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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끔 쓰는 이다솜 May 02. 2018

하지 못한 것들을 추억하는 일

두 사람이 처음 손을 잡고, 서로를 경계했던 순간은 결코 되돌아오지 않는다.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유럽 여행을 다녀온 지도 반년이 지났다. 시간은 믿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흐른다. 일상으로 돌아온 나의 몸은 둔해지고, 영혼은 수척해졌다. 그래도 틈틈이 떠올리는 여행의 기억은 위안이 됐다. 문득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껏 추억은 과거에 갔던 장소, 했던 일, 먹었던 음식을 떠올리는 것이라고 믿었다. 아니었다. 추억은 가지 못한 곳, 하지 못한 일, 먹지 못했던 음식에 대한 기억이기도 했다.      


무전여행이나 배낭여행처럼 극한 여행은 아니었다. 힘들었다고 호들갑을 떨기는 민망하다. 그러나, 일상에서 실감하지 못했던 결핍을 느끼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여행 기간 동안 먹고 싶은 음식을 먹는 일도, 괜찮은 음식을 배부를 때까지 먹는 일도 드물었다. 좀 웃긴 이야기지만, 스위스에서는 음식 때문에 울었다. 교통비가 아까워서 몇 시간 동안 산을 탔다. 꼭 한 번 가고 싶었던 이탈리아 카프리나 프랑스 아를은 금전적, 시간적 제약으로 마지막까지 고민하다가 들르지 못했다.     


인상적인 풍경, 즐거운 일이 많았는데도 하지 못한 일들이 떠오르는 건 참 이상한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불평하게 되는 건 아니다.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다. 또, 과거로 돌아가도 똑같은 방식으로 여행할 것 같다. 힘들어도 무조건 떠날 거다. 아쉬움과 만족감이 복잡하게 뒤엉킨 감정이 낯설면서도 익숙했다.     


이는 인생에 관한 감정과 비슷했다. 우리는 언제나 자신의 한계와 주어진 환경으로 인해, 하지 못한 일들을 생각한다. 변변찮은 삶은 아쉬움 투성이고, 스스로가 애잔할 때도 있다. 그런데, 엄청 좋다. 사랑한다. 과거로 돌아가도 대부분 비슷하게 행동할 것 같고, 힘들어도 죽기보단 살고 싶다.     


미련을 떨칠 수 없고 너무나 아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감사하고 사랑하게 된다는 점에서 여행과 인생은 닮았다. 어쩌면, 이 세상 소중한 모든 것의 공통점 인지도 모른다.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순간, 지난 여행에서 인생에서 하지 못한 것들을 떠올리게 될까. 그때마다 얼마나 가슴이 아릿하면서도, 그리울까. 한 가지만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처럼 부질없고 처량 맞은 추억이 떠오르는 이유는, 지나온 시간을 진심으로 사랑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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