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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오후 5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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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 Mar 25. 2021

카프카의 '변신'

세상의 모든 언어들이 살아있다.

어제보다 해가 길어진 오후 5시는 한 낮이 되었다.

어느 때보다 한가한 일상의 발걸음은 나를 책방으로 안내했다.


책방 '카프카'

 <변신>이라는 작품으로 유명한 작가의 이름을 딴 것 같다.

어릴 적 읽었던 <변신>은 그 내용을 가늠할 수 없이 어려웠던 기억이 있다.

출입구에는 모자 쓴 카프카의 그림이 있었다.


이층에 위치해 있으며 책방과 카페를 겸하고 있고 책과 함께 다양한 소품과

작은 이벤트들이 소소하게 공간을 이루며 레트로 감성이 충만한 곳이었다.

나무 바닥은 어릴 적 학교 마루 마냥 삐그덕 거리고

어딘가 잘 못 밟으면 온 책방이 들썩이는 재미있는 곳이었다.

공간도 재미있고 재미있는 말들, 웃긴 말들, 아주 심각한 말, 야한 말, 무시무시한 말, 아주 어려운 말로 된 책들을 팔고 있었다. 때론 심각한 말들도, 아주 황당하고 어이없는 말들도 간혹 있다. 구석진 곳에는 밤마다 열리는 낭독회 때 떨어진 말들도 먼지처럼 쌓여 있었다.


공간 가득가득

책 속의 언어들로,

다양한 사람들의 각가지 사연들로, 머물면서 생겨난 영감의 단어들로 채워져 있었다.

무생물인 책에 숨을 불어넣는다. 언어들은 책방의 숨결이었던 것이었다.

나의 생각과 친구의 생각도 잠시 머무는 동안

카프카의 변신과 데미안 책 사이 어딘가에 끼워져 있을 것이다.

책방 공간에 한 부분을 지배하였다.


말들은 심연 깊은 곳에서 물에 젖은 고양이처럼 숨죽여 있다가

비슷한 상황이나 말을 들으면 화가 난 고양이 마냥 털을 세운다.

그 순간 말들은 내 육체의 전부를 지배하고 불을 지른다. 카프카의 벌레로 변신하는 순간이다.


"너는 커서 뭐가 될래" "네 까짓게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어?"

"계집애들은 안돼." "왜 그렇게 게으르고 느려 터졌어!"

"니 에미랑 똑같구나" "xxxxxxxxxxxx"

"네 동생 좀 봐라. 형 노릇 좀 해라." "형 좀 봐. 형 반만 닮아라."


"내가 너를 생각해서 말을 하는데 너는 xx만 고치면 될 것 같아. 그래도 내가 너를 좋아하니깐 얘기해주는  거  야" "다 너 잘되라고 하는 얘기야. 알겠지?"

"근데 너는 왜 그렇게 하는 일마다 안돼?"

"다른 부서 직원은 안 그런다는 데 우리 부서 직원만 이모양이야?"

"형이 되가지고 맨날 실패만 하고 동생 좀 본받아라."

"왜 너희들은 엄마를 힘들게 하냐?" "너네 엄마 아빠도 생각해야지. 참 자식들이."

독설과 비교, 책망, 비판의 단어들이 난무하는 세상이다.  어릴 때 들었던 말과 비슷한 말들을 들으면 갑자기 화가 난다. 말들이 내 몸 어딘가에 박혀 있었던 게 틀림없다. 책방을 지배하는 말들처럼 숨어 있었다.


나를 생각한다면 굳이 얘기하지 말아야 한다.

나도 내가 왜 하는 일마다 안되는지 모른다.

다른 부서 직원과 우리 부서는 다르고 형도 실패할 수 있다. 동생이 형의 반 도 못할 수도 있다.

엄마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은 이모보다 고모보다 더 잘 안다. 나도 엄마. 아빠 자식 안 하고 싶다.


이해, 존중, 사랑, 지지, 공감이란 말은 다 어디 갔을까?

그저 책 속에만 있는 단어들인가?

그런 말들을 가족관계, 친척관계, 직장 선후배 사이, 친구사이 등 수많은 사이 중간

어디에도 잘 찾아볼 수가 없다.  


말은 뱉은 순간 책임을 져야 한다.

그렇게 말을 하는 이들은 자신에게도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가?

아니면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한 것인가? 남의 자식이라 함부로 말해도 되는 권리가 있는 건가?

그도 아니라면 자신도 가혹한 삶을 살았기에 배운 것이 그것뿐이라는 말을 할 수밖에는 없는 것일까?

너는 너고 나는 다르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변명처럼 들린다.

나도 한때는 그랬으니깐. 변명으로 일관된 삶을 살았다. 하지만 이제는 멈춰야 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말은 줄일 수 있으면 줄이는 것도 좋고,

책임 지지 못할 말은 하지 않는 것이 좋으며,

가능하면 자주 침묵을 지키는 것도 괜찮다.

그도 어렵다면 책방을 자주 가는 것도 도움이 된다.


책방에 가면 말을 하지 않아도

말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오후 5시

'카프카' 책방 커다란 창문 앞에 말들을 두고 앉았다.

내 몸에 뿌리 박혀 있는 나쁜 말들, 무시무시한 말들을 하나씩 하나씩 뽑아내고

새로운 언어들로 채워본다.

예쁜 말, 고운 말, 사랑스러운 말, 지지의 언어, 이해의 언어, 공감의 언어들로,


나는 그런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를 만나는 사람들도 모두 그런 존재이기 때문이다.


허공을 떠다니는 수많은 말들은 사람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천당으로, 지옥으로 안내할 수도 있다. 말들이 사람을 지배할 수 있다.
말은 천사이기도 악마이기도 하며 언제든 벌레로 변신이 가능한 변신의 귀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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