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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lla Jun 27. 2021

단단하게 상처를 엮어내다

소설 '로야'를 읽고

책 속의 구절을 아로새겨 두고 다시 꺼내고픈 책은 많지 않다. '로야'는 그런 점에서 보석 같은 책이다. 결코 아름답지 않은 이야기임에도 탁월한 문장력으로 풀어가는 작가의 감각이 돋보이는 책이었기에, 이렇게 기록을 남긴다. 소설이지만 99퍼센트가 자신의 이야기라는, 에세이에 좀 더 가까운 작품이었다.

 

이 책을 만나게 된 것은 어느 날 아침의 출근길이었다. S의 집에서 잠을 자고, 인천에서 6시 반에 출발해 서울에 있는 회사까지 돌아가는 길. 평소와 다름없이 밀리의 서재를 켜고 마음에 드는 오디오북 하나를 재생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소개 멘트에 매료되었고 '상처를 극복하는 아름다운 이야기'라는 말에 이끌려 황급히 오디오북을 껐다.


누군가의 감상이 들어가지 않은, 오롯한 내 감상으로 책을 읽어 내려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이 3주 전인 6월 1일, 끝까지 다 읽은 것은 3주가 지난 6월 20일이다. 그간 몇 권의 책을 더 읽었고 중간중간 로야를 펼쳤다가 덮기를 반복했다.


용감한 상처 기록

분명 이 책은 회복과 희망에 관한 이야기라고 했는데, 내 눈에는 엄마에 대한 원망과 분노와 좌절. 그리고 엉망으로 뒤덮인 감정 속에서도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하는 상처 받은 소녀가 보였다. 작가는 어머니와의 심리적  단절을 끊임없이 시도하지만 계속해 실패하고, 어머니에게 계속해서 자식 된 도리를 하며 한 번이라도 따뜻한 말을 듣고 싶어 애쓴다. 그러고 나서 또다시 좌절하는 패턴의 반복. 가정폭력을 당한 사람들이 보이는 전형적인 양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히 이 책을 회복에 관한 이야기라 이를 수 있는 것은 작가 스스로가 과거의 상처를 헤집어서 누군가가 볼 수 있는 형태로 꺼내 놓는 데까지 발전했다는 데에 있을 것이다. 가정폭력이든, 학교폭력이든,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이든 그런 것들을 겪은 사람은 과거의 상처를 대면하어려워한다. 실제로 상담치료를 할 때에도 대면 기법은 내담자가 어느 정도 준비가 되었을 때에야 겨우 꺼낼 수 있는 방법이다. 하지만 작가는 직접 자신의 상처를 펼쳐 놓고 하나하나 헤집어 가며 근원을 찾기 위해 애썼다는 점에서 대단히 용감하고 강인한 사람이라고 평하고 싶다.


아름다운 문장으로 엮어낸 상처. 그 속의 단단함

이 책이 매력적인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엄청난 표현력을 지녔다는 점이다. 캐나다에서 오랫동안 살고 있는 이민자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뛰어난 문장 구사력에 몇 번 숨 막히는 듯한 순간이 있었다. 그런 문장력이 부럽기도 하고 내가 절대 가질 수 없는 것만 같아서 질투가 나기도 했다. 그 외에도 솔직하게 자신의 아픔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두 번째 이유를 정의하고 싶다. 엄마에게서 받은 상처를 자신의 딸에게 무한한 사랑을 주는 것으로 풀어나가는 모습을 보며 그녀는 건강하게 상처를 극복해 나가는 사람임을 보게 된다. 비슷한 상처를 가진 남편과 서로에게 의지해 제3의 공간을 그려나가는 그녀의 모습은 과거의 불행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불행은 언제나 그렇듯 사람을 잡고 밑바닥으로 끌어당기려 한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사람은 그 속에서 또 다른 활로를 찾아내고 살아갈 방법을 찾는다. 과거의 상처에서 철저하게 유리된 삶을 사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행복해 보이는 현재의 삶 속에서도 상처 받은 어린 시절의 내가 있고, 과거에 상처를 줬던 대상에게 인정받으려고 애쓰는 어린 시절의 내가 있으며, 현재와 과거를 완벽하게 분리하지 못하는 혼재된 내가 존재한다. 그러한 감정을 이토록 섬세한 언어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그리고 어찌 보면 자신의 존재의 원천을 비난하는 이야기일 수도 있는 이야기를 풀어냈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대단히 훌륭하다.



책 속의 문장들

5장. 위로 up/comfort

어수선했다. 한차례 흠뻑 땀을 흘린 상태였다. 대기 중에 부유하는 햇살 입자 하나하나가 손에 잡힐 듯 뚜렷했지만, 눈에 투과되는 채도는 극히 낮았다. 입고 있는 옷이 몸 구석구석에 달라붙으며 살 속으로 파고드는 것 같아 한시라도 빨리 땀을 씻어내고 싶었다.


6장. 인과 causality

하늘은 여전히 파랬고 거기에 걸린 빨래는 바삭했다. 어느 집 창문 옆을 지나는데 그곳엔 팬지까지 있었다. 왜 하필 이럴 때 모든 것이 눈에 들어오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고유한 아름다움을 빛내고 있는지 억울해서 미칠 것 같았다.


남편의 굵고 확고한 목소리는 고요한 아침을 흔들어 깨우고 미심쩍었던 어둠을 완전히 사라지게 한다. 아이를 따뜻한 차에 태우려고 이미 자동차 시동을 걸어 차 안에 온풍을 가득히 채워 넣은 사람이다. 늘 자진해서 보살피는 사람이다. 이기적이지 못해 마음껏 누리는 것을 겁내는 사람이다. 나는 그게 딱해서 나의 것을 없애고 그의 자리를 만들어 준다.


2부 7장. 변형 metamorphosis

겨우내 그들의 아기를 품고 있던 나무와 풀은 온화한 날씨를 믿고 파릇파릇한 새 생명을 바깥세상에 조심스레 내보내고 있었다. 내보내진 생명은 혹시 인정사정없는 날씨를 만날 수도 있지만, 이제부턴 대지가 대기의 기운에 져 주지 않을 것이다. 얼릴 수도 없을 것이며 낚아챌 수도 없을 것이다. 부모가 내보내지 않았더라도 자식이 뛰쳐나왔을 것이다. 수년 전 수십 년 전 수백 년 전 내려진 뿌리는 어린 자신과는 상관없는 양 그들의 용맹과 기개와 외모를 으스대며 뽐낼 것이다. 열매라도 맺게 된다면 다 제 덕인 줄 알 것이다. 늘 봄과 여름인 줄 알 것이다. 가을을 믿지 않을 것이다. 겨울을 부정할 것이다. 뒤늦게 깨달아 새끼 가지가 고사한다손 치더라도 뿌리는 동사하지 않을 것이다. 웬만해선 불변의 이치다.  


8장. 무지 nescience

지나간 시간 안에서 과거를 재해석했다. 재해석된 과거 안에서 나는 무참히 상처 입은 어린아이를 지웠고, 관용으로 가득 찬 어른을 세웠다. 그 어른이 아빠를 용서했다고 믿었다. 하지만 과거는 해석을 거부한 채 시퍼런 눈을 뜨고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의식이 어린아이를 지우는 동안 무의식은 그 어린아이를 숨겨 주고 있었다.


9. 연결 connection

엄마는 가엽고 불쌍한 사람이니까 의연하게 넘기려고 무던히 애를 쓰면 쓸수록 엄마에 대한 나의 감정은 딱딱해져 갔다. 원만하게 지내기 위해선 내 마음을 속여야 하는데, 그러기가 점차 싫어졌다. 태어났을 때부터 나는 내 주위와 나 자신을 속여야 했다. 진짜 모습으로 있어 본 적이 없었다. 나만의 울타리를 가지고 나서야 틈틈이 진짜 모습을 찾아가는 인데 엄마 앞에선 나의 진짜 모습을 숨겨야 했다.


11. 애착 attachment

모래는 무서워하면서도 물은 무서워하지 않는 아이를 보며 나와 남편은 안심했다. 유별나다고 여기지 않았고 오히려 고결하다고 생각했다. 세 돌이 지나자 아이는 모래를 만지거나 밟을 수 있게 되었고, 나와 남편은 피크닉 체어에 앉아 아이가 쌓는 모래성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12. 착각 delusion

어찌 완벽하지 않은 아이가 있겠는가. 완벽하지 못한 부모더라도 그들의 아이는 완벽하다. 그러고 보면 모든 부모는 한때 완벽한 아이였다. 그 완벽한 아이에게 완벽하지 못한 부모가 있었다.


사실 나는 전장에서 태어났는지 몰랐다. 태어나 보니 전쟁터였고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싸워야 했다. 싸우고 싶지 않은데도 싸움을 해 나가야 한다는 사실이, 자의가 아니더라도 혐의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 혐오스럽고 부끄러워 숨겼다. 그러는 동안 마음도 아프고 몸도 아팠지만, 그 또한 모른 척할 수밖에 없었다. 내 안에 똬리를 튼 날카로운 아픔은 지그시 이를 악물어 눌렀다. 누르면 튀어나오지 않으리라, 숨기면 들키지 않으리라, 어린 마음은 형식도 없는 기도를 했다. 숨기고 누르는 동안 가족 사이엔 예정됐던 균열이 일어났고, 접목할 수 없어졌고, 나는 자연스럽게 와해를 꿈꾸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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