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에 글을 잘 쓰고 싶어서 글쓰기 모임에 참여했다. 독서모임을 하면서 매주 후기를 썼는데 책 내용을 정리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모임 감상만 쓰기에는 부족한 것 같고. 모임 후기에서 벗어나 책 리뷰를 쓰고 싶기도 했다. 작년 초까지만 해도 책을 읽고 감상을 쓰는 것이 나에게는 참 어려운 일이었다. 한번 쓰기 시작하면 마무리까지 몇 날 며칠을 고심하는 나로서는 짧은 감상을 블로그에 자주 올리는 이들이 신기하고 부러웠다.
처음에는 A4 반 페이지를 채우기도 어려웠다. 그동안 굳어져 온 스스로를 검열하는 습관, 나 자신을 숨기려고 하는 태도, 조금의 실수도 용납하지 못하는 딱딱한 시선 등이 나를 머뭇거리게 했다. 신기한 것이 숨기려고 하면 할수록 내가 드러났다. 아닌 척해도 글 안에 담겨있는 것은 아무리 봐도 나였다. 책을 읽고 글을 썼기 때문에 책과 관련된 미묘한 생각을 명확하게 정리해야 할 때가 많았는데, 참 어려웠다. 나의 부족한 생각이, ‘생각 없음’이 그대로 드러날 것 같아서 두려웠다. 재밌게도 숨기고 포장하기 위해 노력할수록 못난 글이 되었다. 오히려 마음을 비우고 편안하게 쓴 글, 의식의 흐름대로 쓴 글들이 호평을 받았다. 뭐든 힘을 빼고 하는 것이 가장 좋구나. 새삼 깨달았다.
외면하고 무시했던 내면과의 만남을 통해 아픈 시간을 보냈다. 꾹꾹 숨겨두었던 아픈 기억을 힘겹게 끄집어 올리는 것이 참 힘들었다. 나의 민낯을 속속들이 파헤치는 일은, 생각보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처음에는 큰 용기가 필요했는데, 차츰 작은 용기만으로도 진짜 나와 대면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글로 풀어놓고 나면 신기하게도, 마음이 상쾌해졌다. 싫다고 여겼던 내 모습이 받아들여지고 심지어 좋아졌다. 글을 쓰는 시간은, 나를 이해하는 시간이었다.
나에 대한 이해를 넘어 어지러운 생각들을 글로 풀어내기 시작했다. 빈 화면에 날뛰는 생각들을 쏟아버리면 머릿속이 잠잠해질 줄 알았는데 웬걸, 더욱더 많은 생각들이 솟아나서 활개를 쳤다. 싫지 않았다. 쓸모없다고 믿었던 것들이 글이 되어 그럴듯한 모양새를 갖추는 과정이 재밌었다. 글쓰기 모임을 통해 매주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나는 쓸모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가득했다. 직장도 없고 아이도 없고 돈도 없고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자신의 경험에서 글감을 찾아 쓰라’는 이야기를 듣고 생각했다. ‘내 인생은 별게 없는데... 딱히 쓸만한 경험을 한 것도 아닌데.. 나에겐 아무것도 없는데...’ 책상에 앉아 빈 화면을 켜면 막막해졌다. 그런데 또 한 줄 한 줄 써 내려가다 보면 어떤 글이든 만들어졌다. 글의 좋고 나쁨을 떠나서 내 안에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 기뻤다. 뭐가 있긴 있고, 아무리 꺼내 써도 또 생긴다는 게 좋았다.
최근에는 이야기를 지어내는 것이 즐겁다. 원칙주의, 완벽주의 성향이 강해서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것들을 글을 통해 풀어내면서 해방감을 느낀다. 경험에 대한 글을 쓸 때 최대한 있었던 그대로 쓰려고 노력했었는데, 지금은 자유롭게 흘러가도록 둔다. 나의 경험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돼도 괜찮다. 내 이야기도 좋고 지어낸 이야기도 좋다. 나의 생각이 막히지 않고 어디로든 흘러가 이야기가 만들어진다는 것이 그저 재밌다.
몰랐던 나와 친해지고, 생각을 쏟아내며, 스스로 쌓아왔던 경계를 무너뜨려 자유를 누리는 시간. 나를 만나고 나와 노는 시간. 요즘 내가 글을 쓰는 시간이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