 이상 신이 주시는 게 아닌 점점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특수한 능력이 되었다. 이러한 영향으로 덕은 인간이 궁극적으로 염원하고 성취해야 할 가치라는 관념으로 변화했다. 또한 왕은 내면을 단련해서 지식이나 도덕을 갖춘 윤리적인 인간상을 갖추고 밖에서는 최고지도자로 군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관념도 싹트고 있었다.
전례의식이 오락으로 변해갔다.
전례는 이미 형식만 되풀이되고 있었다. 전례에서 사용되는 가악무는 신나는 노래와 춤이 되어 오락으로 변해갔다. 이로부터 얻게 되는 감각적 쾌락과 이를 추구하기 위한 미적 세련화의 경향까지, 제례가 잔치의 문화로 바뀌었다.
더 절실해진 집단 통치
귀족들이 제례를 명분으로 재물을 빼앗고 가혹한 통치를 일삼기 시작했다. 이렇게 각종 제사들이 변질되고 문란해지는 반면에 아이러니하게도 제사의 형식은 더 엄격해지는 이중적 경향이 나타났다. 이는 곧 국력이 쇠퇴함을 뜻한다. 집단 통치의 필요는 더 절실해졌다. 고대부터 민심을 파악하기 위해 음악을 사용했던 중국이었기에 민심의 흐름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음악이 유력하게 주장되었다. 순자는 이런 전통적 관념을 더 체계적으로 실증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 노력하기도 했다. 당시의 국가조직의 면에서 볼 때 음악의 기능이 막중했던 것이다.
주나라의 쇠퇴
주나라가 쇠퇴하면서 전쟁이 500년 넘게 지속되었다. 이 혼란은 고대문화를 피폐하게 했고 고통 속에서 다양한 사상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 나타난 사상들은 대부분 인간의 본성 같은 단편적인 사고의 수준에 머물러있었다. 서양미학과 마찬가지로 중국미학에서도 미의식이나 예술행위에 관한 언급이 많은 이야기 속에서 단편적으로 나타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그런 언급 속에서도 인간의 본질에 대한 깊은 생각이 담겨있었고 이후 중국의 사물관, 자연관, 예술론의 형성에 밑거름이 되었다.
중국의 미적 인간상
공자는 완전하다고 믿었던 주나라의 쇠퇴를 참담한 마음으로 개탄하면서 새로운 인간형의 출현이 필요함을 깊이 자각했다. 이를 시작으로 '군자'와 '진인'이라는 미적 인간상이 출현했다. 미적 인간상이란 최고의 인간, 인간이 바라는 경지이다.
군자(君子)
군자란 내면의 덕과 외면의 언행이 조화롭게 일체 된 사람으로 가장 이상적인 사람이다. 본래 관직을 가진 귀족을 의미했지만 공자가 이 단어에 인문적인 의미를 새로이 부여했다. 기준이 매우 까다로운데, 그 조건을 간단하게 나열해보도록 하겠다.
자기 수양과 공부를 충분히 해야 한다.
학문적인 공부도 열심히 해서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언행이 일치해야 한다.
말이 행동보다 앞서지 말아야 한다.
항상 위엄을 유지하고 당당하게 살아야 한다.
그러나 고지식하지는 않게 거절할 것은 거절할 줄 알아야 한다.
역사의식과 사회정의에 투철하고 세상사에 적극 관여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세상사의 애환을 초월한 듯이 살아가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군자는 자연의 아름다움까지도 즐길 수 있어야 하는 사람이다.
질이 문보다 지나치면 조야하고, 문이 질보다 지나치면 번지르르하다. 문과 질이 알맞게 어울린 이후에 군자라고 할 수 있다. - 논어
진인(眞人)
진인은 장자에 의해 그려진 또 다른 미적 인간상으로 군자와는 대립적 위치에 놓인다고 할 수 있다. 장자는 주나라가 쇠퇴하던 시기의 전쟁통 속에서 흉측한 몰골의 장애자가 오히려 자신의 이름을 온전히 보존하면서 파멸을 면한 모습을 보았다. 그 장애자는 나름대로의 자유와 행복을 구가하고 있었다. 그걸 본 장자는 인간세상의 틀을 넘어서서 전혀 낯선 세계를 응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도는 오히려 텅 빈 곳에 있다고 선언한다. 이것이 바로 진인이다. 진인이란 마음을 텅 비움으로서 이 세상을 자유롭게 살아감과 동시에 아무도 그를 해치지 못한다. 군자는 많이 배우고 많이 행하며 자신을 지키는 존재라면, 진인은 마음을 텅 비우며 자신을 지키는 존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