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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오후 5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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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 Mar 12. 2021

완벽하게 촌스럽다.

사진

오후 5시 대기는 미세먼지로 흐리다.

내 마음도 온종일 흐리다.

그래서 길을 나섰다.


사방을 둘러보며 사진을 찍었다.

오후 5시의 풍경은

온통 흐리지만 맑고 깨끗하게 찍혔다.

사진처럼 마음이 깨끗하고 청명해지면 좋겠다.

사진 속에 갇혀 이제는 지나가버린 시간들의 허상처럼 깊은 시름이 모두 가짜이면 좋겠다.

숨 한 줌 들어가 있지 않은 이미지 속 아름다운 풍경처럼 고통과 아픔이 없으면 좋겠다.

고민과 좌절과 화와 외로움이 다음 컷을 넘길 때면 차례대로 없어지면 좋겠다.



나의 모습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어떤 사진의 이미지로 찍혔을까?

온종일 마음이 흐려도 사람들 앞에만 서면 금세 밝아진다.

온종일 바보 같은 행동으로 자책의 늪에 빠져 있을 때에도 사람들 앞에만 서면 금세 똑똑해진다.

온종일 슬픔에 가득 차더라도 사람들 앞에만 서면 금세 웃는다.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나는 잘 살고 있는 것처럼.

그냥 좋은 이미지로, 좋은 사람으로 보인다.


다른 사람이 중요하지는 않다고,

다른 사람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는다고 말은 하지만

나의 속마음과 겉모습은 달랐다. 아주 많이.


나는 좋은 사람도, 멋진 사람도,

더욱이 완벽한 사람도 아닌,

너무나 연약하고, 너무나 허점이 많고, 하루종인 헤매는 사람인 걸

모를까 봐. 나 자신을 속일까 봐.

두렵다.


가장 두려운 건

세상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어 하는 내 모습이다.

마음에 없는 소리와 과한 친절, 모든 사람을 공감한다는 극심한 착각

이 모든 것을 벗고 싶다.


완벽한 보정으로 없이 맑고 고운 피부와 늘 상냥하고 밝고 예쁘며, 아무 시름없는 가짜 이미지가 아닌

주근깨 투성이고 주름이 가득하며 근심, 걱정과 불안, 우울이 뒤섞여 있는 보정하지 않는 내 모습 그대로

나를 사랑해야 한다.

 

오후 5시의 사진 속에 나는

완벽하게 촌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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