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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끔 쓰는 이다솜 Aug 06. 2017

나의 아주 사적인 영화 역사

천 편의 영화를 보고서 ①


1년 전쯤, 친한 동생이 물었다. “언니는 영화가 왜 좋아?” 쉬운 질문이었는데, 당혹스러웠다. 놀랍게도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동생의 질문을 곱씹었다. 나는 영화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섭렵했던 대여섯 살 무렵부터 중학교 때까지 미술을 했고, 뒤늦게 공부를 시작한 뒤에는 고전 소설을 중심으로 문학에 깊이 빠졌다. 대학 생활의 절반 이상은 인문사회과학 책을 읽는 동아리에서 활동했고, 6개월 동안 국내 개봉하는 모든 영화를 보고 리뷰를 쓰는 대외활동도 했다. 자아가 형성되던 때부터 지금까지 시각 예술과 이야기에 관한 관심, 지적 호기심이 식은 적은 없었다. 그리고, 영화에 이 모든 것이 있었다. 어떻게 영화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본격적으로 영화를 본 것은 십 대 후반부터다. 존 카메론 미첼의 <헤드윅>(위 사진), 이누도 잇신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미셸 공드리의 <이터널 선샤인> 등 몇몇 영화가 계기가 돼 소위 말하는 예술영화에 푹 빠졌다. 당시만 해도 블록버스터 영화나 상업 영화에 관한 반감과 선입견이 컸지만, 20대 초반의 영화 리뷰어 활동은 전환점이 됐다. 선호와 관계없이 개봉하는 모든 영화를 보면서 편견이 깨진 것이다. 좋은 영화는 장르나 제작비 규모와 별개라는 당연한 사실을 알게 됐다. 이 무렵부터 영화에 관한 애정은 사랑이 됐다.


그리고, 어제 내 인생의 천 번째 영화 <로우>를 봤다. 지금까지 영화를 본 시간을 날짜로 계산하면, 79일이다. 누군가는 영화 편수가 중요하냐고 반문할 수 있다. 반은 동의하고, 반은 동의하지 않는다. 우선 숫자 자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렇지만, 모든 분야가 그렇듯 압도적인 양이 누적되면, 질에 영향을 준다. 나는 영화 보는 눈과 감각을 타고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수많은 영화를 보면서 조금씩 시야가 트였고, 나름대로의 관점과 취향이 생겼다. 여전히 부족하지만, 불과 수년 전과 비교해도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보다 같은 영화를 봐도 훨씬 더 풍부하게 느끼고 깊게 생각할 수 있게 됐다.


이동진 평론가는 영화 <걸어도 걸어도>의 한 줄 평으로 ‘살아서 영화를 보는 기쁨’이라고 썼다. 나는 좋은 영화를 볼 때마다 삶이 살만하다고 느낀다. 지금까지 그랬듯 앞으로도 좋은 영화가 계속 나올 테니, 그것만으로도 미래가 기대될 때도 있다. 이제는 사랑하는 사람, 언젠가 만나게 될 내 아이들과 영화를 즐기고 싶다는 바람도 생겼다. 그들이 영화라는 저렴하면서도 지적이고, 예술 집약적인 매체를 통해 인생에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을 더할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이미 남자 친구의 경우는 나의 영향으로 영화를 상당히 좋아하게 됐다. 그와 함께 영화를 보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은 요즘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 중 하나다.

내가 영화를 왜 좋아하는지, 어떻게 생각하는지 타인들에게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한 번쯤은 나의 영화 역사를 짧은 글로나마 정리하고 싶었다. 시리즈의 두 번째이자 마지막인 다음 글에서는 내가 생각하는 좋은 영화의 기준과 사랑하는 감독 12인을 간단하게 정리하려고 한다.


영화가 있어서, 영화를 볼 수 있어서 행복하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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