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하지 말라'를 읽고 쓰는 글인데, 제목이 왜 '나의 과외 일지'인가에 대해, 먼저 변론을 늘어놓고 시작해야겠다. 지난 5월 1일 근로자의 날을 나의 퇴사일로 정하고 고용보험이 없는 사람이 된 이후, 벌써 만으로 7개월을 꽉 채워 간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왜 대기업을 퇴사하느냐는 물음을 던졌는데, 정제되기 전에 마구 써 내려갔던 5월의 글과 지금의 글에는 어느 정도 차이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던 중 학생과 독서토론을 하기 위해 읽게 된 이 책에는 내가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연유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브런치에 꼭꼭 눌러 적어두고 싶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퇴사한 이유는 '과거의 과외 경험에서 기인한 자신감'이 8할이다.
그냥 퇴사했습니다?
지금은 N잡러로 살아가고 있지만 처음 퇴사했을 때만 해도 사람들이 걱정 어린 시선을 보내고는 했다. 아직도 매월 얼마를 벌게 될지 스스로 전혀 모르는 개인사업자이기는 하지만 현재의 삶이 예전에 비해 20000% 이상은 만족스럽기 때문에 퇴사를 단 한 순간도 후회한 적이 없다. 하지만 아직도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내게 왜 퇴사했냐고 묻고는 하는데 나는 마음 편한 대답을 한다.
"저는 단체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인간인가 봐요."
이렇게 완벽한 설명이 있을까? 나는 단체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 남들이 다 그러려니 하고 따르는 회사의 문화를 이해하기 힘들었고 그런 문화에 적응하고 싫은데도 좋은 척하는 게 낯간지러웠다. 피곤한 성격이다.
일례로 이런 일이 있었다. 첫 번째 회사에 다닐 적에 부서장님께서 지나가다가 신입직원이냐고 인사를 하셨다. 그리고 회사에 잘 다니고 있냐고 물어보셨는데 이렇게 대답했다.
"네. 정말 즐겁게 다니고 있습니다. 00대리님과 00선배님이 잘 가르쳐줘서 회사 다니는 것이 정말 즐겁습니다."
그때만 해도 정말 회사가 즐거웠다! 그런데 이게 웬일, 압존법을 쓰지 않았다며 사무실 한복판에서 부서장님이 소리를 지르는 것이 아닌가.
"여기가 학교도 아니고 내가 너한테 압존법까지 가르쳐야겠어? 00대리님? 너 지금 나 무시하는 거야?"
글쎄, 압존법은 군대에서도 이제는 공식적으로 쓰지 않는다고 알고 있는데 그런 것까지 굳이 신경 써야 했나. 그날의 기억이 회사와 내 사이에 균열을 만들어낸 첫 시작이었다. 이후 선배들이 허허 웃으면서 위로하시기를 이사님은 예의범절을 중요시한다고 했는데 나는 도무지 이해하려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중인 예의를 그분이 좋아한다고 해서 지켜야 하나. 그때의 경험은 감히 단정 지어서는 안 되기는 하지만, 첫 회사는 이미 문화 측면에서 시대의 뒤안길로 비껴 나고 있다는 위기감으로 다가왔다.
평일 낮에 카페에서 책을 읽는 여유로움이란
이런 일을 하면서 이 돈을 받아도 되나요?
두 번째 회사로 이직에 성공하고 나서는 한동안 행복감에 절여져서 지냈다. 서울 한복판에 있는 멋진 오피스와 최근 리모델링한 너무나 멋진 사무실, 어디를 가도 누구나 알고 있는 회사에 다닌다는 자부심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마음에 든 것은 근로계약서에 찍힌 금액이었다! 예전 회사에 비해 20% 이상 오른 초봉이었고 성과급은 별도였다. 와, 내가 이런 멋진 회사에서 일한다니!
그런데 그런 생각은 입사 일주일 만에 처절하게 무너지고 만다.
회사에서 내게 주어진 업무는 매우 단순한 것이었다. 어느 정도 교육과정을 관리하면 되는 일이었고 '교육'의 선상에서 나는 철저히 배제되었다. 내가 원한 것은 직원 교육을 직접 기획하고 직접 진행하는 일이었는데 진행자도 따로 쓸뿐더러, 나는 출석체크와 계열사 알림이 정도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자세히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충분히 전산화하여 자동으로 실행할 수 있는 일들이었다. 내 기준에는 다소 과하게 느껴지는 격식을 갖춘 메일과 문자를 보내고 담당자들의 전화에 응대하다 보면 하루 업무가 끝나고는 했다. 육체적으로 전혀 힘들지 않은 일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인지 자괴감이 스멀스멀 마음속에서 피어나기 시작했다.
물론 선배들 중 멋진 사람들도 많았다. 새로운 프로세스와 교육과정을 개발하고 그것을 '담당자'로서 실현해 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런 위치에 간 나를 꿈꿔보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원하는 것은 5년 후, 10년 후의 내가 그렇게 멋진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당장 성장하는 느낌을 받는 것이었다. 내 딴에는 긴 기간을 버텨 보았지만 최소한 2년 안에 업무에서 두각을 내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거기에다 시쳇말로 이런저런 현타가 겹치면서 회사를 과감하게 때려치웠다.
이제 1년 차, 막 들어온 분들은 무엇보다 바깥에서 상상했던 회사생활과 현실이 너무 달라서 놀랍니다. 적응 자체가 쉽지 않은 과업이고요. 이럴 때 업무교육 등 코칭이 필요한데, 코로나19로 그조차 힘들어졌습니다. 비대면이 되면서 가까이서 살갑게 가르쳐주기가 어려워지니 배움은 더 힘들어지고, 그러다 보니 '모른다'는 감정이 올라갑니다. 총체적인 아노미가 오는 거죠. 여기에 더해 자신이 하는 일이 항구적으로 의미가 있을지, 경쟁력이 될지까지 고민이 이르면 정말 복잡해지죠. 이 모든 것들이 내 삶에 대한 근원적인 의심으로 향하게 됩니다.
흔히 2030은 업무와 보상체계, 그에 따른 처우 등이 행복에 크게 영향을 끼친다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그 속내를 보면 사실은 인정받고 싶고, 내가 하는 일에 자신감을 얻고 싶다는 기본적인 욕구에 기인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 송길영. 그냥 하지 말라.
'그냥 하지 말라'에서 이 문장을 보고 무릎을 탁탁 쳐댔다. 서술의 재미를 위한 표현이 아니라, 정말 그런 반응이 절로 튀어나왔다. 내가 느꼈던 감정을 다른 사람들도 느끼고 있었구나! 내가 원한 업무교육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내가 하는 일이 의미가 없다고 느꼈다. 그리고 이 일을 통해서 남들과 비교했을 때 비교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결국 나만의 특별함이 사라지고 언제나 '대체 가능한 사람'이 되는 것이 싫었다.
교육 : 내가 가장 잘하는 일
아이러니하게도 회사를 관두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ADsP (데이터 분석 준전문가)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이었다. 물론 한 번에 붙었다. 데이터를 분석하는 과정을 이론으로나마 복습하면서 배운 점이라면 내가 퇴사를 선택한 데에는 '과거의 경험'이 크게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재수 수능이 끝난 다음 날부터 학원에서 근무를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파트타임 알바로 시작했던 것이 학생들의 후기가 좋아서 그해 2월까지 약 3달 남짓을 일할 수 있었다. 입시가 끝나자마자 일한다는 것이 당시로서는 싫기도 했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가장 잘하는 일을 찾게 된 아주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이후 대학에 오고 나서도 인천 송도의 새내기 캠퍼스에서 서울까지 한참을 오가면서 1년 남짓 '버티기'를 시전 했다. 당시 가장 먼 과외 지역은 노원구였으니 그때 정말 정말 신체적으로 고생이 많았다.
어쨌든 그렇게 수완과 평판이 생기면서 학생 시절에 꽤 큰 목돈을 만져보았고 펑펑 써보기도 했다. 그런데 회사에 들어가고 나서 내 노동의 가치를 이동시간 제하고 시급으로 환산해 보니 대학생 때보다 낮은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차라리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내 시간을 확보하되 비슷한 벌이를 하면서 살자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팀장님 나이가 될 때까지 건강할지도 알 수 없고 회사가 살아있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여하튼,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냥 하지 말라'는 책의 제목처럼 나의 퇴사도 그냥 한 선택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어떻게든 먹고살겠다는 자신감과 과거의 경험 데이터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카페에 가서 책을 읽거나 연구를 한다
평일 낮의 카페는 정말 한적하고 예쁘다
퇴사 이후 삶이 가장 좋은 이유는 햇살이 있을 때 산책할 수 있고 업무 시간을 내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클라이언트가 정해준 일정에 맞춰야 하기는 하지만, 그 안에서 나름대로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 회사보다 훨씬 좋은 점이다. 수업이 없는 낮시간에는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하거나 카페에 가서 책을 읽는다. 나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기 위해 요리하는 횟수도 늘었다. 내가 믿어야 할 것은 내 직장이 아니라 '나의 능력' 그 자체다.
책에서 마음에 들었던 구절 하나를 더 인용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회사 인간'이 멋있어 보이지 않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그래도 2010년의 데이터만 보더라도 취직은 성공의 시작이었고, 무언가 함께 이루어 갈 안정적인 대상을 찾는 행위였습니다. 함께할 직장을 찾고 그것으로 자아를 형성한다는 식이었죠. 그런데 지금은 안전한 곳, 나를 경제적, 사회적으로 전락하지 않게 지켜줄 곳을 찾아 거기에 탑승하는 것으로 바뀐 것 같습니다. 함께 운전에 참여하는 게 아니라 승객으로 들어온달까요.
이 변화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경력을 만드는 첫 단추인 취업 자체가 굉장히 힘들어졌습니다. 그에 따라 취업 준비에 더 많은 노력이 투여됐고요. '스펙'이라는, 사람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단어가 쓰이기 시작한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학점이나 토익 정도만 준비하면 됐는데 지금은 스펙 9종을 채워야 합니다. 봉사활동, 제2외국어 등의 준비를 오랫동안 하다 보니 이 경쟁을 뚫고 들어온 이들에게 보상심리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성과의 보상'이라기보다 입사에 이르기까지 치열하게 겪은 '경쟁의 보상' 같은 것이라 할까요. 어쩌면 나중에 보상받을지 장담할 수 없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중에 보상해주겠다고 약속한 상사가 그때 있지도 않을 테고요. 이와 같은 새로운 니즈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적절한 보상을 할 것인지도 조직의 주요 이슈로 올라가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