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드릭 배크만 작가는 <오베라는 남자>를 통해 알게 되었다. 까칠하고 독특한 오베. 흑백처럼 느껴지던 그가 이웃들과 관계를 맺으며 찬란하게 빛나는 여정을 그린 이야기가 참 좋았다.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도 비슷한 느낌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다른 구성과 전개에 놀랐다.
이야기에 앞서 등장인물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아파트 입주민들의 그림이 있어서 복잡한 인물관계와 낯선 이름에 익숙해질 수 있다. 간단한 두 페이지지만 흐름을 따라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는 일곱 살 엘사와 엘사의 영웅 할머니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나이에 비해 성숙하고 똘똘한 엘사는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한다. 선생님을 비롯한 어른들에게도 너무나 독특한 존재다. 이런 엘사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할머니는 엘사를 위해서라면 병원을 탈출해서 동물원 담을 넘기까지 한다. 엘사가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거나 속상한 일이 있을 때 할머니는 기꺼이 엉뚱한 일을 벌여 아이를 위로해 준다. 할머니는 엘사에게 둘도 없는 친구이자 영웅이다. 그런데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할머니의 편지를 사람들에게 전하며 슬픈 진실과 마주하게 되는 엘사. 그 과정을 통해 엘사는 아파트 주민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이웃과의 관계를 확장해가면서 삶의 새로운 영역으로 들어서게 된다.
믿음이 있어야 해. 할머니는 입버릇처럼 그렇게 말했다. 믿음이 있어야 동화를 이해할 수 있다. "뭘 믿는진 중요하지 않고 다만 뭐라도 믿는 게 있어야 한다. 그러지 않을 거면 차라리 전부 다 잊어버리는 게 낫지."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 p.441
일곱 살 엘사의 시선에서 진행되는 이야기의 시작은 동화다. 책 전반에 걸쳐 펼쳐지는 상상의 세계는 참으로 매력 넘친다. 신비로운 왕국에서의 모험과 영웅 이야기가 뒤섞여, 무한한 상상력을 펼치던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한다. 하지만 점차 동화와 현실이 묘하게 맞물리면서 무엇이 상상인지 진실인지 혼란스러워진다. 동화로 시작해서 아픔과 슬픔이 담긴 현실로 넘어오는 전개가 놀랍다. 커지는 호기심을 안고, 엘사와 함께 할머니가 남긴 편지 속으로 풍덩 빠지게 된다.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에 엘사가 새로운 이웃 주민과의 관계를 확장해나가도록 만든 흐름도 놀랍다. 어쩜 이렇게 독특한 설정과 구성으로 이야기를 지을 수 있는지.
어른들이 생각하는 독특한 아이는 그저 좀 많이 생각하고 좀 더 많이 웃고 싶은 아이일지도 모른다. 그런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고, 아이가 마음껏 웃으며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아이를 위한 행동을 마다하지 않는 할머니의 모습에서 넘치는 사랑을 보게 된다. 나도 할머니처럼 아이들에게 넉넉한 사랑을 전하는 어른이 되고 싶다. 책을 덮고 나면 독특해도 괜찮다는 할머니의 메시지가, 엘사의 사랑스러움이 나를 위로해 준다. 평범하지 않다는 생각, 남과 다르다는 생각에 위축될 필요 없다는 사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