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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오후 5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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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 Mar 29. 2021

진달래가 피었습니다

무의식으로의 초대

하루해가 길어졌다.

길게 늘어진 그림자를 데리고 숲으로 향했다.

숲은 비가 와 깨끗이 씻긴 듯 맑고 푸르렀다.

시야가 선명했고 모든 것이 싱그러웠다.

이렇게 선명한 날 숲에게 엎드려 절이라도 하고 싶다.

고맙다고,

불투명한 삶의 연속에서 선명해지고 깨끗해진 기분을 만끽하게 해 주어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헤매고 있는 의식의 어나에게

마냥 어린아이가 되어 의식의 숲에서 춤을 추라고 말한다.


얇아진 지갑 때문에도, 일이 생각보다 잘 안 되는 것 같아서,

당당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엄청 고 있다는 것이,

남들보다 못한 나를 오늘 확실히 알게 된 것 등등

자기반성, 위축, 죄책감, 열등감, 결핍 등등

모든 것이 다 필요 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숲은 모든 것이 평화로웠고 아름답다.

분명 나를 사랑해주는 것이 틀림없다.

그래도 괜찮은 사람이라고 얘기해주는 것 같았다.


분홍빛 진달래에게 '사랑한다' 수줍은 고백을 들었으며

노란색 생강나무에게 작은 존재이지만 용기를 가지라고 속삭이는 소리를,

바람에 흔들거리는 초록 잎의 이름 모를 나무들에게

흔들려도 좋다는 미소와

투명하게 비추인 호수 물에게 진실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머리 위 어디쯤에서 들리는 귀여운 새들의  맑고 고운 노래 소리에 취해 세상의 시름을 잊으라 말한다.

이어폰 사이에 들리는 어쿠스틱 팝송의 부드럽고 밝은 음악은 그 누구보다 사랑스럽다고 귀에 속삭인다.


오후 5시,

숲은 며칠 전에 왔을 때나

작년에 왔을 때나

십 년 전에 왔을 때나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새로운 것들이 피었고, 돋아났으며

지기도 하고 죽어가기도 했다.

새로움과 낡은 것들, 소멸과 탄생이 함께 하고 있는 곳이다.


오늘 나는 의식이 소멸해가는 세상에서

영원히 새로운 무의식의 날 것들을 바라보며

무한한 나의 에너지를 깨워 새로워졌다.


세상을 향해 늘 쫄보가 아닌

가끔은 그럴 수 있고, 늘 완벽한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한다.

오늘만은 특별히 용기를 갖기로 한다.

숲으로의 초대는 나를 새롭게 태어나게 한다.

아직은 을 피울 때라고 말한다.



숲이 나에게 얘기하는 것이 아니 내가 나에게 무언의 공간 속에서 신비롭고 아름다운 무의식으로 초대를 받았다.


숲에서 오롯이 나를 만났다.

                              나는 자연이자  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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