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stimony (1987)
“이 영화는 역사에 있어서 피로 물든 시대에 대한 고통과 항변의 비명이다. 당신이 이러한 위험에 처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산이다.”
얼마 전 열린 제16회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18세의 한국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우승을 하여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더욱이 이 대회 60년 역사상 최연소 우승이라 더욱 큰 주목을 받고 있지요. 하지만 대회 전부터 관심을 받은 러시아 참가자 안나 게니쉬네와 우크라이나 참가자 드미트로 쵸니의 2,3위 수상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중인 지금, 음악과 정치에 대해 많은 것을 고민하게 만들었습니다.
20세기 구 소련의 작곡가 쇼스타코비치 (Dmitri Shostakovich, 1906~1975)의 삶은 전쟁과 음악, 정치와 예술의 상관관계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지금 시대와 쇼스타코비치의 시대상황은 같을 수 없겠지만 지금 겪고 있는 충격적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우리가 다시 옛시대로 돌아갈 수 있다는 위기감마저 들게 합니다.
쇼스타코비치의 삶과 음악을 이해하기 위해서 꼭 한 번쯤은 읽어보아야 할 책이 솔로몬 볼코프가 집필한 '증언'입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한가운데 있었던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적 정체성을 새롭게 폭로한 책이지요. 이 책은 한 때 국내 번역판이 절판되어 도서관에서만 접할 수 있었는데 다행히 최근에 다시 재 발간되어 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은 1987년 토니 팔머 감독에 의해 영화 '증언 (Testimony)'으로 만들어집니다. 책의 모든 부분을 담았다고 보기에는 힘들지만 이 영화만으로도 쇼스타코비치의 삶과 시대상황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줍니다. 무엇보다 영화 '간디'로 아카데미 주연상에 빛나는 영국의 명배우 벤 킹슬리의 열연과 루돌프 바르샤이 지휘의 런던 필하모닉의 연주는 이 영화를 더욱 완성도 있게 만들고 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쇼스타코비치가 9번 교향곡을 발표한 후 당 기관지 '프라우다'의 악명 높은 즈다노프로부터 자아비판을 받는 장면인데 팔머 감독의 사실적인 연출은 충격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이 사건을 짧게 요약하면 스탈린은 쇼스타코비치의 9번 교향곡 발표에 앞서 그에게 베토벤 교향곡 9번과 같은 상징적인 대작을 기대했지만 정작 쇼스타코비치가 발표한 것은 챔버 심포니와 같은 소규모의 고전적인 교향곡이었습니다. 이에 스탈린이 격분한 것이지요. 예술 표현의 자유가 정치와 이념에 구속되었던 시기의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21세기를 지나는 지금 시대는 어떤가요? 토니 팔머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들며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 영화는 역사에 있어서 피로 물든 시대에 대한 고통과 항변의 비명이다. 당신이 이러한 위험에 처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산이다.” 물론 지금은 스탈린 시대와 같은 극단적인 상황은 아니지만 예술이 이념과 정치적인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졌다고 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스탈린 시대와 같은 집단주의가 아닌 개인주의적 이념이 난립하면서 더 복잡해진 느낌이고 인간관계에서 생기는 정치적 문제와 갈등은 우리를 더욱 힘들게 합니다.
그러면 좋은 음악이란 무엇일까요? 쇼스타코비치가 살았던 구 소련에서는 스탈린의 소비에트 사회주의 이념과 사상에 부합하는 음악이 좋은 음악이었다면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에서의 좋은 음악은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오랜 시간 노력과 정성으로 만들어 낸 도자기의 예술적 가치는 훌륭한 것입니다. 반면 우리가 매일 접하는 투박한 밥그릇의 완성도는 도자기에 비할 바가 못되지요. 하지만 유리 진열장 속의 도자기와 달리 우리의 삶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눈으로 보는 것 만이 아닌 만지고, 느끼고, 때로는 깨뜨리기도 합니다. 선택의 문제인 이 비유를 음악에 대입하는 것은 어찌 보면 어리석은 일이지만 아직까지도 클래식 음악을 유리 진열장 속의 도자기처럼 여기고 공연장에서 오케스트라 음악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은 분명 클래식 음악가들에게는 고민해 보아야 할 현실입니다.
‘음악이 세상을 바꾸지는 못하지만 위로해 줄 수 있다’
라는 말을 참 좋아합니다. 내가 하는 음악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어 줄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좋은 음악이 아닐까요? 그리고 바로 그 위로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증언 (Testimony)' (무자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