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예훈 Jan 19. 2022

어쩌면 이것이 죽음인가?

네 개의 마지막 노래 -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여러분에게 작곡가 ‘슈트라우스’의 이름은 낯설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왈츠의 왕’이라 불리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 (Johann Strauss II, 1825-1899)는 대중적으로도 매우 유명하지요. 그가 작곡한 왈츠들은 매년 비엔나 신년 음악회를 통해 우리에게 매우 친숙합니다. 하지만 클래식 작곡가 중 또 한 명의 위대한 슈트라우스가 있습니다. 그는 바로 독일 후기 낭만파의 대 작곡가이자 지휘자였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Richard Strauss, 1864-1949)입니다. 그의 이름은 모르더라도 1968년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삽입된 그의 교향시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인상적인 도입 부분은 많은 분들이 기억하실 겁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탁월한 관현악법으로 교향시와 오페라 분야에 눈부신 명작들을 탄생시켰습니다. 대표작으로는 교향시 <영웅의 생애>, <틸 오일렌슈피겔의 유쾌한 장난>, <죽음과 정화> 오페라 <장미의 기사>, <엘렉트라>, <살로메>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목해야 할 그의 작품 영역 중에 가곡이 있습니다. 


가곡이란 시와 음악이 결합된 음악형식으로 우리가 말하는 모든 종류의 ‘노래’를 지칭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가사가 있는 음악은 악기로만 연주되는 음악보다 인간의 감정을 더욱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지요. 그래서 성악곡을 감상하실 때는 가사를 먼저 읽어보고 음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곡은 다시 창작자를 알 수 없는 민중 가곡(민요)과 창작자가 알려져 있고 예술적 완성도가 높은 예술가곡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술가곡에서 슈베르트, 슈만, 볼프, 말러,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계보로 내려오는 독일 가곡은 독일 낭만주의 시인들의 작품을 토대로 하여 그 완성도가 매우 높은 작품들입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가곡에 특별한 애착을 가지고 200여 곡의 가곡을 작곡했는데 그 주된 원인은 소프라노 가수였던 그의 부인 ‘파울리네 드 아나’를 염두에 둔 덕분입니다. 특히 그가 죽기 1년 전인 1948년에 완성한 작품인 <네 개의 마지막 노래>는 80여 년 음악인생을 살아온 노(老) 대가의 완숙한 음악적 기법과 깊이 있는 내면의 표현으로 듣는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는 걸작입니다. 제가 <네 개의 마지막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의 느낌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듣는 순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는 음악들의 고귀한 아름다움이었고 다른 하나는 84세의 나이에 작곡했다고 믿기지 않을 정도의 생명력 있는 음악적 표현력이었습니다. 그가 생의 마지막 순간에 작곡한 마지막 노래들이지만 절망적이거나 어둡지 않으며 차분하고 기품이 있습니다. 그리고 따뜻하고 희망적이지만 가볍지 않으며 진중합니다. 


총 4개의 가곡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제1곡 ‘봄, 제2곡 ‘9월’, 제3곡 ‘잠자리에 들 때’는 헤르만 헤세의 시에, 제4곡 ‘저녁노을에’는 아이헨도르프의 시에 음악을 붙인 것입니다. 제1곡 ‘봄’에서는 자연의 섭리와 생명에 대해 노래하고 제2곡 ‘9월’에서는 호른 연주자였던 자신의 아버지를 추억하듯 호른의 아련한 선율이 등장합니다. 제3곡 ‘잠자리에 들 때’의 애틋하고 아름다운 바이올린 솔로는 자신의 굴곡진 인생에 대한 독백이며 제4곡 ‘저녁노을에’는 평생의 반려자와 지나온 삶을 회상하고 “어쩌면 이것이 죽음인가?”라는 구절로 다가올 죽음을 준비합니다. 대 작곡가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 음악을 통해 지나온 삶을 돌아보고 다가올 죽음을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관조(觀照)의 모습을 보입니다. 


<네 개의 마지막 노래>는 슈트라우스의 자연의 섭리와 과거의 향수, 죽음에 대한 예감과 상념의 술회가 담겨 있으며, 평생의 동반자였던 아내 파울리네에게 보내는 마지막 선물이기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지울 수 없는 상처였던 - 유태인 며느리와 손주들을 위한 결정이었던 - 나치와의 동조 관계에 대한 과오를 자조하는 고백으로도 다가옵니다. 우리들의 숨 가쁜 일상 속에 잠시나마 슈트라우스의 <네 개의 마지막 노래>를 들으며 지금껏 달려온 우리들의 삶을 차분히 되돌아보며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이전 07화 절망을 읊는 한 젊은이의 처절한 독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