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베란다 창에 내린 새벽 서리가 몹시 춥게 보인다. 연말이 다가오면 으레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게 된다. 올해 초에 다짐했던 것들, 설렘으로 시작했던 일들이 지금은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는지 생각하다 보면, 문득 '처음 그 마음'이 그리워진다.
다윗의 처음 길
성경에는 여호사밧이라는 왕이 등장한다. 그에 대한 평가 중 가장 인상적인 구절은 "다윗의 처음 길로 행했다"는 표현이다. 다윗의 길도 아니고, '다윗의 처음 길'이라니. 이 미묘한 차이가 마음에 걸린다.
다윗은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한 사람이었다. 시편에 담긴 그의 고백들은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의 가슴을 울린다. 하지만 그런 다윗도 생애 후반부에는 밧세바 사건 같은 큰 실수를 저질렀다. 그래서일까. 성경은 단순히 '다윗의 길'이 아니라 '다윗의 처음 길'을 언급한다. 그 순수했던 초심, 겸손했던 시작의 시간을 말이다.
처음은 누구나 순수하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시작은 대부분 아름답다. 대학 새내기의 설렘, 첫 출근길의 긴장감, 새로운 관계를 시작할 때의 조심스러움. 처음에는 서툴지만 배우려는 자세가 있고, 부족함을 아는 겸손함이 있다. 모르기 때문에 오히려 순수할 수 있었던 시간들.
여호사밧의 아버지 아사 왕도 그랬다. 처음에는 "힘이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밖에 도와줄 이가 없다"며 하나님께 온전히 의지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말년에는 선견자를 옥에 가두고 백성을 학대하는 등 변질된 모습을 보였다. 솔로몬도, 사울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처음은 좋았지만 끝이 좋지 못했던 사람들.
왜 처음을 지키기 어려운가
시간이 흐르면 익숙해진다. 익숙함은 편안함을 주지만 동시에 긴장감을 잃게 만든다. 처음의 겸손은 어느새 자만으로 바뀌고, 순수한 열정은 타성으로 굳어간다. 성공의 경험들이 쌓이면서 '내 힘'으로 해냈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하나님을 의지하던 마음이 어느새 내 능력을 의지하는 마음으로 변해간다.
회사에서 10년 차가 되면 신입사원 때의 그 겸손함은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 결혼 초의 조심스러움과 배려는 세월 속에서 무뎌진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다. 처음 교회에 나갈 때의 떨림, 첫 기도의 간절함, 첫 헌신의 뜨거움이 시간이 지나며 식어간다.
끝까지 잘하는 삶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단순히 '잘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처음의 그 마음을 끝까지 지키는 것이다. 다윗의 처음 길을 끝까지 걷는 것. 그것이 여호사밧을 향한 찬사였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바람이다.
처음에 잘하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끝까지 잘하는 사람은 드물다. 중요한 것은 화려한 시작이 아니라 꾸준한 지속이다. 처음의 뜨거움을 오래 품고 가는 것, 그 순수함을 잃지 않는 것.
다시, 처음으로
연말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나는 묻는다. 1월의 나는 어떤 마음이었나. 그 다짐들은 지금 어떤 모습인가. 처음 시작할 때의 겸손함, 그 순수한 열정이 지금도 남아있는가.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보고 계신다. 우리의 처음을 기억하시고, 그 처음의 마음으로 끝까지 걷기를 바라신다. 늦지 않았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수 있다. 다윗의 처음 길, 그 길은 여전히 우리 앞에 열려있다.
창밖의 서리가 아침 햇빛의 나타남과 동시에 곧 녹게 되면 모든 것을 씻어내듯, 우리의 마음도 다시 처음처럼 깨끗해질 수 있기를. 그리고 그 처음의 마음으로, 남은 길을 끝까지 걸어갈 수 있기를 잠시나마 기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