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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 Dec 25. 2021

스스로를 세뇌시키는 말

<멋진 신세계>를 읽고

<멋진 신세계>의 머리글을 읽고 무척 당황했다. ‘예술의 도덕, 문학적인 결함들, 일상적인 어떤 부족한 행실에 집착하는 죄의식, 철학적인 완벽함’ 등 쉽게 와닿지 않는 단어들이 생소했고, ‘야만인’에 대한 설명은 도통 무슨 말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머리글부터 이해가 안 된다니.. 과연 이 책을 이해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머리글을 다시 읽으려다가 무작정 이야기 속에 빠져보기로 했다.


올더스 헉슬리의 1932년작 <멋진 신세계>는 과학 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미래를 그리는 소설이다. 모든 인간은 인공수정으로 태어나며 하나의 난소로 수천, 수만 명의 쌍둥이를 만들어낸다. 태어나기 전에 이미 어떤 계급으로 살지 정해져 있고, 아이들의 양육과 교육은 전적으로 국가가 담당한다. 이 사회에서 ‘결혼, 임신, 출산, 어머니, 아버지, 가정’ 등은 추잡하고 더러운 개념이다. ‘멋진 신세계’의 계급은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엡실론인데, 태아 때부터 조건반사와 최면 학습을 통해 계급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세뇌당한다. 단순노동을 담당하는 델타 계급 미만의 태아에게는 고의로 산소를 부족하게 공급하고 알코올을 주입하여 신경계를 망가뜨리기도 한다. 촉감 영화, 간단한 경기 등으로 여가를 즐기며 ‘소마’라는 약을 통해 늘 행복과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소설은 ‘부화-습성 훈련국장’이 학생들을 데리고 각 부처를 견학시키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무슨 상황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상태였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미래 사회임을 깨달았다. 계급과 관계, 주인공들을 이해하며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세밀한 묘사 덕분에 상상하는 재미가 있었다. 1932년에 쓰였다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현재 사회를 반영하는 부분이 많다. 인공 수정과 시험관, 사회의 부품에 지나지 않는 사람들,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점차 분명해지는 계층, 소비가 미덕인 사회 등 지금과 닮은 모습이 놀라웠다.


<멋진 신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편해 보이기도 하다. 태어날 때부터 조건반사와 최면 학습을 통해 길들여져 있기 때문에 갈등이 존재하지 않으며, 아이를 힘들게 낳지 않아도 된다. 모두가 자신의 위치에 만족하고 걱정거리도 없다. ‘소마’를 통해 늘 흥겨운 기분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가장 무섭고 끔찍한 부분도 바로 이것이다. 세뇌를 통해 주체성을 잃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인지하지도 못한다는 것. 주어진 대로 받아들이며 행복한 동물이 된다는 것. 그래서 안정적이고 질서정연해 보이는 <멋진 신세계>가 섬뜩하게 느껴졌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태아 때부터 이루어지는 ‘최면 학습’이다. 계급이 정해진 아이들은 잠을 자는 동안 자신의 계급에 해당하는 말들을 ‘4년에 걸쳐 일주일에 3일 밤 동안 100번씩 반복(P92)’해서 듣는다. 다음과 같은 말들이다.


알파 아이들은 회색 옷을 입어요. 그들은 너무나 무서울 정도로 총명하기 때문에 우리들보다 훨씬 열심히 일합니다. 나는 그렇게까지 열심히 일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베타가 되었다는 것이 정말로 굉장히 기쁩니다. 그런가 하면 우리들은 감마나 델타보다 훨씬 좋습니다. 감마들은 어리석어요. 그들은 모두 초록색 옷을 입어요. 그리고 델타 아이들은 황갈색 옷을 입습니다. 아, 싫어요, 난 델타 아이들하고는 놀고 싶지 않아요. 엡실론들은 더 형편없죠. 그들은 너무 우매해서 글을 쓰거나 읽을 능력이 없어요. 그뿐 아니라 그들은 너무나 흉측한 빛깔인 검정색 옷을 입어요. 나는 내가 베타여서 정말로 기쁩니다. <멋진 신세계> p.64


이 과정을 거쳐 다양한 사회적 암시들이 아이들의 이성이 된다. 어른이 된 이후에도 평생 동안 사회에서 세뇌시키는 암시들의 지배를 받는다. 오늘날의 현실도 다르지 않다. 나는 어떤 사회적 암시에 묶여 있을까, 나를 둘러싼 문제를 어떤 언어 자극 때문에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있을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러다가 만나게 된 것은 ‘내가 나에게 거는 암시’였다.


스스로를 세뇌시키는 말.


지난 2년 동안 몰입해서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극단적인 말은 대부분 버렸다. 모든 것이 엉망이야, 최악이야, 나는 못해, 나는 쓸모없어 등등. 사실 ‘모든 것이 엉망’이었던 적은 한순간도 없다. 그렇게 느끼는 때에도 나는 밥을 먹었고 잠을 잤으며 나의 존재만으로도 기뻐하는 부모님과 함께였다. 그럼에도 우울해지는 날에는 주문처럼 저 말들을 되뇌었고, 날 선 말들이 비수가 되어 마음에 꽂혔다.


대부분의 부정적인 언어 자극과는 헤어졌지만 아직도 남아 있는 문장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넌 중간이야. 어떤 분야에서도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수는 없어’ 언제 어떻게 왜, 이런 말을 나에게 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건 <멋진 신세계>에서 실시한 ‘최면 학습’의 반복보다 훨씬 여러 번, 나 자신에게 되풀이했다는 것이다. 무의식에 단단히 자리 잡은 저 녀석은 아주 오랫동안 나의 발목을 잡았다. 결정적인 행동을 할 때마다 나를 주저앉혔으며 새로운 도전 앞에서 고개를 돌리게 만들었다.


무의식에 자리 잡은, 진실이 아닌 말들과 멀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어째서 아직 남은 것이 있는 건지.. 마음이 아프다. 사회적인 암시보다 더 무서운 말. 한 번에 저 녀석과 헤어지기는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일단 존재를 알았으니 나도 모르게 되뇌는 것은 멈출 수 있다. 대신 앞으로는 다른 말을 들려주기로 한다.


‘넌 지금 이대로 충분히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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