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시사기획 창 312회
정치적 양극화의 시대, <시사기획 창>은 신년기획으로 이에 대답했다. 왜 설득보다 선동이 힘을 얻는지 규명하는 것이 필요했던 참이다. 그러나 몇 년 전의 신년기획이었다 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현재성을 갖추지 못한 모습이다.
우선 논의가 시의적이지 않다. 인간이 결정을 이성적으로 내리지 않는다는 인지적 접근, 소속감이나 결속력에 쉽게 좌우된다는 사회심리적 접근, 필터 버블과 알고리즘이라는 기술적 접근은 수년 전부터 소개되어 시청자에게 익숙하다. 이론을 원론적으로 소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각 요소가 2020년에 얼마나 악화했는지 직접 보여줄 수 있었어야 한다.
게다가 ‘교육’의 필요성으로 결론을 맺는 것이야말로 게으른 구성이다. 앞서 제시한 세 가지 문제는 교육으로도 해결하기 쉽지 않다. 만약 가능하다고 본다면 인간의 인지적, 심리적 한계나 필터 버블을 적절한 교육으로 대처한 사례를 찾아 논의를 뒷받침했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정규 교육과정을 이미 수료한 20세 이상의 성인 대부분에게는 적용 불가능한 반쪽짜리 해법이다. 성인 개인이 일상 속에서 정치적 치우침을 개선할 수 있는 습관을 제시했다면 논의가 훨씬 현실적으로 진행되고, 신년기획의 의미도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해외의 자유로운 토론 문화와 비교하기 부적절했다. 토론 교육으로 칭송받았던 서구 유럽 등지에서도 독일 대안당(AfD) 등 극우 정당 돌풍을 비롯해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다. 이처럼 충분한 분석 없이 ‘만능 해법’으로 교육을 제시하는 것은, 당장의 해결법을 찾지 못하고 장기적인 관점으로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것과 같다.
정치 주체의 ‘페르소나’로 중장년 남성만을 상정한 것도 뚜렷한 한계다. 심층 인터뷰에서 인터넷 기사 댓글난과 유튜브 영상으로 대표되는 온라인 정치과정을 포착해 정치 팬덤과 필터 버블의 구체적인 사례를 확인한 것은 의미 있었다. 다만 두 인터뷰이 모두 50대 전후의 자영업자 남성으로, 전체 정치 주체에 대해 대표성을 갖지 않는다. 인터뷰이의 수와 다양성을 늘려 2021년 현재의 정치과정을 더 사실적으로 포착하고, 그 안에서 치우침의 징후를 찾아보는 건 어땠을까. 특히 청년 세대는 온라인 커뮤니티가 정치화가 진행된 지 오래고 SNS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결집하는 모습도 상징적이지만, 언론에서는 주의가 기울어지지 않아 왔다. 지난 총선 예측에 실패하고 뒤늦게 20대 남성과 여성의 민심에 관심을 가졌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시사기획 창과 같은 심층보도 프로그램이야말로 신속한 취재들이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고 겉핥기 하는 영역을 긴 호흡을 관찰하고 의제화하는 역할에 힘써야 한다. 그래서 다양성 확보의 원칙은 심층보도 프로그램에서 더욱 요구된다.
공공재인 방송을 한 시간 통째로 할애해 보도한다면 그럴만한 새로운 의미가 있어야 한다. 시사기획 창의 내년 신년 기획은 원론적인 논의에서 그치지 않고, 기존 보도에서 놓쳤던 부분을 조명하며, 공영방송 탐사보도의 가치를 회복하기를 기대해본다.
조수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