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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훈 Jan 19. 2022

음으로 그린 시(詩)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 - 끌로드 드뷔시

“현대 음악은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으로 깨어났다.” 


2016년 타계한 프랑스의 거장 작곡가이자 지휘자 피에르 불레즈의 말입니다. 불레즈의 말처럼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 Prélude à l'après-midi d'un faune>은 현대음악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작곡가 끌로드 드뷔시 (Achille-Claude Debussy, 1862-1918)는 프랑스 파리 근교의 생 제르망 엉 레(Saint-Germain-en-Laye)에서 태어났습니다. 드뷔시는 학창 시절부터 유별났는데 파리 음악원에서 그를 가르쳤던 기로 교수는 “기괴한 성격을 가진, 똑똑한 학생이지만 작곡은 굉장히 못했다”라고 학적부에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드뷔시는 1884년 칸타타 <방탕한 아들>로 로마대상을 수상하며 주목받는 작곡가로서 활동하기 시작합니다. 흔히들 드뷔시를 '인상주의' 작곡가로 이야기하는데 인상주의 사조는 19세기 후반 미술에서 먼저 시작되었습니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자연의 사물이나 현상을 연속적으로 엮어내는 기법을 사용하며 흑백의 명암보다는 빛이 만들어내는 색채감에 그 비중을 많이 두었지요. 마네, 르누아르, 세잔, 고갱, 고흐 같은 화가들이 주도한 인상주의 예술운동은 그 후 문학과 음악, 연극 등 예술 전반에 걸쳐 막대한 영향을 끼쳤고 드뷔시는 인상주의 미술의 색채 개념을 성공적으로 ‘소리’에 적용시킨 작곡가입니다.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 은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의 상징주의를 계승한 스테판 말라르메의 시 “목신의 오후” 일부를 테마로 삼고 있습니다. 


“나른한 여름날 오후 시칠리아 해변 숲 속 그늘에서 졸고 있던 목신 판은 아련한 꿈속 같은 상태에서 나뭇가지 사이로 목욕하는 요정을 발견한다. 꿈인지 현실인지 잘 구분할 수 없지만, 저편의 가물거리는 자태에 마음이 끌려 샘물 가에서 보았던 한 쌍의 요정을 떠올린다. 목신은 어떤 힘에라도 이끌리듯 달려가 두 요정을 그대로 품에 안아 장미 넝쿨로 뛰어들어 헝클어진 그녀들의 머리카락에 입을 맞출 때, 몽롱한 관능적 희열이 온몸에 퍼진다. 그러나 환상의 요정은 어디론가 사라진다. 밀려오는 권태를 망연히 바라보며 목신은 에로틱한 몽상을 해보기도 하고 한낮의 작렬하는 태양을 향해 입을 벌려 넋을 잃기도 하고 갈증을 느끼며 모래 위로 쓰러진다. 그리고 목신은 또다시 오후의 고요함과 그윽한 풀 냄새 속에서 잠들어버린다.”


드뷔시는 이 작품에 대하여 시와 음악의 결합이 아닌 말라르메의 시에 대한 자유로운 묘사라고 말합니다. 그만큼 이전에 지켜왔던 모든 규칙들을 벗어나고 있으며 자신만의 색채감과 환상적인 소리로 한 편의 그림 같은 음악을 그려 내었습니다. 이후 전주곡에 이은 간주곡과 피날레도 작곡할 계획이었지만 이루어지지 않았고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은 1894년 12월 22일 국민음악협회에 의해 파리 살 다르쿠르에서 초연되었습니다. 또한 당시 최고의 명성을 얻고 있던 발레단 '디아길레프 발레 뤼스'의 무용가 바츨라프 니진스키가 이 곡에 맞추어 안무한 발레 작품의 초연은 1912년 5월 29일 샤틀레 극장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드뷔시 -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 과천시립교향악단 / 지휘  김예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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