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을 다시 회복하고 싶어하는 어느 집사님에게 보내는 글
사랑하는 S집사님
며칠 전 우리가 만나고 나서 집사님께 글을 써서 보내드리고 싶었는데, 어느새 또 시간이 흘러갔네요.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이렇게 펜을 들어봅니다.
엊그제 오랜만에 집사님과 나눈 대화는 참 즐거웠습니다. 우리가 서로를 알게 된 지 벌써 20년이 훌쩍 지났으니, 세월은 정말 쏜살같다는 말이 실감납니다. 저와 동갑이신 집사님은 친구처럼 느껴져서 언제 뵈어도 마음이 편하고 좋습니다.
제가 울산에 온 첫 해, 25년 전 D교회 부목사로 있을 때부터 집사님을 뵈었고, 그 이후 제가 북구에 와서 담임 목회를 시작했을 때는 저희 교회에 등록도 해주셨지요. 이후 U교회에서 제자훈련을 받으시다가 상처를 받으셨던 모습도 제 기억에 생생합니다. 그때는 아마 삼산동이나 달천동에 사셨던 때였을 것 같습니다. 세월이 지날수록 집사님을 만나면 예전의 좋았던 추억들이 되살아나서 저는 항상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그런데 이제 나이가 60을 넘고 70을 바라보게 되니, 추억도 좋지만 지난 세월보다 남은 세월에 더 관심이 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인생의 끝은 결국 세상을 떠나는 것이고, 죽음 이후의 시간, 즉 내세로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는 어릴 때부터 죽음과 천국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인지 하나님께서는 비교적 이른 나이인 18세에 저를 불러주셨습니다. 그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지, 나이가 들수록 더욱 감격스럽게 다가옵니다. 특히 방랑의 세월이었던 2, 30대에 예수님을 체험적으로 만나서, 열렬한 신앙과 열정, 눈물과 기도, 그리고 제 나름대로 헌신하며 살아냈다는 사실이 그렇습니다.
인생의 무상함에서 벗어나 삶의 참 의미를 깨닫게 해주신 구주 예수님이 아니었다면, 당시 제 가정 상황과 못된 기질을 볼 때 저 같은 사람은 비행 청소년의 길로 갔을 것이 거의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요즘 제가 자주 듣게 되는 찬송(CCM)도 "나는 주를 섬기는 것에 후회가 없습니다"라는 노래랍니다. 집사님도 한번 들어보세요.
(https://youtu.be/AmwX2-BIpRU?si=nv94BR9kHOBCLhze)
사랑하는 집사님
엊그제 집사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한 가지를 꼭 말씀드리고 싶어서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저는 그 대화를 나누면서 집사님의 마음속에 아직도 분명히 신앙이 살아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다만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신앙생활을 본격적으로 하려면 철저히 주일을 지키고 예배를 사수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 매우 강한 신념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러한 자세는 전통적인 교인의 잣대로 본다면 정말 훌륭하고 수준 높은 신자의 모습일 것입니다. 특히 교회나 교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정말 존경스러운 일이지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실까 하는 점일 것입니다.
성경을 보니, 하나님의 마음은 그러한 외적인 생활의 모습에 앞서 '내면'의 자세에 더 있으셨습니다. 예를 들어 연보를 할 때 액수보다 그 마음을 더 귀하게 보셨던 과부의 두 렙돈(막 12:42)이라든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눅 10장) 등이 그렇습니다.
특히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는 제사장도 레위인도 예배를 위해 가던 길에 강도를 만나 위기에 빠진 사람을 못 본 체하고 그냥 가버렸습니다. 하지만 예배 못지않게 바빴던 사마리아인은 그 바쁜 와중에도 가던 길을 멈추고 피해 입은 사람을 도와주었지요. 이것이 바로 예배보다 마음을 더 강조하시는 것이 아닐까요?
같은 이유로 예수님께서는 우물가에서 만난 한 여인에게도 "예배는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드리는 것"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요 4장).
집사님
엊그제 저와 나눈 대화 중에, 부인이신 U집사님께서 '다시 한 번 가까운 교회에 나가보고 싶다'는 뜻을 집사님께 비추셨다고 하셨는데, 집사님께서 '제대로 다니지 않으려면 아예 시작하지 말라'고 대답해주셨다고 하셨을 때, 저는 무척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매우 안타까웠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를 오랫동안 쉬었다가 다시 나오는 것, 그 첫걸음을 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운 일입니다. 저는 솔직히 하나님께서 도와주지 않으시면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마치 갓 태어난 아기가 걷기도 전에 뛰기를 바라는 것과 같고,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다는 옛 속담과 같은 이치입니다. 모든 일에는 단계가 있고 과정이 있다는 것은 집사님도 잘 아실 겁니다.
그런데 교회에 아직 나오지도 않은 분이 처음부터 예배도 안 빠지고, 주일도 철저히 지키고, 헌금도 바치고... 이런 모습이 과연 가능할까요?
사랑하는 집사님
저는 평생을 목회해온 사람이고, 지금도 전적으로 목회와 사역만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교회 출석 첫날부터 예배를 빠짐없이 나오는 것은 결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오히려 그 어려운 첫걸음을 용감하게 뗄 수 있도록 남편이신 집사님께서 도와주시는 것이 훨씬 아름답고 귀한 일입니다. 시작이 반입니다.
집사님, 우리는 거의 대부분 미숙한 어린 아기와 같은 존재입니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결코 없습니다. 집사님께서는 평생을 농업에 헌신해오셨으니 누구보다 이런 원리를 잘 아실 것입니다. 하나의 씨앗이 열매를 맺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과정과 훈련을 거쳐야 하는지를요.
바라기는 집사님께서 U집사님의 신앙 재개를 도와주시고, 더 나아가 집사님도 함께해주신다면, U집사님의 신앙은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게 될 것을 저는 확신합니다. 그만큼 인생의 시련을 다 통과해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누구보다 빨리, 그리고 깊이 만나게 되실 것입니다. 예배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교회에서만이 아니라 집에서도 말입니다. 부디 U집사님의 그 작은 촛불이 꺼지지 않도록 남편이신 집사님께서 격려해주시고 보내주시면 정말 좋겠습니다.
이제 이 글을 맺겠습니다.
U집사님께 그런 마음이 생긴 것, 제게는 하나님께서 노크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부디 이번 기회에 U집사님을 잘 격려해주셔서 가까운 교회에, 또는 U집사님께서 가보고 싶은 교회에 다닐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위기가 곧 기회입니다.
집사님의 영혼과 가정에 하나님의 새롭고 특별한 은혜가 임하기를 간절히 두 손 모아 응원하겠습니다.
사랑을 전합니다. 승리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