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큰딸의 기도 수첩을 보고 나서
왜... 내 딸(00)에게 이런 인식이 생겼을까?
내가 가장 좋아하고 사랑하는 딸이 아빠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니?
아니, 실제로 나는 그런 사람일까?
나 자신은 과연 이런 사람이 맞는가?
우연히 딸의 방에 들어갔다가, 기도 제목을 적어둔 수첩을 보게 되었다. 아빠로서의 궁금증이 작용했던 것이다. 여러 사람을 위한 기도 제목이 개별적으로, 그리고 매우 구체적으로 적혀있었다.
역시 훌륭하고 멋진 우리 장녀.
먼저, 우리 교회를 위한 기도 제목에는 가장 먼저 이렇게 올려두었다.
‘아빠의 고집으로 지키고 있는 목회자 자리가 되지 않도록’
그리고 조금 시간이 지난 후에 괄호를 만들어서 살짝 위에 덧붙인 것으로 보이는 글...
‘내 생각임. 아빠가 무엇을 위해 목회의 자리를 지키는 건지 알게 하소서...’
사실 이부분에는 사전 설명이 있어야 할 것 같다. 나는 16년동안 한 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섬기다가 교인들에게 오해를 받아 쫓겨나온 경험이 있다. 그러나 그후에 아무것도 없는 형편에서 다시 교회를 개척하여 지금까지 5년 이상 어렵게 목회를 해오고 있다. 딸은 이 모든 상황을 함께 겪었고 보고 있는 것이다. 날짜를 보니 7/14(월)에 올린 기도제목이다. 그러니 지금으로부터 5개월 전에 쓴 글(000교회를 위한 기도 제목)이다. 그리고 나를 위한 기도 제목에는 이렇게 쓰고 있다.
‘겸손히 섬기며... 더욱 성숙해지는... ’
내가 내 딸에게 겸손하지 못한, 그리고 아직 미숙한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부모인 우리 부부에 대한 기도 제목에는 이렇게 적어두었다.
‘엄마 아빠가 더욱 사랑으로 하나 되길’
‘엄마의 아빠를 미워하는 마음↓’
넘 마음이 아프고 슬프다. 난 왜 이런 사람으로 우리 딸에게 비쳤을까?
가장 가까운 내 가족에게, 내 딸에게... 정말 나는 그렇게 교만하고 미숙한 사람인 걸까?...ㅠ
가족을 위한 기도 제목에서 적은 나의 모습은 더 충격적이다.
‘아빠의 이기심 무너지고, 낮은 마음↑’
아, 난 이기적인 사람이며 매우 교만한 사람으로 우리 큰 딸에게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ㅠ
슬픈 마음을 참고, 나 자신을 고요히 성찰(省察)해보고 싶다.
먼저 ‘고집’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딸은 내가 지금 고집스럽게 목회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표현하고 있다. 나는 ‘사명감’이라고 쓰고 싶은 자리에 딸은 고집이라는 단어를 넣은 것이다. 그 아이가 사명감이란 단어를 모를 리가 없다. 나이가 33살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고집’이란 부정적인 단어를 썼을까? 일단 내 삶의 모습이 별로 좋지 않게 보였기 때문임을 부정할 수 없다. 나는 힘들고 어렵게 목회의 자리를 붙들고 있는데, 딸에게는 부정적으로 보이고 있다니... 넘 슬프다. 이런 인식을 하고 있는 딸에게 내가 무슨 말을 하고, 무슨 권면을 한들, 진지하게 받아들일까... 마음이 많이 무너진다. 내 평생 가장 큰 바램이 가족들에게는 좋은 사람, 훌륭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은 것이었는데... 100점은 못 받더라도 평균은 될 줄 알았는데... 아직 나는 그렇지 못한 것이다. 적어도 나의 큰 딸에게는... ㅠㅠ
내게는 다섯 명의 가족이 있다. 아내와 아들 하나, 그리고 세 딸. 현대사회에서는 상당히 가족 수가 많은 편에 속한다. 그들 모두에게 다 100점짜리 가장으로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단지 욕심이며 희망 사항일 뿐일지 모른다. 내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는 누구보다도 나 자신이 잘 아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이라도 내 가족이 나를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이 넘 마음이 아픈 것이다. 아마 아내는 더 그렇지 모른다. 그러면 두 사람이다. 이런.
나도 그랬다. 나도 어릴때 아버지를 좋아했다. 나만 좋아했다. 엄마와 두 누나, 그리고 나의 남동생은 아빠를 미워했다. 당연했다. 아버지는 가정을 소홀했고, 바람을 피웠으며, 심할 때에는 어머니와 누나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기도 했다. 아버지도 힘들었기 때문이었다고 나는 이해를 하려 했고, 그런 아버지가 너무 가엽게 보였었다. 나의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기에... 또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어린 시절은 가난 그 자체였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도 가족들에게 그런 존재란 말일까?
나는 크리스찬이다. 그중에서도 목사이다. 삶을 온전히 하나님을 위해 바치기로 하고 일생토록 목회자로 살고 있는 사람이다. 그렇다 보니 물질적으로 넉넉하지 못했고, 당연히 아이들은 부유하게 자라지는 못했다. 그래도 식구들이 많아서 아내와 아이들은 항상 밝게 살아온 것 같다. 아내의 공이 컸다. 그래서 나는 당연히 우리 아이들은 나를 좋은 아빠로 여겨줄 줄 알고 살아오는데, 오늘 큰 딸의 기도 수첩을 보고는 충격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이미 정해져 있지만, 아픈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 가족은 나의 인생의 가장 정확한 평가요, 판정이요, 투영(投影)이라고 보고 있는데, 너무도 실망스러운 큰딸의 평가에 나는 심하게 좌절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앞으로 밤잠을 더 자주 설치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