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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lla Sep 14. 2021

질투는 나의 힘

일상에 젖어드는 감각이란

최근 책 읽기를 다시 시작했다. 이직 후 일상이 꽤나 안정되었고 이제는 일과 삶의 균형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도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출근 전 유튜브에서 좋아하는 경제 방송을 찾아보고, 퇴근 후에는 분위기 좋은 카페에 앉아 책을 읽는다. 확실히 예전보다 안정된 삶이다. 업무에 체계가 생겼고 그 안에서 내가 해내야 할 역할도 찾아가고 있다. 어쩌면 내가 바라던 것은 일정하게 흘러가는 시간 감각이었던 것 같다.


퇴근 후 곧바로 찾아든 홍대의 카페에서

최근의 나를 움직이는 힘의 8할은 질투다. 이직을 꿈꾸던 시기에는 회사만 옮기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줄 알았는데 태생이 욕심이 많은 나는 다른 사람들의 삶을 보면서 꾸준히 내 삶에 적용할 수 있는 특질을 찾고 있다. 예전의 회사에 300% 이상의 노력을 쏟아부으면서 몰입해 본 결과는, 물론 8개월 간의 기록이기는 하나, 나는 회사에서 만족을 찾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한동안 나의 우울은 나의 정체감을 내가 하는 일에서 찾으려 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내가 다니는 회사의 이름이 곧 나의 가치를 대변한다고 생각하는 태도. 입시와 학벌주의로 점철된 삶을 살아오면서 얻은 나쁜 습관이다.


그래서, 책이 좋다

최근 읽은/읽고 있는 책들

이직 준비로 정신없던 한 해의 중간을 지나고, 다시 서점에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마음에 꼭 드는 책은 실물로 장만하고 애매한 책은 밀리의 서재로 읽는다. 그리고 소장하고 싶으나 판본 자체에 특이점이 없는 책은 ebook으로 읽는다.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신입사원'이라거나, '퇴사준비생'이라거나, 그런 류의 수식어 없이 온전히 나라는 존재로 감정을 느끼는 것 같아 즐겁다. 최근 가장 만족한 독서들. 그중 한 단락을 소개한다.




한강 - 작별하지 않는다


전작 '소년이 온다'와 마찬가지로, 이 책 역시 기억에 관한 이야기다. (제주 4.3을 다루고 있다.) 시놉시스는 주인공의 시각에서 자신의 경험을 풀어가고, 두 개 이상의 시공간이 공존하는 형태라서 상당한 집중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책의 도입부에서 주인공의 감정에 공감하며 읽어나가다 보면 중반부 이후부터는 무서운 몰입감을 경험할 수 있다. 주된 메시지가 마지막 부분에 몰려 있는 느낌이기는 하나, 앞에서 충분한 공감대가 형성된 상태이기에 읽기 불편하지는 않다.


4.3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거대담론은 나오지 않는 것도 이 책의 매력이다. 그저 평범한 소녀가 가족을 찾기 위해 평생을 몰입했던 감각을, 그 소녀의 딸, 그리고 딸의 친구라는 제삼자의 관점에서 멀리서 관망하는 이야기이다. 숨 막힐 듯한 표현력에 몇 번이고 감탄하게 되는, 그러나 복잡한 감정이 몰려드는 독서였다.



한강과 같은 작가의 작품을 읽는 것은 단순히 재미있다는 것을 넘어 경외감을 느끼게 한다. 숨 막히는 표현과 섬세한 감정 묘사에 빠져들어 잠깐 작품 속 세계에 살았던 듯한 느낌마저 든다. 그리고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한편으로는 질투의 감각이 피어오르기도 한다. '어떻게 같은 언어를 쓰면서 이렇게 다른 글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의문과 함께 왜 나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는가 하는 비현실적인 질투도 해 본다. 물론 그 속에 정답이라거나 작가와 나의 공통점 같은 것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그저, 부지런히 읽고 써야겠다고 다짐해 보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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