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을 조금 늦게 나가니 벌써 더위가 시작되었다. 쨍하고 해가 뜬 것이다. 더위도 함께 따라왔다. 습도도 높고 밖에 있기에는 별로 적합하지 않다. 하지만 식물들은 시든 것 없이 싱싱하다. 숲 놀이 나온 아이들의 목소리도 신나고 유쾌하다. 아이들도 식물도 더위에 상관없이 신났다. 나만 더운가 보다. 시원한 그늘이 간절하지만 좀 더 인내를 가져봐야겠다.
갑자기 바로 앞 수풀에서 시커먼 것이 움직이는 것이었다. 분명 인근에는 사람이 별로 없고 더워서도 안 나올 텐데 하고 생각하는 순간 불길한 예감은 꼭 맞았다. 바로 강아지 봄이. 데려가지 않는다고 심하게 몸부림을 쳤나 보다. 서둘러 집에 와보니 줄이 끊어져 있었다. 사람들 눈에 띄기 전에 얼른 묶어야 한다. 뒤도 안 돌아보고 차를 몰고 가까운 철물점에서 커다랗고 긴 쇠줄을 샀다. 불쌍해 보여도 어쩔 수 없다. 웬일인지 묶어달라는 것처럼 몸을 내어준다. 기특하고 미안했다. 함께 사는 곳에서 나 좋다고 풀러 놓을 수 없기 때문에.
하지만 얼마나 답답할까? 한여름에 털 코트를 입고 아주 작은 그늘에 간신히 몸을 뉜다. 물을 다 먹어서 목이 말라도 참으며 조금 늦은 시간에 먹이를 주어도 불평이 없다. 그냥 주인이 오면 배부터 깐다. 귀여워해 달라고. 그런 녀석이 제일 좋아하는 산책을 안 해주면 미안하다. 술을 먹고 늦게 들어온 남편은 불쌍하다며 실컷 놀라고 풀어준다. 술이 깨는 새벽에 다시 묶는다. 밤새워 호수 주변과 논두렁을 뛰어다닌다. 하지 말라고 해도 기어이 풀어놓는다. 밤사이 인근에는 집 나온 강아지 세상이다.
퇴근 길 늦은 저녁 돌아오는 길에는 고양이 세상이다. 도로에 고양이들이 반상회라도 열렸는지 여러 마리가 무리 지어 있다. 어떤 녀석은 도로에 누워있고 어떤 녀석은 가만히 앉아있다. 나도 고양이가 되어 함께 도로에 눕는다. 아침나절의 따뜻한 온기가 남아있고 아무도 없는 공간이 한껏 자유롭다. 친구랑 달리기도 해 보고 멀리뛰기도 해보고 누워서 별을 보기도 한다. 사람이 오지 않는 새벽은 우리들 차지이다.
도로라는 건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규칙과 법규가 있는 곳이다. 하지만 도로에 차가 안 다니면 광장이 된다. 밥상을 펴면 밥상 공동체가 되고 촛불 든 사람들이 모이면 새로운 세상이 되며 상인들이 모이면 잡동사니 시장이 된다. 그림을 전시하면 미술관이 되고 악기를 연주하거나 노래판이 벌어지면 음악회가 된다.
반상회 하는 고양이 세상처럼 사람의 세상. 자유로움이 살아난다. 아무도 빨리 가라고 하지 않아도 되고 아무도 천천히 간다고 빵빵대지 않는다. 아이들이 뛰어가도 안전하며 신호를 지키지 않는다고 딱지를 떼지 않는다. 자동차에서 풀풀 풍겨대는 매연도 없다. 그 대신 사람 냄새가 난다. 음악이 있다면 아이들과 어른들. 남자. 여자 모두 어울려 신나게 춤을 출 수도 있다. 만약 분장과 가면을 쓰다면 멋진 가면 페스티벌이 될 것이다.
규칙과 법은 사람이 만든다. 질서가 생기고 질서를 지키지 않으면 벌칙이 따르고 돈을 내야 한다. 만약에 규칙이나 법이 없다면 세상은 혼란스러워질 것이다. 범죄가 난무하고 자동차들은 서로 가겠다고 시비가 많이 벌어질 것이며 사회 전체적으로 불안이 높아질 것이다. 하지만 꼭 규칙과 법이 강화되어야 세상에 질서가 잡힐까?
불안이 높은 사람들도 자신만의 규칙을 만들고 사람에게 더 많이 의존한다. 혼자 할 수 없는 일들이 많고 물어보고 의견을 구해야 한다. 또한 스스로 자립이 어렵다. 의존을 통해 안정감을 얻고 불안의 상황을 직면하지 않는다.
나도 꽤 오래전까지 주변 사람들에게 의존이 높았다. 내가 하는 결정은 실수나 실패가 많다는 잘못된 신념이 불안 너머에 자리 잡고 있었기에 일거수일투족을 물어보고 결정했다. 하지만 타인에게 의존해도 실패한다는 것을 깨닫고 그 책임은 내가 져야 한다는 생각에 이제는 실수해도 스스로 결정하기 시작하니 불안도 많이 줄었다.
자신의 결정한 일에 스스로 책임을 진다면 규칙과 법이 미약하더라도 평화로운 세상이 되지 않을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자립하고 자신의 문제는 스스로 해결하는 모습이 바로 성숙된 사람이다. 개인이 성숙하다면 세상이 성숙하고 많은 규칙과 법이 없어도 서로 잘 지낼 수 있을 것이다.
불안이 높아서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의존하기 때문에 더 불안할 수 있다. 규칙과 법이 있으므로 잘 지키는 것이 아니라 잘 지키는 사람들이 절대적으로 많다면 규칙과 법이 반드시 필요 한 건 아닌 것 같다.
또한 교육이라는 틀에서 성공이라는 인정 욕구를 충족하고자 했으나 이제는 그만두고 홀로 세상을 살아갈 준비가 되어야 한다. 세상 그 누가 인정해주는것이 아닌 내가 내 스스로를 인정하는 삶.
바로 내가 내 맘대로 살 권리를 자유라 부르고 싶다.
"자유 가운데서도 가장 소중하고 또 유일하게 자유라는 이름을 불릴 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의 자유를 박탈하거나 자유를 방해하지 않는 한,
각자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는 자유이다."
-존 스튜어트 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