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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sil Blossom Jun 14. 2020

오늘도,
우리 가족이 산에 오르는 이유  

비빔 국수 맛있게 먹는 법

국토의 70%가 산인 대한민국에서 친구들과 사는 곳을 소개하다 보면 하나 같이 집 뒤에 산이 있는 것이었다. 종류도 다양하다. 북한산, 북악산, 안산... 으레 남들도 그러하듯 우리 집 또한 뒤를 든든히 지켜주는 산이 하나 있었다. 학교를 오갈 때, 특히 여름 방학이 시작되기 전에 갖은 짐을 싸가지고 올라올 땐 왜 이리 높은 곳에 집이 있는지 원망스러웠지만 비가 오는 날엔 흙냄새에, 풀냄새에, 나는 온갖 향기들이 달콤하게 느껴졌고 비 오는 것이 그렇게도 좋았다.


이렇듯 어린 시절 나의 자랑 아닌 자랑이 되어 주던 인왕산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종로구와 서대문구 사이에 자리를 잡고 있으며 바위로 이루어진 그리 높지 않은 산이다. (집 바로 뒤에 있어 친숙하기 때문인지) 부모님은 "산"이라는 글자 앞에 꼭 "동"을 덧붙여 동산이라 얕잡아 부르곤 하셨다. 마치 입으로는 한달음에 오르내릴 수 있을 것처럼 내려오는 길엔 "한 번 더 올라갔다 올 수 있겠는데? 어때?!"라며 허세를 부리셨다. 인왕산이 들으면 꽤나 슬퍼할 일이다. 문제는 130cm를 오락가락하는 내 키로 성인 남녀 발걸음에 맞춰 등산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는 것이다. 큰 보폭으로 성큼성큼 앞서가는 부모님이 야속하기만 했었다. 


정상으로 향하는 여러 갈래의 길들 중, 우리의 발도장이 찍히는 길은 따로 있었다. 지금은 공원으로 변한 터에 원래는 아파트가 하나 있었는데 그 아파트 사이를 가로지르는 개울을 따라 올라가면 등산로 초입에 닿는다. 약수터를 지나고, 절벽 옆 조그만 샛길을 지나, 오르고 오르다 보면 우리 가족이 지정한 첫 번째 쉼터가 등장한다. 여럿이서 걸터앉을 수 있는 이 바위에 서면 언제 이만큼 올라왔나 싶을 정도로 벌써부터 발아래 풍경이 펼쳐진다. 이미 숨이 차다 못해 무호흡으로 산을 오르던 나는 조금이라도 그 자리에 더 머물고 싶었다. 3분 같은 5분을 쉬고 나면 부모님은 그새 발걸음을 재촉하셨다. 오솔길을 따라 죽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백 개보다는 더 될 것 같은 기다란 계단이 성벽을 따라 펼쳐진다. 이 계단의 중간에 두 번째 쉼터가 있다. 이곳에서 자주 오가던 광화문 네거리를 손으로 짚어 보는 소소한 재미가 있었다. 이로부터 한두 번 더 쉬엄쉬엄 가다 보면 어느새 산 정상이었다.


지금은 공원으로 탈바꿈한 수성동 계곡에서 올려다 본 인왕산  -by BasilBlossom




등산을 갈 때에는 정상에 도착하여 김밥과 같은 도시락을 까먹는 것이 보통이지만 우리 가족은 늘 하산 후 집으로 돌아와 밥을 먹었다. 메뉴는 한결같았다. 비빔국수.


깻잎이 들어간 비빔국수  -by BasilBlossom


자고로 집에서 먹는 음식의 최고 장점은 배 터지게 먹을 수 있다는 점이다. 옆에서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자면 그리 어렵지도 않다. (그래서 우리 가족의 사랑을 받게 된 메뉴인 것 같다.) 우선 소면을 한 줌 잡아서는 눈대중으로 대강 양을 맞춰보는데 옆에서 서로 기웃기웃 "에이, 그거보다는 더 먹지." 의심에 의심을 거듭하여 모두가 인정하는 한주먹만큼을 국수 봉지에서 덜어낸다. 그런 다음 소면을 끓는 냄비에 넣어 푹 익힌다. 시간을 따로 재진 않는다. 그저 불투명한 면발이 투명해질 즈음, 대략 거품이 솟아오를 때 찬 물 붓길 두어 번 반복하면 체에 밭쳐 찬 물에 헹구어 준다. 가위로 잘게 다져준 김치와 함께 한국 음식의 영원한 영혼의 트리오 고추장, 간장, 다진 마늘에 설탕의 단맛 n스푼, 참기름의 향긋함 n방울, 그리고 빠져선 안될 식초까지 장갑을 끼고 한 데 어우러지게 섞기만 하면 완성이다.


기본적으로 위와 같지만 열무김치가 올라가기도 하고 때에 따라 부차적인 재료는 조금씩 달라진다. 아빠와 엄마의 비빔국수는 각자의 레시피에 따라 나름의 맛을 뽐내는데, 사실 난 어느 것이 더 낫다고 감히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둘 다 무척 좋아하기 때문에. 아빠표는 된장을 살짝 섞은 것이 포인트! 오묘하게 고소하면서도 중독성 있는 맛에 소스 때문인지 조금 꾸덕한 식감이다. 가끔 물을 잘 못 맞춰 뭉치고 덜 삶은 면이 씹힌다는 점은 우리 가족끼리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본인 작품은 완벽하다고 큰소리치는 아빠 덕분이다. 반면, 엄마표는 비빔국수의 정석이다. 항상 일정하게 잘 삶아져 찰진 면발, 새콤하면서도 적당한 양념의 맛이 어우러져 일품이다. 이렇게 잘 완성된 비빔국수는 발갛고 윤기가 흐르는 매력적인 자태를 자랑한다. 


내가 할 일은 세 개의 사발과 젓가락을 꺼내어 식탁 위에 가지런히 준비해 놓는 것뿐이었다. 그러면 엄마께서 각 사발에 양껏 덜어주신다. 가장 거대한 덩어리는 아빠, 그보다 좀 작은 덩어리는 엄마, 마지막 남은 덩어리가 바로 내 몫. 면을 먹을 때 우리는 배가 덜 찬 사람을 위해 소량을 남겨둔다. 이 몫을 때론 한 사람이 독차지 하기도, 때론 사이좋게 한 젓갈씩 나눠 먹기도 한다. 각자의 그릇 위에 오이를 총총, 통깨를 촵촵 뿌려 한 입 머금으면 인왕산을 혼자 짊어진 것만 같았던 고통이 단번에 희열로 변하는 것이었다. 김치의 아삭함과 면의 쫄깃함, 양념의 새콤 달콤함은 입안 가득 음식이 목으로 넘어가기도 전에 다음 젓가락을 서둘러 준비시켰다. 등산은 단지 이 순간을 위한 사전 행사일 뿐은 아니었을지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행복한 맛이었다.


성벽 위에서 찍은 모습(좌)  |  인왕산 숲 속 돌계단에서의 모습(우)  -by BasilBlossom


국수를 먹을 때 아빠에게는 또 다른 행복이 있었다. 막걸리. 그것도 마시면 만수무강할 것 같은 이름의 막걸리가 아빠 자리에 특별하게 놓인다. 나는 마시지도 못하는 거 냉장고에서 꺼내오라고 심부름시키면 툴툴 대면서도 안 꺼내올 수가 없었다. 이 초록색 막걸리 병은 뚜껑이 있는데도 기어코 술이 흘러나와 냄새가 손에 묻는다. 냉장고에 보관되어 있던 막걸리를 아빠는 그날 기분에 따라 고루 흔들어 마시기도, 층이 나뉘어진 그대로 마시기도 하였다. 막걸리도 콜라, 사이다처럼 잘못 열면 내용이 흘러넘치는데 맨날 마시는 거, 아빠는 그걸 제대로 못 열어서 줄줄 새면 옆에 있던 엄마의 핀잔을 듣곤 하셨다. 그 옆에 앉아 있던 나는 초록색 불청객이 여간 분위기를 맞추지 못하는 것 같아 우리 사이에서 빠져주길 내심 바란 적도 있었는데 이제 보니 이 친구만 줄 수 있는 정겨움이 있는 것 같다. 어느덧 가족과 잔을 부딪칠 수 있음에 새삼 뿌듯해진다. 그리곤 비빔국수와 막걸리가 생각보다 잘 어울리는 조합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비빔국수에 셋이 함께 하는 '짠'까지 더해져 비로소 우리의 식탁은 완벽해졌다.




어릴 때는 산에 왜 올라야 하는지 몰랐다. 누군가는 "거기 있기에 올랐다.(Because it is there.)"라는 말을 남겼다지만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든 가지 않기 위해 애쓰던 나였다. 하지만 도시 생활에 익숙해져 미세 먼지의 농도를 체크하는 일상이 당연해질수록  봄, 여름, 가을, 겨울 할 것 없이 언제나 푸른 기운으로 우리를 맞아 주는 숲이 그립지 않을 수 없다. 


나는 160cm가 넘는 키로 훌쩍 자라 인왕산은 물론 북한산도 거뜬히 오르는 등산객으로 성장했다. (북한산을 거뜬히 오르는 등산객일지라도 등산 후엔 역시 비빔국수더라.) 중국 유학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인왕산을 다시 한번 올라보았다. 갔던 길도 지겹지 않고, 가보았기에 더욱 반가운 길이었다. 가는 길마다 우리 가족의 발자국을 간직하고 있길래 고마웠다. 사랑하는 가족과 산의 싱그러운 풀내음을 즐기고 행복의 맛을 공유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기쁜 일이다. 우리 가족이 진정 사랑한 것은 비빔국수라는 열쇠로 열면 마주하게 될 산행의 추억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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