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최근 부읽남 채널을 꽤나 열심히 '듣고' 있다. 강사라는 직업 특성상 여기저기 옮겨 다닐 일이 많은데 운전 시간이 버려지는 것이 아까워서 듣기만 해도 공부가 되는 경제 유투브를 찾기 시작한 것이 부읽남에 빠져든 계기이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는 내가 태어난 해인 1997년에 나온 책이다. 2000년대, 즉 내가 유치원에 들어갈 즈음에 이 책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시절 내 부모님이 이 책을 읽으셨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린 마음에 책의 제목만 듣고서 돈이 모든 가치를 대변한다고 생각하는 잘못된 책이라고 생각했던 기억만큼은 생생하다.
어린 시절의 나는 돈에 묘한 기시감을 갖도록 교육받았다. 부자들은 나쁜 사람들이며 부정한 방식으로 부를 축적했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재산은 당연히 나눠야 하는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살았다. 그런 내가 부자에 대한 생각을 바꾼 것은 스무 살이 되고 처음 과외를 시작하면서부터였다.
2. 내가 학교를 다니던 때만 해도 학교라는 사회 속에서 빈부격차를 체감하기는 어려웠다. 스마트폰은 고등학교에 들어갈 무렵에야 보급되기 시작했는데 그 시절만 해도 인스타그램이 막 도입될 때였던 지라 나는 공부하느라 SNS를 전혀 하지 않았고 다른 친구들이 어떻게 사는지 관심도 없었다.
그러다가 처음 과외를 시작하면서 큰 충격에 빠졌다. 당시 어린 나이지만 학원에서 일했던 것과 교육을 전혀 모르지만 사범대생이라는 장점이 더해져 흔히 말하는 강남 8학군에서 과외를 하게 되었다. 그때 처음으로 인터넷에서만 보던 집들에 들어가 보았고 그들의 삶의 방식을 보게 되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한 학생이 있다. 학교에서 걸어서 30분 거리에 본가가 있는데도 통학에 드는 시간이 아깝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10분 거리에 평일에만 쓰는 집을 하나 더 장만했었다. 그 친구는 그렇게 공부해서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대학에 들어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집에서 나를 과외 선생님으로 선택했던 이유는 스물한 살 대학생의 풋풋함으로 공부 자극을 줄 수 있기를 기대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그때 느낀 것은 '돈 많은 사람들은 나쁜 사람이 아니다.'라는 것, '부모의 지원이 있다면 아이에게 더 나은 교육 여건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에는 버스로 편도 1시간 가까이가 걸리는 거리에서 통학하는 친구들도 많았던 것을 상기해 보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돈이 많으면 좋은 거구나, 처음으로 깨달은 순간이었던 것 같다.
3. 어제 순대국밥 집에서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를 테이블 위에 올려 두고, 식사를 하려 하는데 가게 주인아주머니께서 "이런 책 다 필요 없어! 부자가 되는 게 뭐가 중요해!"라는 말을 하셨다. 이런 책을 읽는 사람은 '나쁜 사람들'이라고 했다. 거짓말이었으면 좋겠지만 사실이다. 웃어넘기려고 노력하기는 했으나 의문들이 생겼다. 결국 그녀도 돈을 위해서 노동을 지불하고 일을 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돈이 나쁘다.'는 그녀는 왜 노동으로 재화를 창출하려 하는가? 천천히 읽으려 했던 책을 빠르게 완독 한 데에는 이런 궁금증이 한몫했다.
4. 우리나라 사람들은 돈을 참 좋아한다. 그런데 대놓고 돈을 좋아한다고 하면 속물 취급하는 분위기가 활성화되어 있다. 그런데 통계 지표는 어떤 이야기를 하는가? 2020년 코로나가 터진 이후 증권계좌가 폭증한 것만 보더라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돈을 참 좋아한다는 것이 보인다. 한 명이 평균 4개의 계좌를 갖고 있다고 어림잡더라도 2021년 6월 기준으로 지나가는 한국인 4명 중 한 명은 주식투자를 하고 있거나 할 의사를 갖고 있는 셈이다.
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는 어떤가? 나는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서점에 방문해서 최신 출판 동향을 파악하려고 노력하는데 그때마다 베스트셀러에 위치해 있는 것은 항상 부동산 투자, 주식투자, 돈과 관련된 책들이다. 이제는 돈을 좋아한다고 당당하게 말해도, 돈을 많이 벌고 싶다고 말해도 되는 때가 되지 않았나.
5. 내가 받은 6년의 초등교육, 6년의 중등교육, 4년의 고등교육에서는 '돈을 좋아한다'라고 말하지 않는 법을 가르쳤다. 그런데 나는 돈을 좋아한다. 그것도 아주 많이. 그런데 사람들은 돈을 좋아하는 사람을 보고 '돈만 밝히는 속물'이라며 비난하고 나선다. 그런데 그들이 말하는 성공의 기준은 무엇인가? 어린 시절부터 나는 열심히 공부해서 대기업에 들어가 안정적인 직장 생활을 하라는 조언을 들었다. 그런데 그런 삶이 행복했는가 하면 아니었다.
나쁘지 않은 성적으로 대학을 조기 졸업했고 신입사원 치고는 높은 연봉을 주는 대기업에 들어가 시키는 일을 했으나 정작 손에 쥐는 돈은 월세와 생활비를 제하고 나면 얼마 되지 않았다. 그래서 주식투자 책을 탐닉하고 사회초년생을 위한 재테크 책을 미친 듯이 읽었지만 결국 내게 남는 것은 차라리 내가 나고 자란 지방에 남아서 공기업을 가고 부모님 댁에 살며 돈을 아낄 걸 그랬다는, 후회뿐이었다.
퇴사한 지금은 훨씬 자유롭게 살고 있다. 날이 좋을 때면 한강공원에 가서 책을 보고 이렇게 글을 쓴다. 남들이 일하는 시간에 놀고, 남들이 퇴근한 시간에 일을 시작한다는 직업상의 한계는 존재하지만 회사에 다닐 때보다는 훨씬 좋다. 그렇다고 마냥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매번 불안정성이라는 보이지 않는 불안감에 시달린다. 당장 다음 달에 이번 달과 같은 소득이 유지될지 알 수 없고 내가 한 번 아프기만 하면 사업은 끝이라는 망령도 뒤를 졸졸 따라다닌다.
하지만 그럴수록 불안감에서 벗어나서 사고방식 자체를 바꾸려 애쓰고 있다. 오늘처럼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같은 책을 읽는다거나 돈을 많이 번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