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게'에서 찾은 행복의 실마리
페이스북을 하다가 우연히 3분가량의 짧은 영상을 보게 됐다. 서울에 사는 5년 차 부부, 덴마크인 에밀 라우센(31) 씨와 서유민(32) 씨의 일상을 담은 영상이었다. 두 사람은 좁고 낡은 월셋집에서 끊임없이 웃었다. 특별한 일은 없었다. 그저 에밀 씨가 난생처음 유부초밥을 만들었고, 유민 씨와 나눠 먹었다. 그게 다였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정말 행복해 보였다.
자연스레 얼마 전에 알게 된 ‘휘게’(Hygge)가 떠올랐다. 덴마크에서 행복의 원천으로 꼽히는 ‘휘게’는 한 문장으로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는 개념은 아니다. 이해하기보다는 느껴야 하는 이 단어는 삶의 방식이자 구성 요소로, 소박하고 느린 것, 오래된 것, 포근하고 은은한 것과 관련이 있다. 절친한 친구와 나누는 담소나 추억이 깃든 스웨터, 촛불을 밝힌 아늑한 방, 따뜻한 코코아처럼 우리를 기분 좋게 만드는 것들이다. 에밀 씨 부부가 집에서 만든 유부초밥도 ‘휘게’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에밀 씨 부부의 이야기도 ‘휘게’도 한 가지 사실을 말해주는 듯하다.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행복할 수 있다는 것. 행복하기 위해서는 큰돈이나 대단하고 거창한 무언가가 필요한 게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실제로 많은 전문가가 “행복은 크기나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고 설명한다. 즉, 한 번의 큰 행복을 느끼는 것보다 여러 번, 작은 행복을 느끼는 삶이 더 행복하다는 이야기다.
관점을 바꾸면, 행복은 도처에 널려있다. 좋아하는 영화를 보며 마시는 시원한 맥주 한 캔, 일요일 아침의 게으름, 아무런 기대 없이 펼친 책에서 만난 좋은 글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먹는 맛있는 음식까지. 생각해보면, 힘든 일만큼이나 즐겁고 미소 짓게 하는 것도 많다.
혹자는 이렇게 물을 수 있다.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이나 ‘휘게’는, 덴마크처럼 사회보장제도가 잘 갖춰진 국가에서나 가능한 것이 아니냐고 말이다. 물론, 사회보장제도를 포함한 국가의 시스템과 환경, 문화는 매우 중요하다. 당장 내일의 생계를 걱정하는 사람이 행복을 찾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더 안정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행동해야 한다.
하지만, 이상적인 사회가 올 때까지 행복을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삶은 유한하고, 시간은 속절없이 흐른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애쓰는 동시에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놓치지 않아야 하는 이유다. 행복해지려는 노력은 다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다. 철저히 자기 자신을 위해서다.
에밀 씨와 유민 씨의 이야기를 조금 더 해야겠다. 두 사람은 4년간의 처가살이 끝에 작은 월세방을 얻었다. 살림은 중고 제품들로 채워 넣었다. 누군가에게는 턱없이 부족하겠지만, 이 부부에게는 충분히 ‘휘게리’(Hyggeligt)한 공간이다. 또, 틈틈이 미혼모 시설, 다문화센터 등을 찾아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유민 씨는 남편을 만나기까지 외국어고등학교와 명문대를 거치며 소위 말하는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다. 하지만, 무한 경쟁 궤도에서 한걸음 떨어져 자신만의 진정한 행복을 찾고, 주변을 둘러보게 된 지금이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고 말한다.
모두가 이들처럼 살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두 사람은 삶을 바라보는 관점과 태도가 행복한 삶을 만드는데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고 있다. ‘휘게’ 역시 일상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작은 실마리가 되어줄 것이다. 지금 우리는 충분히 행복한가. 아니, 수시로 찾아오는 작은 행복들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자신에게,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한 번쯤은 물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