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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 Jun 25. 2021

혼자 그리고 함께

그림책 '똑,딱'을 읽고 쓴 픽션입니다.

“우리 내일은 각자 하고 싶은 거 하고 저녁 같이 먹을래요?”     


‘어? 내가 뭘 잘못했나. 갑자기 왜 저런 제안을 하는 거지?’     


순식간에 머릿속이 뒤죽박죽 엉켜버렸다.     


*

홀로 여행을 떠나온 지 6일이 되었다. 여행이 아니라 고립 체험이라고 해도 될 만큼 5일 동안 누구와도 말을 트지 못했다. 영어가 서툰 탓도 있었지만 여행의 원인이 된 ‘민희와의 다툼’으로 의기소침해져 있었다.     


사실 이 여행은 민희와 함께 하기로 했었다. 매일 여행지와 숙소 링크를 보내며 여행 준비에 열을 올리는 그녀가 있어 든든했다. 여행지와 숙소, 대략적인 날짜를 정한 뒤 항공권을 알아보았다. 하루가 다르게 가격이 올라서 앞자리가 바뀌었다. 의논 끝에 날짜와 시간을 정해 예약하고 각자 결제하기로 했다. 다음 날 항공권을 결제하고 연락했더니 민희가 황당한 말을 했다.     


“너랑 여행 가기 싫어졌어.”     


민희는 여행을 계획하면서 나의 엄마가 된 기분이었다고 했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면서 모든 결정을 자신에게 맡기는 내가 불편했단다. 그럴 리가. 분명 나도 여행지를 찾고 동선을 정하고 맛집을 찾았다. 억울했다. 깐깐한 신 과장의 눈총을 받으며 휴가도 확정 지었고 항공권도 결제했는데..     


**

숙소에 짐을 풀고 밖으로 나왔다. 여름 휴가지의 들뜬 분위기가 맴도는 매력적인 도시였지만 내 눈에는 굳게 닫힌 식당들만 들어왔다. 운 좋게 영업 중인 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피자 한 판과 맥주를 주문했고 겨우 한 조각을 먹었다. 피자는 바닷물보다 짰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에도 나는 음식을 남겼으며 종일 물을 마셨다. 분명 원해서 떠나왔는데 무엇을 보아야 할지, 어떤 음식을 먹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정처 없이 걸었고, 배가 고파지면 눈앞에 보이는 식당에 들어갔다.     


‘너는 습관처럼 남에게 의지해. 혼자 뭘 해 본 적이 있어?’     


한숨 섞인 민희의 말이 내내 귓가를 맴돌았다.     


여행 5일째, 홀로 여행하는 승인 씨를 만났다. 성벽 투어를 할 생각인데 아직 안 했으면 같이 다니자는 그녀를, 하마터면 와락 끌어안을 뻔했다. 승인 씨가 이끄는 대로 성벽을 거닐다가 점심을 먹는데 눈물이 났다. 이 도시에 이렇게 맛있는 음식도 있구나 싶어서.     


***

“우리 내일은 각자 하고 싶은 거 하고 저녁 같이 먹을래요?”     


분명 성벽을 걷고 커피를 마시고 밥을 먹을 때, 승인 씨에게 특별히 실수한 게 없다. 그런데 왜.. 혼자보다는 같이 다니는 것이 좋을 텐데 왜..?     


“오늘 걸었던 성벽이 너무 좋아서 내일 하루 더 돌아보려고요. 지민 씨도 가고 싶은 곳이 있을 테니 내일은 각자 여행하고 저녁에 만나요.”     


아... 나는 가고 싶은 곳이 없다. 성벽 투어가 있다는 것도 승인 씨를 통해 알게 되었다. 함께 걸었던 성벽에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는지, 이 도시의 유명한 음식은 무엇인지도 모두 그녀를 통해 알게 되었다. 어쩌면 정말로 나는, 여행 준비에 있어서 많은 것을 민희에게 떠넘겼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렇지 않은 척 그렇게 하자고 하는 나와 달리 승인 씨는 정말 아무렇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홀로 여행을 하다가 의견이 맞으면 같이 다니고 또다시 각자 여행하다가 다시 만나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였다. ‘일정이 맞는 한 함께 다니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갑자기 너무나 이상하게 느껴졌다.     


내일 하루는 정말 ‘혼자’ 놀아봐야겠다. 정처 없이 헤매는 대신 걷고 싶은 길을 걷고,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는 대신 마음에 드는 곳을 골라 밥을 먹어야지. ‘혼자 뭘 해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던 민희에게 내가 선택한 길과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해 말해줘야지. 꼬옥 안아주며 고맙다고 말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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