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주 비제 (Georges Bizet, 1838-1875)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상연되는 오페라 작품을 꼽으라면 무엇이 있을까요? 아마도 비제의 “카르멘”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 저녁에도 어느 도시의 오페라 극장에서는 이 작품이 상연되고 있음이 전혀 낯설지 않을 만큼 가장 인기가 높은 오페라 중 하나이지요. 프랑스의 작곡가 조르주 비제는 “카르멘” 하나로 오페라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작곡가입니다.
비제는 1838년 10월 25일 프랑스 파리에서 성악교사의 외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어릴 적부터 비상한 재능을 보였는데 4세 때 피아노를 시작하여 9세에 최고의 명문 파리 음악원에 입학을 하였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비제의 재능은 비단 음악뿐만 아니라 문학에도 탁월하여 그의 아버지가 음악을 택하도록 하느라 애를 먹었다는 것입니다. 파리 음악원 재학 당시 특출했던 비제는 14세 때인 1852년 피아노로 1등 상, 1855년 오르간과 푸가로 1등 상을 받으며 졸업합니다. 특히 그는 초견(연습 없이 처음 보는 악보를 연주하는 것)에 매우 뛰어난 재능을 가졌는데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 프란츠 리스트와의 에피소드는 비제가 얼마나 대단한 재능을 가졌는지를 보여줍니다.
1861년 5월 26일 파리에 머무르고 있었던 프란츠 리스트는 한 살롱에서 비공개 연주회를 개최합니다. 그날 리스트는 매우 어려운 자신의 피아노 신작을 연주한 후 청중들에게 이 곡을 정확한 템포로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과 한스 폰 뵐로뿐이라고 단언합니다. 때마침 그곳에는 22세의 비제와 그의 스승인 알레비도 초청받아 자리에 있었는데 알레비는 넌지시 비제에게 저 곡의 어려운 패시지를 외울 수 있겠냐고 묻지요. 그러자 비제는 아무 말 없이 피아노로 다가가 슬쩍 그 대목을 쳐 보였고 그것을 듣고 놀란 리스트는 비제에게 악보를 주고 연주를 요청합니다. 그러자 비제는 정확한 템포로 리스트의 난해한 곡을 멋지게 연주해 내었고 리스트는 이 젊은 음악가의 재능에 찬사를 보냅니다. 하지만 비제는 직업 피아니스트보다 오페라 작곡가가 되기로 마음먹고 스승인 알레비의 딸인 주느비에브 결혼한 후 본격적인 오페라 작곡에 전념합니다.
오페라의 혁명 “카르멘”
37세의 아까운 나이에 요절한 비제의 작품 중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오페라 ‘카르멘(Carmen)’과 관현악 모음곡 ‘아를르의 연인 (L’Arlesienne)’, 그리고 오페라 ‘진주잡이 (Les Pecheurs de Perles)’ 정도입니다. (1900년대 초 뒤늦게 발견된 그의 '교향곡 C장조'는 교향곡 작곡가로서도 비제의 재능이 충분했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매우 훌륭한 작품입니다) 그리 많지 않은 작품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음악사에서 그의 위치가 확고한 것은 오페라 '카르멘'의 눈부신 성공 덕분입니다. 그는 이 한 곡만으로 독일의 바그너, 이탈리아의 베르디와 견줄만한 오페라 작곡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카르멘'의 초연은 비제의 건강을 악화시킬 정도로 대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당시 오페라의 주 관객들은 중산층이었고 극의 내용은 대부분 귀족적인 성향이었습니다. 하지만 오페라 '카르멘'은 담배 공장 여직공들이 나와 무대에서 담배를 피우고, 밀수꾼과 집시들이 등장하여 우글거리며, 여주인공은 지고지순한 여성이 아닌 도발적인 팜므파탈, 그것도 소프라노가 아닌 메조소프라노가 맡고 있으며, 사랑 때문에 반미치광이가 된 사나이가 여주인공을 죽이는 살인까지 충격적인 내용들로 가득 차 있어 무대에 올리기까지 극장 측과의 마찰이 매우 심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1875년 3월 3일 파리 오페라 코미크에서 초연이 되었는데 충격적인 내용에 파리의 '고상한' 관객들은 경악했고 극작가 앙리 뒤팽은 '완전한 실패작이며 재앙이다'라고 신랄한 혹평을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소심한 성격이었던 비제는 초연의 실패로 인해 극도의 좌절감과 우울증에 빠지고 건강은 심각하게 악화됩니다. (이 시기에 비제는 좌절감에 자신의 교향곡 2번과 3번을 불태웠다고 전해지고 이 작품들은 영원히 사라집니다) 하지만 카르멘은 상연이 거듭될수록 대중들 속으로 파고들어 얼마 지나지 않아 연일 대만원으로 장기 상연이 됩니다.
같은 해 6월 3일, 33번째 공연의 막이 내리기 한 시간 전, 비제는 급작스러운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33번째 공연의 카르멘 역을 맡았던 가리 말리에는 제3막의 카드 점치는 장면에서 ‘흉(凶)’이 나오는 것을 보고 비제의 죽음을 직감했다고 전해집니다. 혹자는 36년 7개월 9일의 짧은 생을 산 비제를 두고 “카르멘을 쓰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좀 더 오래 살았다면 더 많은 명작들을 탄생시켰을 천재적인 재능이 아까운 작곡가임에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