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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 Apr 07. 2021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방촌의 채식주의자 / 전범선

표지의 초록과 빨강, 얇은 두께, ‘휘뚜루마뚜루(닥치는 대로 마구 해치우는 모양) 자유롭게’라는 부제를 보고 가벼운 산문집인 줄 알았다. ‘채식주의자’가 마음에 걸렸지만 크게 어렵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오해. 쉬운 이야기를 하는 듯 술술 읽히지만 짧은 글 속에 담겨 있는 역사, 현실에 대한 통찰이 놀랍다. 이해하지 못하고 스윽 넘어간 부분도 많다.


글 쓰고 노래하는 저자 전범선은 민족사관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다트머스대학교와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대학원에서 역사를 전공했다. 밴드 '양반들'의 보컬로 활동하며 '아래로부터의 혁명'이라는 노래로 2017년 한국 대중음악상 최우수 록 노래상을 받았다. 책방 '풀무질'의 대표, 출판사 '두루미'의 발행인이다. 경쟁에 중독되어 '이김으로써 즐거움을 느끼는 시기'를 지나 대학에서 역사와 인문학을 공부하면서 '즐거운 게 이기는 거다'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진로 선택을 앞두고 불행과 불안 중 불안을 택했고, 현재 예술가 겸 사업가의 삶을 살고 있다.


책은 총 3부로 되어 있다. 1부 '휘뚜루마뚜루 : 나의 뿌리를 찾아서'에서는 1등을 추구하던 저자가 민족사관학교에서, 미국과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 공부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대한민국의 뿌리를 이해하는 과정을 그린다. 2부 '성균관 두루미 : 나의 자리를 찾아서'에서는 저자의 서평이 실려 있다. 자신의 자리를 찾아 이런저런 일에 도전하는 과정과 사회의 다양한 이슈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3부 '해방촌의 채식주의자 : 모두의 자유를 위하여'에서는 채식, 동물 해방, 환경 이야기가 펼쳐진다. 지금 당장 바뀌지 않으면 인류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 없다는 것을 호소한다.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 저자의 삶이 굉장히 이상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는 것을 그대로 실천하고, 사회적 성취나 명예보다 스스로의 자유를 위해 '느끼는 모두의 자유를 위해 행동'하는 것.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신념과 행동 간의 불일치 - 인지 부조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상과 현실, 신념과 행동의 부조화를 인정할 용기가 필요하다(p.157)'라는 부분에서 저자의 깊은 통찰이 느껴진다. 아는 것이 너무 많아서, 어떤 현상 이면에 있는 것들을 꿰뚫어 보는 눈을 가지고 있어서, 스스로의 자유만큼 모든 존재의 자유가 중요하다는 것을 깊이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실천하고 행동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감탄과 경외감으로 책을 읽어 내려가다가 종국에는 작가의 바람대로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채식, 환경 문제, 지구온난화 등의 이야기는 들어도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기 일쑤였는데 논리적이면서도 다급한 마음을 담은 저자의 말은 외면하기가 힘들다. 지식과 진심으로 무장한 저자의 글을 읽다 보니 나 또한 다급해졌다. 외면하기에는, 환경 및 기후 문제는 남의 일이 아니다. 당장 나의 일, 아이들의 일이다. IPCC(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가 말하는 '기후 데드라인(이미 너무 늦어 돌이킬 수 없는 시점)'은 2030년이다. 2030년까지 탄소 배출을 절반으로 줄이지 못하면 불가역적인 연쇄반응이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10년, 너무 짧은 시간 아닌가. 스웨덴 소녀 툰베리의 외침이 나를 향한 다그침 같았다.


그레타 툰베리의 외침에 전 세계가 깨어나고 있다. 열여섯 살 스웨덴 소녀는 탄소 배출 없는 배를 타고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 가서 세계 지도자들을 다그쳤다. ”우리는 집단 멸종의 기로에 서 있는데, 여러분은 오직 돈과 영구적인 경제성장에 관한 동화 같은 이야기만 늘어놓고 있습니다. 어떻게 감히 그럴 수 있습니까.” p.169


책을 읽은 날, 여느 날과 다름없이 저녁은 고기였다. 남편이 퇴근길에 사 오기로 했는데 책을 덮으면서 괜히 시켰나.. 고기 말고 다른 음식을 먹을 수는 없나.. 쭈뼛거리는 죄책감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다음 날 우연히 들른 서점에서 툰베리의 책을 발견하고 훑어보았다. 그리고 다짐했다. 채식주의자가 되지는 못하겠지만 육식을 줄이자. 환경을 위해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자. 작은 것부터 실천하자.


하지만 며칠 뒤 저녁에 또 음식을 포장했다. 잔뜩 쌓여 있는 포장용 플라스틱에 죄책감도 쌓인다. ‘그래, 어찌 사람이 한 번에 변하겠어. 이제껏 길들여진 편안한 생활을 바로 벗어던지긴 어렵지....’ 궁색한 변론으로 행동을 정당화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다짐한다. 외면하는 대신 부끄러움도 죄책감도 마주하자고. 그동안 굳혀온 생활 습관을 단번에 바꾸기는 어렵겠지만, 자주 인지 부조화에 괴롭겠지만, 그래도 노력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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