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나 May 04. 2022

아디오스, 메히코

멕시코 방황기(彷徨記) 12편

어느새 멕시코에서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마리나는 내가 와있는 열흘 동안 자신의 방과 시간을 모두 내어주어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심지어 함께 작업을 하는 프로젝트 그룹의 멤버들에게도 폐를 끼치고 있었다. 결국 마지막 날 마리나는 일을 위해 이른 아침 떠나야 했고 조금 이상하지만 마리나 없는 마리나의 집에 내가 남겨진 채로 작별 인사를 하게 되었다. 


마리나의 집 대문 앞에서 서로를 꼭 껴안아 주고 내가 떠나는 것이 아니라 마리나가 떠나는 이 기이한 작별 인사 앞에서 우리는 웃음이 터져 버렸다. 


"이건 이별 같지가 않아."

"그래서 더 좋은 거야."


마리나는 가끔 현자다운 소리를 한다. 


사실 마리나와는 마지막 날 함께 가기로 한 곳이 있었다. 바로 멕시코시티 근교에 있는 '소치밀코(Xochimilco)라는 운하도시이다. 이탈리아 베니스처럼 보트를 타고 운하를 누빌 수 있고, 마리나가 애정 하는 화훼시장이 있다고도 했다. 하지만 결국 마리나가 함께 하지 못하자 나도 기운이 빠지고 말았다. 마리나에게 혼자 소치밀코에 가면 더 우울할 것 같다고 하자 마리나가 당황해하더니 30분 뒤에 갑자기 뜬금없는 제안을 해왔다. 


"레나, 네가 혼자 다니는 게 우울하다고 해서 이모부가 와주시기로 했어!"

"뭐어어어어어??"


이런 맥락이 있는 듯하면서도 없는 듯한 전개에 나는 조금 놀랐다. 우리로 치면 굉장히 말도 안 되는 상황이지만 가족들 사이의 끈끈함으로 치면 전 세계를 제패하고도 남을 멕시코인들에게는 매우 가능한 일이었던 것이다. 나는 아직 만나보지도 않은 마리나의 이모부가 벌써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이미 그렇게 부탁까지 해놓은 마리나를 두고 거절할 수 없어 오전에는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으니 오후에 와주시길 부탁했다. 


그렇게 오전에 나는 마리나의 동생 이반에게 멕시코 음악가 추천 리스트를 전수받고, 친구가 추천 해준 '쉬림프 타코'로 맛있는 타코 집에 다녀왔다. 또 그토록 좋아하는 시장에 가서 마지막 쇼핑을 마치자 어느새 마리나의 이모부를 만날 시간이 되고 말았다. 이쯤 되니 부담스러움 보다는 약간의 짜증이 밀려왔다. 혼자 보내는 여유로운 오전이 나는 기대했던 것보다 마음에 들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마리나의 이모부를 막상 만나고 나니 나에게 밀려왔던 짜증은 어느새 죄책감이 되어 사라져 갔다. 마리나의 이모부는 나를 만나고 약 30분까지는 한국의 아토미(ATOMY)라는 브랜드에 대해 엄청나게 질문공세를 하기 시작했지만, 그에 대해 '암웨이'같은 존재라는 사실 외에 나는 아는 것도, 아토미 제품을 써본 적 없다는 굳건한 나의 대답에 비즈니스 이야기는 접기로 한 듯했다. 


마리나의 이모부 부부는 나를 데리고 멕시코의 로컬 마트(안타깝게도 전통시장만 가느라 한 번도 못 가봤던 탓에), 본인들의 집 그리고 마지막으로 멕시코 전통 바비큐 레스토랑에 이어진 속성 멕시코 투어를 완성시켜주셨다. 사실 마지막 날 내가 가장 도전해보고 싶었던 음식은 바로 '콘소메 수프'였다. 닭 육수로 만든다는 멕시코의 '콘소메 수프'의 오리지널리티를 현지에서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마리나의 이모부 부부는 매우 고심을 하다가 결국 바비큐 레스토랑으로 결정을 한 것 같았다. 내가 원하는 콘소메 수프도 중요하지만, 멕시코의 전통 음식을 먹이지 않고 보낼 수 없다는 의지가 있는 듯했다. 물론 그곳에서 나는 그토록 염원했던 콘소메 수프를 만날 수 있었다. 



식사를 다 마치고 나니 떠날 시간이 되었다. 마리나 이모부 부부는 공항까지 가는 우버를 부른 나와 함께 기다려주고 짐까지 실어준 뒤에야 인사를 하고 떠났다. 그날 아침의 부담스러움은 온데간데없고, 헤어짐의 아쉬움이 가득 남았다. 


열흘 동안 물심양면으로 나를 챙겨준 마리나의 가족들, 한 사람 한 사람 그 얼굴들이 기억에 남는다. 특히 딸의 친구를 친딸처럼 때로는 친구처럼 대해준 마리나의 엄마. 스페인에서도 마리나와 헤어지던 날 그곳에는 마리나의 엄마가 있었다. 마리나의 엄마는 그날 처음 본 나에게 '미 까사 에스 뚜 까사 (내 집이 곧 너의 집이야)'라고 하며 멕시코에 초대해주셨다. 그리고 3년 뒤 내가 정말 그 '까사'에 나타난 것이었다. 다음번엔 우리 집에 초대하고 싶었다. 마리나와 함께 꼭 한국에 와달라고 말씀드렸다. 


멕시코에 가기 전에 한 달 가까이 멕시코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2권의 책을 사서 읽고 공부를 했다. 그만큼 생소하고 우리에게 알려진 것이 별로 없는 나라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노력과 시간을 들인 나 자신에게 힘껏 칭찬해주었다. 그 덕에 멕시코와 한결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다. 물론 반 이상은 마리나의 가족들 덕이었지만. 


그리고 그로부터 4년 뒤인 현재, 마리나는 멕시코시티를 떠나 남자 친구와 함께 카리브해를 끼고 있는 '툴룸(Tulum)'이라는 작은 해안가 마을에서 지내고 있다고 한다. 그의 강아지 타로와 함께!


21년 코로나로 발인 묶인 시기 마리나로부터 연락이 왔다.


"레나, 툴룸엔 언제 올 거야?"


나는 당시에 너무 가고 싶다는 말만 되풀이했을 뿐 언제라고 말하지 못한 채 대화가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때 못한  대답을 지금 하고 싶다. 


"베리 순! 곧 갈게!"


또다시 떠날 수 있기를!


Adios, Mexico y hasta pronto (아디오스 메히코 이 아스타 쁘론토)

안녕, 멕시코 그리고 곧 만나자

매거진의 이전글 수입 식료품 마켓, 메르까도 로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