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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도르노 Apr 29. 2022

건축과 음악의 조화

이아니스 제나키스 - metastasis

'현재의 음악'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본 기억이 있는가? 필자는 과거의 음악만 향유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다. 대중음악밖에 없을까? 클래식 음악을 전공하고 있던 학생 때, 지금 만들어지는 이 분야의 음악이 궁금했다. (사실 공부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기도 했다.) 솔직히 맘 편하게 듣고 있을 만한 음악들은 아니다. 하지만 알면 알수록 더 빠져들게 되는 것이 바로 현대음악이다. 고전음악 시기는 균형, 조화, 형식을, 낭만 시기에는 감정의 표출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이후의 음악은 '모더니즘'이라는 경향이 등장하면서 급변하기 시작했다. 큰 전쟁이 있었던 혼란한 시기였던 만큼 다양한 음악 사조들이 등장한 것이다.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움, 독창적이 미의 척도가 되었다. 이 글에서는 그 다양한 음악들 중 '이아니스 제나키스'의 음악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유튜브에 검색하면 감상이 가능하다.


이아니스 제나키스(Iannis Xenakis, 1922~2001)
제나키스

 루마니아에서 태어났고 어렸을 때부터 그리스에서 살았다. 그 탓인지 그의 작품은 대부분 그리스어로 되어있다. 아테네 공과대학에 건축전공으로 입학했고,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프랑스 파리로 넘어갔다. 참고로 영문 이름의 철자가 'X'로 시작해서 그런지 한국어로 번역했을 때 크세나키스, 세나키스 이 두 가지로 불리기도 한다.

 프랑스에서 작곡 스승을 찾으려고 했지만 계속 거절당했다고 한다. 그러던 도중 메시앙(Olivier Messianen, 1908~1992)을 만났다. 메시앙은 제나키스의 음악적 비범함을 알아보고는 보통의 작곡학도에게는 절대 하지 않았을 조언을 했다.

"나는 즉시 제나키스의 비범함을 발견했습니다... 나는 화성학과 대위법을 다시 공부하지 말라는 조언을 했습니다. 이미 나이가 30세이고, 그리스인이며 건축가이고, 고등 수학을 공부했다는 행운을 타고났으니, 이 장점을 음악에 활용하라고 조언했습니다."

이에 많은 영향을 받았는지 제나키스의 음악은 건축 이론이나 수학적 이론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매우 어렵고, 연구하기에 까다롭다.


Metastasis(1955)
메타스타시스 악보(유튜브 jarkkkoo 채널)

이 것이 이 곡의 악보이고 한 화면에 모든 것이 담겨있다. 매우 생소한 이 형태는 '도형 악보'라고 부른다. 이 곡은 제나키스가 도형 악보를 처음 만들어낸 곡이다. 매우 단순하게 음악적 아이디어를 악보로 옮겨 적고 싶다는 생각으로 컴퓨터를 통해 도형 악보를 만들었다. 하지만 전통적인 악기들로 연주가 가능하기 때문에 연주자들에게는 전통 악보를 제공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형 악보를 사용한 이유는 너무 복잡한 총보보다 도형 악보가 자신의 의도를 전달하기 더 수월했기 때문이다. 상단에 위치한 네모칸을 통해 이 곡은 4개의 덩어리로 구성되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하단의 텍스트들은 복잡성, 혼란 등의 단어를 사용해 각 덩어리의 특징을 알려주고 있다.


2차 세계대전을 겪었던 제나키스는 전쟁 소리에 대한 기억과 아인슈타인의 관점에서 영감을 받아 이 곡을 탄생시켰다. 전쟁의 소음 속에서 유일하게 구별할 수 있었던 총소리가 담겨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작곡처럼 마디로 따졌던 시간 측정이 아닌, 질량, 밀도 등을 변경하며 시간의 변화에 의존하며 진행된다.

 첫 섹션

한 점에서 시작해서 점점 퍼지는 형태가 보인다. 작곡자는 이 부분이 이 곡 전체에서 유일하게 안정적이고 전통적인 조화의 순간이라고 말한다. "연속성을 깨트리지 않고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지에 관심이 있었다" 필자는 이 부분에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떠올릴 수 있었다.

 두 번째 섹션

악보로만 봐도 이전 섹션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단 텍스트에 'Soli'라고 적혀있다. 앞에서는 다 함께 소리 내서 만드는 합이 중요했다면, 이제는 악기 하나하나가 중요해졌다는 뜻이다. 글리산도와 트레몰로 주법을 사용하여 음색을 변경하기도 한다. 악기가 많아지고 오케스트레이션이 확장되면서 대규모 시위가 연상되기도 한다. 타악기들과 현악기에서 사용된 둔탁한 피치카토, 꼴레뇨 주법은 반대세력이 다가오는 발이나 무기를 연상하게 한다.

세 번째 섹션

앞과 비슷해 보이는 세 번째 섹션은 대규모로 치러지는 전투의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다. 악기의 분류 중 가장 강력하게 느껴지는 금관악기를 사용해서 혼돈을 강조했다. 작은북과 우드블록으로 기관총 소리를 내고 있고, 현악기는 다양한 주법의 혼합으로 혼란스럽게 하며 분노, 공포, 고통의 목소리를 의인화한다.

마지막 섹션

악보가 조금 잘렸지만 끝으로 갈수록 하나의 음을 향해 가고 있다. "천천히, 마을에 침묵이 돌아옵니다." 마지막 섹션을 요약할 수 있는 문장이다. 전쟁이 끝나고 마치 고요를 찾아가는 듯하다. 마지막 음정인 G#이 격렬하게 떨리면서 무로 멀어진다고 표현한다.


건축과 음악

더 재미있는 사실은 르 꼬르뷔제와 공동작품으로 제작한 건축물 '필립스관'에 메타스타시스의 중심이 되는 중요한 이론이 동일하게 적용되어있다는 점이다.

필립스관
메타스타시스 309~314마디 악보

두 이미지 사이의 연관성을 찾을 수 있겠는가?

"필립스관의 쌍곡 포물면이나 원추면으로 이루어져 있는 직선들의 복잡한 교차는 결국 메타스타시스의 글리산도의 집합체로 연결된다."

건축을 모르는 필자이지만 이 문구를 보고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음악의 내용적 측면이나 구성뿐만 아니라 건축적인 측면까지 놓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통해 제나키스의 천재성을 실감할 수 있었다.


어렵다고 소문난 제나키스의 음악을 간단하게나마 알아보는 시간이었다. 이 글을 읽고 음악을 꼭 들어보길 바란다. 모든 것을 알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도 상관없다. 미지의 음악에 대해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그 순간이 현대음악에 빠져드는 시작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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