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짝 비추인 반짝이는 물길과 숲 속 오솔길 따라 계속 걸었다. 언덕을 넘어 계속 걷다 보면
비탈길. 그 길 따라 거대한 저수지가 온전히 드러냈다.
시원한 바람이 훅 불어와 땀을 식혀주고 숲의 빛깔에 정신 못 차리고 넋을 놓을 때,
맑고 투명하게 산과 하늘을 그대로 담아낸 저수지. 탁하고 메말랐던 눈이 정화되었고 촉촉해졌다. 이 물처럼 마음도 맑아지길. 무계획대로 살아보길, 메이지 않고 흘러가게 읍소해본다.
비탈길처럼 간신히 살아갔던 일상은 저수지 물처럼 대담함을, 때론 포용력을 닮을 수 있어야 한다.
바람 따라 이야기가 실려왔다. 옛적 한 마을이 담겼으며 물아래로 수많은 삶들이 그대로 묻혀 버린 곳이라고, 그분들의 자손들이 어디선가 뿔뿔이 흩어져 또 살아낼 것이다. 자손들의 피에선 어쩌면 진한 물향이 날지도 모르겠다.
이 넓은 곳을 사람의 손으로 완성되었다고 한다. 하얀색 무명옷이 검게 흙물에 쪄들었으며, 굳은살 짙게 베어진 손에는 조잡한 도구만이 들려져 있었다. 허리춤에 채찍과 날검으로 무장된 일본 순사들 감시 아래 당했을 끔찍한 만행들도 산비탈 오래된 소나무에 새겨져 있을 것이다.
숨기려고 해도 숨길 수 없는 비밀 이야기는 숲은 알고 있다.
일제 강점기 때 식수를 위해 강제동원된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이 아로새겨졌으며 소달구지 끌고 오르내렸던 곳이 그대로 잠겨 내 발 밑에 살아있다.
숲에는 전시회도 열린다. 유명한 설치미술가도 울고 갈 아름다운 작품들이 곳곳에서 나에게 말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