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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끔 쓰는 이다솜 May 07. 2019

단 색의 사람은 없다

에리카(이자벨 위페르 분)가 지닌 놀라울 만큼 다양한 얼굴을 기억한다. 영화 <피아니스트>.


남편은 가끔씩 가부장적이고 고루한 말을 해서 어처구니없게 만든다. 실제 태도는 딴판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존중하고, 세심하게 배려한다.     


거의 연락하지 않는 한 지인은 SNS에 여권 신장에 관한 글을 자주 올린다. 그러나 수년 전 그가 술자리에서 나이 어린 여성에게 어떤 태도로, 어떤 말을 했는지 똑똑하게 기억한다.     


어머님은 내가 결혼한 뒤 1년 동안 명절에는 한복을 입기를 바라셨다. 나는 남편처럼 단정한 양장이면 충분하다고, 시대착오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퇴직 후에 혼자 여행을 다녀온다고 했을 때는 유일하게 용돈을 보내주셨다. 용돈보다 그간 고생했다며 즐겁게 지내다 오라는 말씀이 감사했다.


남편을 몇 마디 말로만, 지인을 SNS의 글로만, 어머님을 한두 가지의 모습으로만 판단했다면 어땠을까. 이들에 대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생각, 감정을 지녔을 것이다. 당연히 관계의 양상도 달라졌을 거다.     

     



어떤 사람, 어떤 태도가 옳고 그르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은 놀라울 만큼 여러 가지 면을 가지고 있다. 존경심이 생길 만큼 훌륭한 부분이 있는가 하면, 아무리 애써도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     


색에 비유하면 노란색인 줄 알았던 사람에게서 파란색이나 검은색을 발견하고, 초록색과 빨간색이 섞인 줄 알았던 사람에게 흰색이 가장 많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 식이다. 네 가지 색이 섞인 사람인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니 두세 가지 색이 더 보일 때도 있다.     


사람을 판단하는 건 참 쉽다. 무엇보다 멋대로라도 판단해놓고 나면 마음이 편해진다. 하지만, 내가 설정한 카테고리는 얼마나 엄정하고 세심할까. 또, 잘못 분류할 가능성은 없을까. 판단을 피할 수는 없지만, 너무 빨리 단정 짓지 않으려고 애쓰는 이유다. 사람과 관계가 품고 있는 가능성을 성급하게 한계 짓고 싶지 않다.     


대체로 오랫동안 보고 천천히 판단할 때 후회가 적었다. 상대적으로 깊게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이해가 깊어진다고 해서 곧 그를 좋아하게 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싫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결과가 어떻든 쉽게 판단하지 않는 태도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잘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새로운 면면을 발견할 때마다 겸손해진다. 단 색의 사람은 없고, 복잡 미묘한 색을 알아보려면 애정과 시간이 필요하다. 자꾸만 쉽고 편리하게 판단하려는, 나의 게으른 마음에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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