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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lla Oct 11. 2022

어떤 플렉스

나의 글쓰기는 어디에서 비롯되었나

오늘 구입한 책들

교보문고에서 손길이 닿는 대로 책을 집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것도 플렉스 아닌가?'


이번 글은 어린 시절부터 책 읽는 재미를 알게 해 준 강여사에게 전하는 감사인사이기도 하다. 어찌 되었건 좋아하는 일로 밥 벌어먹을 미약한 재능을 물려주신 그녀의 교육관 덕에 먹고살고 있으니.


나의 읽고 쓰기의 역사

매우 검소한 생활을 하는 나의 모친이었으나, 그녀가 돈을 아끼지 않는 곳이 딱 하나 있었다. 바로 나와 오빠의 '교육'과 관련된 것. 어린 시절 그 흔한 브랜드 운동화나 메이커가 달린 가방도 마음대로 사지 못하게 했었던 그녀가 흔쾌히 지갑을 열었던 것은 '책'을 구매할 때였다. TV를 없애버린 부친의 혜안 덕택인지 집에 놀거리라고는 책장 가득 꽂힌 책이 전부였고 어디선가 생겨나는 강여사의 북 컬렉션을 먹고 나의 글쓰기는 무럭무럭 자랐다.

내가 초등학생이 되었을 무렵, 강여사는 하도 책을 사 달라고 조르는 나 때문에 모종의 결심을 했던 것 같다. '상을 하나 타 올 때마다 원하는 책을 사주겠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그렇게 하면 지출이 줄어들 것이라 예상했겠으나, 오기가 발동한 나는 학교에서 열리는 대회란 대회에는 기를 쓰고 참여했고 자랑스럽게 상을 받아 올 때마다 그녀는 기쁨과 당혹스러움이 어린 표정으로 나를 데리고 동네 서점에 가고는 했다. 생각해 보면 참으로 재미있는 기억이다.


그렇게 책을 좋아하던 꼬맹이는 독서 조숙아가 되었다. 그때는 독서 조숙아도 생소했던 시절이었는데 학교 사서 선생님께 학교에 있는 책들로는 더 이상 성에 차지 않는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너는 독서 조숙아구나.'라는 말씀을 해주셨던 기억이 난다. 어쩌면 그것을 나름의 훈장쯤으로 삼았던 것 같기도 하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되었을 무렵 웬만한 '어른들이 읽는 책'은 척척 읽어내는 상태가 되었고 더 이상 읽을 책이 없어 아이북랜드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매주 책을 3권씩 빌려주던 배달 시스템이었던 것 같다)도 졸업하게 되었다. 그렇게 독서에 갈증을 느끼던 찰나에 우연히 문예창작 영재에 합격하게 되었고 5년 간 친구들과 행복한 글쓰기를 하면서 그 속에서 무럭무럭 자랄 수 있었다.


글쓰기로 밥벌이를 하게 되다

내 글쓰기의 8할은 초등학교 고학년~중학생 시절에 잉태되었다. 매주 최소 2~3편의 글을 억지로라도 써 나가고 친구들과 비평하는 시간을 통해서 학교의 공교육 과정에서는 채우기 어려웠던 문학적 글쓰기를 배울 수 있었고 글에도 사람의 색깔이 녹아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후 입시에 찌들어 있었던 고등학교 시절, 재수생 시절을 거쳐 수능이 끝난 다음 날부터 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내가 맡은 일은 '자기소개서 첨삭'과 '면접 대비'. 지금 생각해 보면 갓 합격증을 받아 든 스무 살짜리가 무슨 능력이 있었겠나 싶기는 하지만 그때의 학생들과 아직까지도 연락이 이어지는 것을 보면 서툴긴 했어도 진심을 다했던 것 같다.


나의 N잡 : 국어강사, 독서논술 강사, 입시 컨설턴트

지금의 내 직업은 쓰리잡 정도 된다고 할 수 있겠다. 여기에 더해서 가끔 책 교정 보는 일에다가 간혹 들어오는 글쓰기 첨삭까지 합한다면 트렌드에 민감한 N잡러라고 할 수도 있으려나. 근래의 일상은 거의 책을 읽는 것, 책을 쓰는 것, 국어 지문을 읽는 것에 맞춰져 있다. 매일매일 최소 한 권 이상의 책을 읽는다.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양이지만 그것이 힘들지 않고 재미있다. 회사에 다닐 때는 버려진다고 생각했던 나의 잡다한 지식들이 학생들을 만나게 되면 꼭 한 번은 쓰인다.

최근 읽는 책들.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나의 플렉스는 '책'에 철저하게 맞춰져 있다. 거의 이틀에 한 번 꼴로 교재 연구에 필요한 문제집이나 학생들과 독서논술 수업을 하기 위한 책을 사는 듯하다. 읽는 책의 '형태'도 다양해서 종이로 된 책뿐만 아니라 이북리더기로 읽는 e-PUB 버전, 태블릿으로 읽는 PDF 버전까지 분야를 넘어 책의 형태도 가리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활자 중독의 길로 가고 있는 지금의 삶이 퍽 즐겁다.

한강 둔치에서 수업과 수업 사이에 책을 읽으며

지금에 와서 읽고 쓰기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무작정 글을 읽는 것이 좋았기 때문에 '책을 읽기 싫다.'는 감정이 어떤지는 정확히 알기 어렵겠다. 하지만 그런 내게도 잘 읽히는 글과 그렇지 않은 글은 극명하게 갈린다. 오늘의 글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글일까? 잘 읽히는 글일까, 아니면 난해하고 중구난방 한 글일까? 목적에 맞고 잘 읽히는 글이 좋은 글이라고 하지만 모든 글이 좋은 글이어야 하는가 하면 잘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여전히 책에 아낌없이 FLEX 하는 중이고, 더 배워야 하고, 더 다듬어야 하는 초보 글쟁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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