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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 Aug 27. 2022

때가 있다

최근 몇 달, 주말만 되면 내편을 깨워 아침밥을 달라고 성화를 부린다. 평일에는 배가 고플 때까지 뒹굴다가 밥을 차려 먹는데 주말에는 내편을 닦달해서 배고픈 속을 달랜다. 요즘 고기가 영 내키지 않지만 내편은 고기파이므로 오늘 아침은 돈가스와 냉모밀이었다. 사실 맑은 국에 간단한 반찬이면 충분하지만 주는 대로 먹기로 했다. 돈가스는 맛있었는데 냉모밀은 대실패였다. 저렴한 가격을 보고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지만 면이 아주 별로였다. 제대로 삶지 못한 느낌. 

햇살이 좋아 이불을 빨았다. 비가 자주 오는 여름에는 건조기가 간절한데, 오늘처럼 햇살이 좋은 날에는 건조기 따위 필요 없다. 낮에는 무얼 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지인에게 연락이 왔다. 오래간만에 부부가 포켓볼을 치러 가는데 같이 나가겠느냐고. 나는 집에서 쉴 생각이었기 때문에 내편에게 다녀오라고 했다. 혼자 놀면 심심하지 않냐고, 평일에도 종일 혼자 있었는데 괜찮겠느냐고, 내편이 여러 번 물었다. 늦은 아침도 든든하게 먹었겠다, 오늘 저녁에 있을 토트넘 경기는 같이 볼 수 있으니 다녀오라고 했다. 평일에는 힘들게 일하고 들어와서 잠자기 바쁜데 주말에라도 놀아야지. 

머뭇거리면서도 신이 나서 설거지를 하고 춤을 추는 내편을 보니 웃음이 났다. 아니 그렇게 좋으면 종종 나가지. 못 나가게 하는 것도 아닌데, 누가 보면 내가 바짓가랑이를 붙잡는 줄 알겠다. 콧노래를 부르며 준비하는 내편을 보며 자주 등 떠밀어 내보내야겠다고 다짐했다. 내편을 보내고 한숨 잤다. 더운 줄 모르고 자다가 땀에 흠뻑 젖어 일어났다. 에어컨을 틀고 샤워를 했다. 귀찮아서 머리만 감으려다가 게으른 나를 다그쳐 샤워까지 마쳤다. 이렇게 상쾌한 것을. 

문득 밀크티를 마시고 싶어서 외출했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깜짝 놀랐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햇살 좋은 날. 집 앞 놀이터에 할머니들이 자주 나와 앉아 계시는데 그 이유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상쾌한 날씨다. 카페 밀크티는 당 조절이 안 되는 게 많아서 편의점으로 갔다. 편의점 제품은 그나마 당이 얼마나 들었는지 눈으로 확인이 가능하니까. 당류 20% 미만 짜리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갔는데 밀크티가 몇 가지 없었다. 마침 1+1 제품이 있길래 보니까 당류가 25%였다. 30%가 넘는 게 허다한데 25% 면 양호하다. 

산책하듯 걸으며 부드러운 바람과 햇살을 만끽했다. 좋다 정말. 집에 돌아와 밀크티를 마시며 책을 읽었다. 밀크티의 첫맛은 좀 달게 느껴졌는데 먹을수록 괜찮았다. 요즘 입맛이 바뀌었는지 달달한 밀크티도 먹을 만해졌다. 너무 달콤한 밀크티는 싫은데 맛있어서 다행이다. 책이 술술 읽혔다. 

몇 주 컨디션이 안 좋았는데 차츰 좋아지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낮잠도 많이 줄었다. 컨디션이 좋아지니까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게 많아졌다. 먹고 자고 쉬는 게 전부인 것처럼 지낸 몇 주 동안에는 뭘 하고 싶다는 마음도 들지 않았는데. 

뭐든 때가 있는 것 같다. 쉴 때, 놀 때, 일해야 할 때, 공부해야 할 때. 쉬어야 할 때 억지로 무언가를 하려고 하면 쉬지도 못하고 되는 일도 없다. 잘 쉬었으니, 이제 다시 즐겁게 움직일 수 있을 것 같다.  

참으로 상쾌하고 즐거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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