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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훈 Nov 28. 2022

세상을 변화시키는 음악

헨델 오라토리오 '메시아'

메시아 연주는 굶주린 자의 배를 채우고, 헐벗은 자를 입히며, 고아들을 부양했으며....
<버니 "헨델의 생애에 관한 스케치' 중에서>


헨델의 대작 오라토리오 ‘메시아’는 동서고금을 통해 최고의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종교음악의 불멸의 명작으로 일컬어집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연주에도 2시간이 넘는 이 대작을 헨델은 고작 24일 만에 완성했다는 것입니다. 헨델은 메시아를 작곡하는 3주 동안 식사도 제대로 하지 않으며 집에 꼬박 틀어박혀 곡을 써내려 갔다고 전해지는데 제1부를 6일, 제2부는 9일, 제3부는 3일 만에 완성했고, 관현악 편곡 작업도 2일 만에 끝마쳤습니다. 헨델이 메시아를 작곡하며 두문불출하는 동안 그를 방문했던 친구는 감격에 벅차 눈물을 흘리며 작곡을 하는 그를 보았다고 증언하고 있으며 훗날 헨델은 이때의 경험을 바울의 말을 인용하며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내가 메시아를 쓸 때에는 나 자신이 육신 안에 있었는지, 육신 밖에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 주님께서 나를 찾아오셨던 것만 같다.”


헨델 '메시아'의 자필 악보


죠지 프리드리히 헨델 (Georg Friedrich Händel, 1685-1759)은 독일, 할레 출신이지만 생애 대부분을 영국에서 활동하였기에 영국을 대표하는 작곡가로 소개됩니다. 헨델의 부친은 그를 법률가로 만들 생각으로 법대로 보냈지만 음악의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던 아들의 음악에 대한 의지를 꺾지는 못하였습니다. 결국 헨델은 음악가의 길을 가지만 그의 생은 굴곡이 많았습니다. 메시아를 작곡할 당시 그는 오페라 작곡가로서 큰 성공은 거두었지만 오페라단들과의 경쟁과 운영 문제로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 문제는 더욱 가중되어 헨델은 파산에 이르게 되고 건강에도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그의 나의 56세, 실의에 빠져서 모든 활동에서 은퇴를 결심한 그때에 두 개의 예기치 않은 사건이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습니다. 하나는 그의 친구 찰스 젠넨스 (Charles Jennens)가 성경에 기초로 하여 만들어진 예수의 생애에 대한 오라토리오 대본을 맡긴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아일랜드 더블린의 한 자선단체에서 자선음악회를 위한 곡을 의뢰받은 것입니다. 이 두 사건으로 인해 탄생한 것이 바로 ‘메시아’입니다. 


독일 할레에 있는 헨델의 생가


메시아의 초연은 1742년 4월 13일 더블린에서 이루어졌는데 이날 공연은 대성공이었습니다. 청중과 언론들은 앞다투어 찬사를 쏟아내었고 1년 후에 이루어진 런던 공연에서는 국왕 조지 2세가 참석하여 큰 감명을 받습니다. 특히 가장 유명한 합창곡인 ‘할렐루야’를 들은 국왕은 그 감격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는데 이후로 할렐루야 코러스에서는 청중이 기립하는 전통이 생겨납니다. 또 메시아는 후세의 작곡가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쳤는데 하이든은 이 곡을 듣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그는 우리 모두의 위대한 스승이시다”라고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메시아는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부는 ‘예언과 탄생’, 제2부는 ‘수난과 속죄’, 제3부는 ‘예언과 탄생’의 내용을 담고 있으며 성경의 복음서와 시편, 이사야서와 요한계시록의 내용을 바탕으로 쓰였습니다. 하지만 바흐나 쉬츠 등의 예수를 주제로 한 작품들과 다른 점은 예수의 생애를 구체적으로 묘사한 것이 아닌 중요한 사건들에 관련된 성경구절의 묵상을 통하여 신앙과 그리스도의 근원에 다가가려는 시도를 한 점입니다. 악보 초판에 헨델은 “주님의 뜻이야말로 위대하다. 지식과 지혜의 보배는 모두 주님께 있다.”라고 적으며 이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메시아의 성공으로 헨델은 부와 명예를 얻게 되었고 그가 죽기까지 30회 이상을 직접 지휘하여 메시아를 연주하였는데 연주회의 대부분은 병원 설립을 위한 자선음악회였습니다. 그 결과 '굶주린 자의 배를 채우고, 헐벗은 자를 입히며, 고아들을 부양하는' 선한 사회적 현상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헨델의 신앙심은 매우 신실하였고 그의 친구인 존 호킨스 경 (John Hawkins)은 “그는 삶 가운데서 깊은 종교심을 들어내었다. 대화 가운데서 그는 종종 그가 성경을 음악으로 만들 때의 기쁨을 이야기하였으며 시편에 나오는 훌륭한 구절들을 명상하는 것이 얼마나 그를 교화시키는데 도움이 되었는지를 이야기하곤 하였다.”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헨델은 어려움에 처한 이웃에 많은 관심을 가졌고 자신이 어려울 때도 자선단체들에게 기부금을 보내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어떤 종파에 대한 적개심이나 교파에 대한 반대 의견을 갖지 않았는데 한때 논쟁을 좋아하는 주교 앞에서 자신을 변호하면서 이런 말을 남기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성경을 열심히 읽고 있으며 나 스스로 그것들을 선택할 것입니다."


헨델의 데스마스크


헨델은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에 부활의 날에 자비로우신 주님을 뵙고 싶어서 성 금요일에 죽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였는데 그는 성 토요일인 1759년 4월 14일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자신의 지휘로 연주한 메시아의 마지막 연주가 있은 지 8일 후였습니다. 그의 절친한 친구 제임스 스미스 (James Smyth)는 헨델을 다음과 같이 회고합니다. "그는 선한 크리스천으로서,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자신의 의무를 바르게 깨닫고 온 세계에 완전한 자선을 베풀면서 삶을 살았다." 헨델의 장례식에는 3000여 명이 넘는 조문객들이 참여하였고 그의 시신은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장되었습니다. 그의 묘에는 메시아 3부의 첫 곡 "주가 살아 계심을 나는 안다"의 악보를 들고 있는 헨델의 흉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메시아의 오케스트라 편성은 현악 5부와 오보에, 트럼펫, 팀파니, 오르간의 편성으로 되어있는데 헨델이 사망한 후 모차르트, 멘델스존, 프란트, 프라우트 등의 작곡가들이 오케스트라의 편성을 확대시키는 편곡 작업을 시도하여 다양한 버전으로 연주되고 있습니다.


헨델의 묘가 있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헨델 흉상

헨델 오라토리오 '메시아'

서울 모테트 합창단 & 오케스트라 / 박치용 지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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