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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훈 Feb 22. 2022

AIMEZ-VOUS BRAHMS?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나 자신보다도
그리고 이 지상에 있는 그 어떤 것보다도 당신을 더 사랑합니다"


가을은 가장 좋아하는 계절입니다. 제가 태어난 계절이기도 하지만 가을은 붉은 색감으로 덧칠해져 가는 시각적이며 풍요로움의 순간이며 또한 쓸쓸함의 시간입니다. 화려했던 여름의 영광을 뒤로한 채 가을은 고독의 침묵으로 접어듭니다. 하지만 그 침묵은 오래가지 않지요. 그렇기에 가을은 유난히도 짧게 느껴지는가 봅니다. 육체가 느끼는 공기의 서늘함은 이미 가을의 존재를 망각하게 만들지만 저는 지독히도 외로운 가을을 사랑합니다. 그 이유는 회색 빛 시간 속의 고독으로 각인되는 가을의 모습이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가을에 너무나 어울리는 한 작곡가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나 자신보다도 그리고 이 지상에 있는 그 어떤 것보다도 당신을 더 사랑합니다" 끝내 이룰 수 없었던 클라라에 대한 브람스의 사랑고백. 하지만 그의 예술의 원천은 그녀에 대한 사랑이었습니다. 슈만과 클라라, 그리고 브람스, 그들의 삶은 그들의 음악만큼이나 격정적이고 아름다웠으며 또 외로웠던 이야기입니다.


어릴 적부터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던 슈만은 모친의 바람대로 라이프치히에서 법률 공부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음악가의 길을 결심하고 유명한 피아노 교수였던 프리드리히 비크의 집에 머물며 피아노 레슨을 받기 시작하죠. 하지만 그는 스승의 딸인 클라라와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고 과도한 피아노 연습은 그의 손을 망가뜨립니다. 결국 슈만은 피아니스트의 꿈을 접고 작곡자의 길로 들어서고 클라라와의 사랑은 스승인 비크의 심한 반대에 부딪치게 됩니다. 스승과 제자의 대립은 극한으로 치달아 법정 소송으로 이어지고 마침내 슈만은 재판에서 승소하여 클라라와 결혼하게 됩니다. 음악사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커플로 여겨지는 슈만과 클라라, 하지만 슈만에게 찾아온 정신질환과 자살시도로 클라라는 큰 슬픔에 빠지지만 항상 그녀의 곁에는 슬픔을 달래준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클라라, 브람스, 슈만


1853년 가을의 어느 날 슈만과 클라라 부부에게 아름다운 금발머리의 청년이 나타납니다. 큼지막한 배낭과 진흙이 묻은 장화를 신은 20살의 이 청년은 자신을 브람스라고 소개합니다. 당시 유명한 음악가였던 요하임의 추천으로 슈만을 찾은 무명의 젊은 음악가 브람스는 자신의 작품을 이들에게 선보이고 그의 피아노 연주와 작품을 들어본 슈만 부부는 브람스의 음악성에 깊은 감명을 받게 되죠. 그리고 브람스의 천재성을 단번에 알아본 슈만은 자신이 편집장으로 있는 “음악 신보”에 <새로운 길>이라는 글을 써서 브람스를 세상에 알리는데 큰 도움을 줍니다. 그 후 브람스가 슈만의 집에 머무르는 동안 쓰인 슈만 부부의 일기에는 하루도 그의 작품에 관한 찬사가 없는 날이 없었고 브람스 역시 이들 부부에 대한 존경과 친밀감은 더욱 깊어져 갑니다.


하지만 슈만이 정신질환으로 라인강에 투신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브람스는 깊은 상처를 받은 클라라를 절망에서 구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합니다. 그러는 동안 브람스는 클라라를 처음 본 순간 느꼈던 자신의 감정이 사랑이었음을 깨닫게 되고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14살 연상의 클라라에 대한 브람스의 사랑은 걷잡을 수 없이 타오르고 있었고 그의 영혼은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 클라라와 스승이자 은인의 부인 클라라 사이에서 갈등하게 됩니다. 그런 브람스에게 클라라는 자신이 슈만의 아내임을 상기시키며 모성적인 우정 관계만을 유지하려고 했으나 그녀 역시 브람스의 사랑이 없었다면 자신에게 벌어진 끔찍한 슬픔을 견딜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마침내 슈만이 세상을 뜨자 브람스의 고뇌는 해방되었고 클라라는 남겨진 7명의 아이들의 양육과 남편 슈만의 작품을 세상에 알리는 일에 몰두합니다. 그리고 이런 일들을 통해 살아가는 의미, 남겨진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미망인, 클라라 슈만으로 변모해갑니다. 브람스의 클라라에 대한 사랑은 슈만이 죽은 후 더욱 깊이 있는 내면적 사랑으로 변해갔고 오히려 그의 정열은 차분히 가라앉아 예술적 영감으로 승화되어 갑니다. 그녀를 처음 본 20살 때부터 그가 세상을 뜬 64세까지 항상 브람스의 마음속에는 클라라가 있었고 그 모든 열정은 그의 창작물로 표현되었습니다.


클라라의 장례식에서 슬픔의 노래를 부르는 브람스, 1896


클라라가 1895년 뇌졸중으로 쓰러졌다는 소식을 접하자 그는 운명적인 죽음의 예감을 느꼈고 1896년 77세의 나이로 클라라가 사망합니다. 그리고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온 브람스도 그 이듬해 64세를 일기로 클라라의 뒤를 따라가게 되지요. 브람스의 클라라에 대한 사랑은 어느 한순간도 본능을 앞세우지 않은 이성적이고 순결한 것이었으며 그의 작품을 통해 탄생한 고귀한 것이었습니다. "나의 삶의 가장 아름다운 체험이요 가장 위대한 자산이며 가장 고귀한 의미를 상실했다."라고 클라라의 죽음에 한탄한 브람스. 사랑의 의미가 너무 가벼워진 지금, 프랑스의 작가 프랑스와즈 사강의 물음이 생각납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브람스 교향곡 제3번 3악장

https://youtu.be/2tB2SLLnPZ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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