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시절에는 '트렌드' 책을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내가 트렌드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도 없었고 그렇게 트렌드를 아는 것이 나의 산업과 직접 연관이 될 일도 없었기 때문이다. 평범한 인문학도의 감성이란 성적 잘 받기와 대학원 가기 사이, 그 어드메에 있어서 다른 것들은 신경 쓸 이유도 여유도 없었다.
하지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취업하고 보니 돈에 무지한 내가 얼마나 한심스럽던지. 그래서 2021년 취업하고 OJT가 끝난 뒤부터는 돈 공부에 미친 듯이 몰두했다. 사회생활 3년 차가 된 지금, 그래도 서당개 정도는 된 것인지 트렌드를 이야기하면 까막눈은 아니게 되어서 어느 정도 대화에 낄 수 있게 되었다. 올해에는 좋은 기회로 강의를 들을 기회도 생겼는데 경제학 강의들을 열심히 들어보면서 기저에 깔려 있는 원리를 탐구해 보고자 한다.
혹자는 '경제'를 배우는 것은 유튜브로 충분하다고 하지만 교육학을 배웠던 미천한 경험에 빗대어 보면 학문의 근간을 안다는 일이 사고를 할 때에 큰 도움이 되더라.
책의 첫 파트에는 '2023 머니트렌드 워드클라우드'가 나온다. 확실히 내가 대학에 입학하던 2017년과는 많이 달라진 것들이 눈에 띈다. 20대 경제활동인구로서 가장 와닿는 것은 '원룸 가스라이팅', '인스타그램=가상현실게임'같은 키워드들이다. 재수할 때까지 SNS를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말들의 의미를 모르고 살았는데 대학생이 된 후 SNS를 하게 되면서 인터넷 속 지인들의 삶과 내 삶을 비교하게 되더라.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성인가 보다.
이 책은 현재의 경제상황을 촌철살인 같은 말들로 면밀히 분석해내고 있다. 젊은 세대들에게 유독 가혹하게 느껴지는 주거환경을 '원룸 가스라이팅'으로, 인스타그램 속 나를 치장하기 위해 골프장에서 옷을 여러 번 갈아입는 것을 '가상현실게임 속 캐릭터 꾸미기'에 비유한다. 또 한 가지 눈여겨 볼만한 것은 이런 비유들이 이전처럼 저명한 학자에 의해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 예전에는 유튜버가 전문가로 인정받지 못했었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재테크 유튜버는 그 분야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전문가로서의 지위를 인정받으며 인기인으로 급부상했다.
책 내용 중 기억해두고 싶은 파트를 갈무리해 보았다.
1. 사람들은 왜 서울로 몰릴까?
가장 큰 이유는 좋은 일자리가 서울에 많이 몰려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좋은 일자리는 좋은 학교 옆에 생긴다. 스타트업이 대표적이다. 똑똑한 학생들은 학교 근처에서 창업을 시작한다. 인턴을 채용하는 기업들 입장에서도 능력이 뛰어난 직원을 채용해서 성과를 보이면 국가에서 지원도 받을 수 있다. 그럼 학생과 기업 모두 윈윈이다. 학생들 역시 대학교와 연결되어 있는 지하철 노선 인근의 회사에 취직하는 게 여러모로 유리하다. 기존의 생활권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고, 대학 친구들과의 만남도 이어갈 수 있으며 새로 생긴 업무적인 네트워크도 관리하면서 커리어를 쌓는 데 도움까지 되기 때문이다. - < 머니 트렌드 2023, 부동산읽어주는남자(정태익) ,김도윤, 김경민, 김상균, 전영수, 최준철, 홍춘욱 > 중에서
나도 부산에서 나고 자랐으나 부산에서 평생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해보지 않았다. 부산에서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계속할 수도 없을뿐더러 서울에서 받는 것보다 훨씬 적은 보수를 받으며 일해야 한다. 직장인일 때에는 부산에 마땅한 회사가 없어 내려가지 못했고 개인사업을 하는 지금은 부산에 고객이 없어서 내려가지 못한다. 이런 현상을 단순히 '서울평평론'같은 말로 비하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2. 2023년의 부동산 시장은 어떻게 흘러갈까?
2022년 4분기 현재의 상황은 매우 위급하다. 환율 급등과 레고랜드 사태로 말미암아 금융권에서 부동산 PF 대출을 꺼리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신용도가 괜찮은 시공사와 디벨로퍼마저도 10%대 중반 이상의 이자를 요구하는 상황도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진정되지 않는다면, 부동산 거래절벽이 아닌 부동산 공급절벽을 2020년대 중반에 경험할지도 모른다. 만약 그런 상황이 온다면, 2010년대 중반과 후반의 적정 퀄리티 부동산 아파트 공급 부족과 이로 인한 가격 상승이 2020년대 중후반에 다시 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 < 머니 트렌드 2023, 부동산읽어주는남자(정태익) ,김도윤, 김경민, 김상균, 전영수, 최준철, 홍춘욱 > 중에서
레고랜드 사태 이후 부동산 PF 신뢰체제가 완전히 무너졌다. 사실상 국가채에 가까웠던 것이 지급 불가 선언을 해버리면서 줄도산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책에서는 그 여파로 '부동산 공급절벽'이 생길 것이라고 예측한다. 현재의 거래절벽이 공급절벽으로 전개되는 양상이다.
물론 이는 지역을 분할해서 보아야 한다. 서울 및 수도권 지역에서는 공급절벽이 심화되는 반면 지방 소도시에서는 빈집 문제가 매우 심각하게 대두될 것이다. 당장 올해의 대구만 보더라도 우후죽순으로 아파트를 지어뒀으나 들어갈 사람이 없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지방 소멸은 인구가 줄어드는 현 상황에서 예견된 수순일지 모른다.
3. 무지출 챌린지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2023년에는 돈을 들이는 것 대비 시간을 들이는 문화가 더 많아질 것이다. 외식보다는 손수 요리를 해 먹고, 택시를 타기보다는 자전거나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다.
시간값이 싸지는 사회는 편리함 대신 불편함을 택한다. 플렉스 문화도 점점 더 소수의 문화가 되어 양극화가 심해질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1~2년 전만 해도 어떻게든 돈을 써서 인스타그램에 가성비 떨어지는 선택을 자랑처럼 올렸다. 부자가 아니어도 부자인 척했다. 주식으로, 코인으로, 부동산으로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까지 벌어들인 사람이 많았다. 그렇게 돈을 번 사람들이 SNS에 외제차와 고급 레스토랑, 쉽게 갈 수 없는 고급 숙소에서 묵는 사진들을 올려댔고 그걸 본 사람들도 핫한 곳이라며 똑같은 곳에 돈을 썼다. - < 머니 트렌드 2023, 부동산읽어주는남자(정태익) ,김도윤, 김경민, 김상균, 전영수, 최준철, 홍춘욱 > 중에서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서 '무지출 챌린지'가 유행하고 있다. 2010년대 후반을 풍미하는 키워드가 YOLO였다면 지금은 하루에 한 푼도 쓰지 않으려 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물가는 오르고 월급은 그대로인 상황에서 실질구매력이 줄어든 사람들이 취할 수 있는 행동 양태다. 팬데믹 머니로 부풀려졌던 금융자산은 급격하게 쪼그라들었고 결국 남은 것은 영끌했다 남은 빚뿐인 젊은 세대들에게 남겨진 뼈아픈 선택지다.
4. 하지만 멈출 수 없는 과금 열차
게임 속에서도 돈을 수천만 원씩 쓰는 사람이 있고, 조금 쓰는 사람이 있고, 아예 쓰지 않는 사람이 있듯이 부모들도 헤비과금러, 저과금러, 무과금러로 나뉘어진다.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게임을 하거나 30초 이상의 광고를 다 보는 무과금러 같은 사람이 있는 반면, 있는 대로 돈을 다 써서라도 아까운 시간과 노동력을 줄이는 헤비과금러가 있다. 그런 부모들은 돈으로 시간을 사서 아이의 능력치를 더 높여준다. 이미 사교육계에서는 흔한 일이다.
똑같은 나이로 태어나서 똑같이 0살부터 인생을 시작하는데, 누구는 부모의 돈과 시간을 적절히 활용해 7살에 이미 선행 학습이 완료된 상태로 정규 교육과정을 시작하고, 누구는 충분한 돈과 시간이 없었던 탓에 선행 학습은커녕 정규 교육과정을 제대로 시작할 준비조차 하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무과금러는 절대 유과금러를 이길 수 없다. 이 게임판은 그렇게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부모에게 돈이 있으면 아이는 확실히 더 좋은 퀄리티의 교육을 받을 수 있다. 무과금러나 저과금러는 이런 게임판에서는 중도 포기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달려도 중간까지밖에 갈 수가 없다. - < 머니 트렌드 2023, 부동산읽어주는남자(정태익) ,김도윤, 김경민, 김상균, 전영수, 최준철, 홍춘욱 > 중에서
이 책에서는 인스타그램 속 나에게 돈을 쓰는 것, 나의 아이에게 돈을 쓰는 것을 '게임 캐릭터에 과금하는 것'에 비유한다. 이는 내 주변에서도 쉽게 관찰되는 현상이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겨우 생계를 유지하고 생활비 대출까지 하고 있는 친구들이 호캉스를 즐기러 가는 사진을 올린다. 그리고 같은 달에 여행만 두 번을 간다. 그 친구는 매달 말쯤이 되면 연락이 와서 알바비가 들어올 때 갚을 테니 돈을 빌려줄 수 있냐고 물어본다.
나의 친척어른은 초등학생, 중학생인 아이들에게 자신의 월급 전체를 지출한다. 남들이 다 시키는 것이니 아이에게 학원 하나라도 더 보내려 하고 초등학생이라면 고등수학쯤은 끝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의 성적이 썩 잘 나오는 것도 아니다. 그때 따라오는 말은 '고등학교에 가서만 잘하면 된다'는 것. 어릴 때 성적이 중위권이던 아이가 고등학교 1학년이 되자마자 최상위권이 되는 기적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 텐데. 할 말이 많지만 마음속으로 삼킨다.
결국 이 모든 것은 '객관화의 부재'에서 비롯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친구라면 자신의 소비습관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무조건 선행만 강조하는 부모라면 아이가 현재 나이에 맞는 교육과정은 잘 따라가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자기 객관화, 그리고 그를 넘어 내 아이를 위한 객관화가 부재할 때 서로가 불행해지는 이상한 수레바퀴는 삐걱대며 굴러가고 있는 것이다.
책에서 제시하는 것은 '머니트렌드'다. 그리고 그 트렌드를 해석하는 것은 오롯이 독자의 몫으로 남겨져 있다. 책을 읽으며 나의 경험을 떠올려봐도 좋고 주변 사람을 연상해 봐도 좋다. 그도 아니라면 최근의 트렌드가 어떻다는 것만 보더라도 좋다.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