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누군가의 무지에서 촉발한 '정상성'에 대한 마음 편한 오해는 타인에게 얼마나 폭력적인가. 그리고 나는 그러한 폭력을 아무렇지도 않게 휘두르고 있지는 않았는가. 그런 생각들로 마음이 불편한 요즘이다. 회사를 나온 이후 생각할 시간이 생기면서 내 삶은 오히려 불편해졌다. 아이들과 주에 두 번씩 독서논술 수업을 하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다양한 책들을 읽게 되었고 면접 강사로서 면접 문제를 만들기 위해 기사를 읽어보면서 불편한 사회를 마주하게 되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그런 불편함에서 유리되어 나의 생존에 급급한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이런 책을 읽을 때면 부끄러운 마음에 휩싸이고는 한다.
2. 말, 말, 말들.
나도 그러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겠지만 유독 타인의 삶을 평가하고 재단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고등학생 때부터 꽤 튀는 성적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하지도 않은 말들이 수면 위로 튀어올라와 마치 사실인 것처럼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전교 1등을 한다면 교무실에 떡 정도는 돌려줬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던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학교 선생님들에게 이유 없이 욕을 먹는 일이 잦았다. 물론 그분들은 지금에 와서 나를 '이기적인 학생'이라고 마음 편하게 기억하고 있을 테다.
내가 교육학을 전공하게 된 데에는 기존 교육자들에 대한 회의감이 큰 역할을 했다. 일부 교사에 국한된 이야기지만 그분들이 생각하는 '정상적인 전교 1등의 가족'이란 이러해야 한다.
아버지는 건실한 회사에 다니고 있거나 전문직일 것이다.
어머니는 가정주부로서 학교에 와서 학교 운영위원으로서 일을 도울 것이다.
학생은 고분고분하고 순종적일 것이다.
이런 stereotype은 어디에서 파생된 것일까? 나는 저 중에서 하나도 해당하는 바가 없었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 형편은 말도 못 하게 어려웠고 어머니는 혼자서 다섯 식구의 살림을 꾸리느라 바빴다. 아버지와 오빠는 아팠고 아무도 내게 신경을 쓸 여력이 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감히 엄마에게 '학교에 떡을 돌려야 해요.'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 글쎄, 다시 돌아간다 해도 나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3. 연구 결과에서 비껴나 있는 삶
내 삶은 기존의 연구 결과에서 보면 분명한 이상치(outlier)다. 부모의 교육 및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자녀의 수능성적 1~2등급의 비율이 높고 상위권 대학에 진학할 가능성도 더 높다고 하는데 나는 그런 연구 결과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는 사람이다. 우리 부모님의 소득 수준이 높았는가? 그것도 아니고, 교육 수준이 좋았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내가 계속 공부를 할 수 있게 도와준 것은 잘 구축되어 있었던 장학금 제도와 헌신적인 은사님 한 분의 가르침 덕택이었다. 아무리 공부해도 영어 성적이 오르지 않는 나를 위해서 사비를 털어 영어 과외를 할 수 있게 도와주셨던 그분의 태도가 내가 그래도 한 명 분의 몫은 하고 살도록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거의 마지막으로 고등학교에 학비를 냈던 세대인데, 나 같은 학생들이 학업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학비를 지원해 주었던 삼성 꿈장학재단에도 이 자리를 빌려 심심한 감사를 전하는 바다.
4. 이중성 - 사교육자인 나는 사교육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나는 경제적 형편 때문에 사교육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자랐다. 그래서 혼자서 공부할 방법을 어떻게든 찾아야만 했고, 어쩌다 보니 그렇게 공부했던 경험을 살려서 밥벌이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일을 하다 보면 문득문득 불편한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정작 나는 사교육비를 쓰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인터넷 강의도 무제한 패스를 끊어서 겨우 들었으면서 사교육에 올인해도 될까 하는 생각을 하고는 한다.
책 '이상한 정상가족'에 따르면 2016년 기준 통계청에서 제시한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25만 6,000원이라고 한다. 사교육 시장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해하겠지만 이는 단과 한 과목도 듣지 못하는 금액이다. 당연히 최근 기준은 더욱 올랐을 것 같아 2021년 기준을 다시 찾아보았다. 2021년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36만 7,000원이다.
2021년 월 최저임금이 1,822,480원이었음을 감안해 보자.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서 '최소한의 사교육'을 시킨다고 하더라도 월급의 1/4 가까이가 삭제되는 셈이다. 여기에 식비, 공과금, 월세 등의 금액까지 제하고 나면 '정상적으로' 가정이 작동하는 것이 가능하기는 한 것일까?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느꼈던 기시감은 아직 유효하다. 교육의 평등을 고민하며 교육학과에 들어온 내가 교육의 불평등을 부추기는 일을 한다. 그리고 내가 하는 일은 비용을 받고 최상의 교육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며 이 일을 통해서 공교육에서 채우기 어려운 부분을 해소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내가 하는 일은 '저출산'을 초래하는 '불평등'의 근원이자, '계층 사다리'를 끊어내는 일이다. 마음 편히 살면 좋겠지만 나라는 인간은 어떻게 된 것인지 이런 고민의 연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5. 나는 혐오에서 얼마나 자유로운가
좋은 책을 읽을 때면 자기반성이 자연스럽게 따라오기 마련이다. 태생이 이중적인 인간인 탓인지 당장 지난 글에서 돈을 좋아하는 것이 왜 잘못인가 이야기해 놓고 교육이 야기하는 사회의 불평등을 해결할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을 향한 폭력적 시선에 직접적으로 잘못되었다고 저항하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인지 또다시 고민한다.
이 책에서는 '정상가족'이라는 프레임의 해체를 현대 사회 문제 해결의 출발점으로 보고 있다. 엄마와 아빠, 차 한 대, 서른세 평의 아파트 한 채 정도가 평균이 되는 삶에서 벗어나 더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받아들이는 것이 문제 해결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미혼모를 향한 우리의 시선은 얼마나 폭력적인가. 다문화 가정을 향한 우리의 시각은 얼마나 폭력적인가. 장애인 가족 구성원이 있는 가정을 향한 우리의 시선은 얼마나 폭력적인가..
나는 도무지 이런 생각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내 삶의 안온함만 걱정해도 되는데 배가 부르기 때문인지 계속 이런 문제로 시선이 간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꾸준히 교육봉사를 하다가 코로나라는 핑계로 중단했었는데, 이제 다시 시작할 때가 되었나 싶기도 하다. 마음이 복잡한 날이다.
6. 볕 좋은 날의 카페에 앉아 팔자 좋게 책을 읽으면서 나의 역할을 고민한다. 내 주변에는 멋지게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참 많다. 최근 가장 존경하는 선생님은 나처럼 허울 좋은 말만 반복하는 대신 자신이 맡고 있는 과목에서 독보적인 교재를 만들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정말 합리적인 가격으로 양질의 교재를 공급함으로써 윤리 과목 수험생들과 학교 선생님들을 돕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계신다. 말 그대로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면서도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그분을 따라서 내가 만든 자료들을 블로그와 카페를 통해 공유하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사교육 시장에서는 매우 비싼 돈을 받고 파는 자체 교재지만 기왕 만든 것이니 나누어 보기로 했다. 가끔 학생들이 네이버 쪽지로 장문의 감사인사를 보내준다. 그런 것을 보면서 아, 그래도 최소한 사람답게 살고는 있구나 한다.
앞으로 5년 뒤, 10년 뒤의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있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것은 적어도 내가 어느 정도 여유가 있어야 다른 사람을 볼 여유도 생긴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고민하는 사람으로 살아야지, 그런 생각을 하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