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tella Feb 28. 2021

안녕, 나의 프리지아

2021년 2월 20일. 프리지아 향으로 기억될 나의 졸업식

교정에서 엄마가 건네준 꽃다발은 프리지아 향으로 가득했다. 유독 꽃을 좋아하고 그중에서도 봄을 맞이하는 프리지아를 좋아하는 엄마는 오랜만에 돈을 내어 꽃을 샀다고 이야기했다. 아마, 엄마가 사주는 꽃은 이게 마지막일 거라는 수식어도 빼놓지 않았다.

코로나 때문에 나의 졸업식은 존재하지 않았다. 부산에서 올라온 부모님과, 함께 연세대학교를 졸업하는 오빠와 교정에서 수많은 사진을 찍는 것으로 졸업을 일갈했다. 그러나 졸업 시즌 주말의 학교란 내 생각보다 더욱 붐비는 곳이었고 새삼스럽게 이제 나의 소속은 학교가 아님을 자각한 것은 집에 와서 프리지아를 꽃병에 꽂을 무렵이었다.


당신의 앞날

프리지아의 꽃말이다. 당신의 앞날. 졸업 전에 미리 입사한 나와 약사면허를 취득한 오빠, 은퇴를 앞둔 아빠, 인생 2막의 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엄마가 내가 사랑하는 식당에 둘러앉았다. 음식의 맛에 대해 논하다가 우리의 앞날을 이야기하며 문득 프리지아의 꽃말이란 우리 가족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는 것임을 상기했다.


'대학교 졸업'이라는 명목 하에 모였으나 우리는 모두 각자의 시작을 준비하고 있었다. 오랜 직업생활을 내려놓을 준비를 하는 아빠와 평생을 해오던 일을 과감히 포기하고 50이 넘어 사업을 시작한 엄마, 그리고 대학교라는 평범한 문틀을 넘어선 오빠와 나. 졸업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을 뿐 시작이란 모두에게 같은 것이어서 긴 대화는 오래도록 이어졌으나 묵묵히 서로의 시작을 응원할 뿐 평가란 일체 꺼내지 않는 따뜻한 시간을 보냈다.



대학교 졸업. 그토록 바랐던

삶의 목표가 대학교 졸업이던 시기가 있었다.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0월에 수술을 한 이후 조기졸업 요건인 성적을 채우지 못할까 봐 전전긍긍한 시간들이 있었다. 그토록 바라던 목표를 이루면 내게는 무엇이 남을까 기대와 걱정을 했으나 내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나는 평범하게 친구들을 만나고 블로그에 글을 쓴다. 매일 밤에는 약간의 독서를 하며 아침에는 커피를 내려 마시며 스피커로 음악을 듣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삶에 규칙이 생겼다는 것이다. 해가 뜨기 전 집을 나서며 귀에 이어폰을 꽂는다. 매일 아침 그날을 간직하고 싶은 노래 한 곡을 선택하고 반복해서 들으며 회사로 간다.


교육, 여전히 내 삶의 방향을 지칭하는

최근 공부하고 있는 것들

인테리어 업계를 선두하고 있는 곳에서 교육을 담당하게 되었다. 내가 가르치고자 하는 대상이 중고등학생에서 성인으로 달라진 것 외에는 큰 차이가 없는 삶이다. 대신 잘 알지 못하는 분야를 가르쳐야 함을 알기에 퇴근 후, 주말이면 인테리어를 공부하고 설계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회사원다운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공부한다.


입문교육 당시 인재개발팀 팀장님께서 해 주셨던 말씀이 뇌리에 박혔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이제 프로입니다. 프로가 학생과 다른 점은 돈을 받고 공부하고 일한다는 것입니다."

일관성 있게 삶의 장인성을 추구해 온 나에게 직장인으로서 프로정신을 갖는 것은 더욱 중요한 일이다. 더욱이 인생의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방향을 제시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수선화. 자아도취

선생님이 꿈인 친구 K는 내게 수선화를 선물했다. 노란 빛깔이 고와서 사온 꽃이라며 이름도 모른다고 했지만, 꽃말을 검색한 이후 약간의 섬찟함을 느꼈다.


"자아도취"

수선화의 꽃말이다. 물에 비친 자신의 자태가 너무 고와 감상하다가 금세 굽어버린다는 수선화. 교만을 경계하라는 뜻이기도 하다.


두 종의 노란 꽃이 나의 앞날을 상징하고 있다. 당신의 앞날을 응원한다는 엄마다운 메시지와, 부러 그런 것은 아니나 자아도취를 경계해야 한다는 K의 메시지. 항상 어떤 사람이 되어야 좋을지 고민한다. 아마 내 고민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지금까지의 삶이 그러했듯 졸업 같은 특별한 이벤트가 없더라도 항상 새로운 시작 앞에 설 것이고 선택의 기로에서 헤맬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항상 좋은 길을 택하지는 못하더라도 옳은 길을 택하는 삶. 그것이 현재의 지향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와의 대화에서 더 많은 것을, 나는 배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