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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훈 Nov 30. 2022

새로운 거인

브람스 교향곡 제1번

“위대한 거인이 내 뒤에서 뚜벅뚜벅 쫓아오는 발자국 소리를 듣는다고 생각해보게"


베토벤이 이룩해 놓은 9개의 교향곡들은 이후의 작곡가들에게는 위대한 규범이자 넘어야 할 산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리하여 많은 작곡가들이 교향곡 작곡에 있어서는 베토벤이라는 거인의 그림자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는데 바흐, 베토벤과 더불어 독일 음악의 3대 거장이라고 일컬어지는 브람스 (Johannes Brahms, 1833-1897)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음울하고 습한 북독일의 항구도시 함부르크에서 태어난 브람스는 매우 내성적이고 신중한, 어찌 보면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이런 기질이 그의 음악적인 특징으로 많이 나타나는데 ‘가을’하면 ‘브람스의 음악’을 떠올리는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도서관에서 브람스 (1894)


함부르크 출신의 시골 작곡가였던 브람스를 세상에 알린 것은 작곡가 슈만이었습니다. 유명한 평론가로도 활동하고 있던 슈만은 그가 발행하는 잡지 <음악 신보>에 ‘새로운 길’ (Neue Bahnen)이라는 제목의 글로 브람스를 세상에 알렸습니다. 당시 독일 음악계는 활력을 잃어가고 있었으며 이런 상황을 구원해줄, 다시 말해 베토벤의 위대한 교향곡을 계승할 새로운 인물과 음악을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발표된 브람스의 교향곡 제1번은 당대의 명 지휘자 한스 폰 뵐로에 의해 베토벤의 뒤를 잇는 ‘10번 교향곡’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대 성공을 거둡니다. 하지만 이런 찬사와 성공을 얻기까지는 작곡자의 많은 숙고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브람스 교향곡 제1번 자필보


브람스는 자신의 첫 교향곡을 22세 때 착수하였는데 곡을 완성하여 발표한 시기는 43세 때인 1879년이었으니 곡의 완성에 무려 20여 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초기에 브람스는 슈만의 <만프레드 서곡>을 듣고 교향악 작곡에 대한 열정을 갖기 시작하며 아이디어를 구상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그의 <피아노 협주곡 제2번>으로 구체화되었고 교향곡 작곡의 진도는 좀처럼 나아가지 못했는데 이런 상황을 보다 못한 친구였던 지휘자 헤르만 레비가 불만을 토로하자 브람스는 그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위대한 거인이 내 뒤에서 뚜벅뚜벅 쫓아오는 발자국 소리를 듣는다고 생각해보게, 자네는 그 기분이 어떨지 상상조차 못 할 것이네.”


산책 중인 브람스 (1880)


그만큼 교향곡 작곡에 있어서는 브람스도 베토벤을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브람스 교향곡 제1번은 베토벤의 영향이 강하게 나타납니다. 우선 베토벤이 자신의 교향곡에 자주 구현하였던 ‘어둠에서 광명으로’의 정신이 브람스 교향곡 1번에서도 뚜렷합니다. 다단조(c minor)의 어둡고 무거운 1악장으로 시작하여 다장조(C Major)의 찬란한 환희에 도착하는 4악장의 모습은 베토벤의 교향곡 5번 ‘운명’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또한 4악장 환희의 주제는 베토벤 교향곡 ‘합창’의 선율을 연상시킵니다. 결국 베토벤의 ‘10번 교향곡’이라는 찬사는 아이러니하게 브람스의 자신의 독창성보다는 베토벤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향곡 제1번은 브람스만의 묵직한 음악적 텍스쳐와 서정성, 우수에 찬 목가적인 분위기 그리고 4악장의 우아하면서도 고귀한 선율과 피날레의 벅찬 클라이맥스는 듣는 이들을 압도하며 브람스가 이 곡을 완성하기 위해 고뇌했던 20여 년의 시간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각인시켜 줍니다.


[비교감상] 정명훈 지휘자가 지휘하는 서울시향과 KBS교향악단의 연주를 비교해서 감상해 보세요. 같은 지휘자가 같은 곡을 다른 악단과 연주했을 때의 차이를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브람스 교향곡 제1번

서울시립교향악단 / 정명훈 지휘


브람스 교향곡 제1번

KBS교향악단 / 정명훈 지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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