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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 Sep 03. 2020

초보운전 완전 정복기

황금 마티즈와 함께

하늘에 걸려있는 구름들이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분명 신이 코로나로 지친 우리에게 선물을 보낸 것이 틀림없다. 동네 한 바퀴를 산책하려고 길을 나서는 참에 잠시 멋진 하늘을 보고 말을 잃었고 잠시 사색에 잠겼다.


 정신을 차리고 집 앞을 내려가는 데 앞집 시후 아빠가 또 차를 열심히 닦고 계셔 반갑게 인사를 했다. 그 자리를 내내 지키던 회색빛 나던 낡은 차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대신 번쩍이는 새 차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새 차는 푸른빛에 눈이 부시고 광을 내서인지 내 얼굴이 다 보일 정도로 번쩍인다.


나에게도 첫차가 있었다. 따뜻한 봄 어느 날인가 아버지가  마티를 가져오셨다. 일명 황금 마티즈. 친구 분이 타시다가 폐차하려는 것을 딸 생각해서 가져오셨다고 한다. 차는 덩그란이 앞마당에 있지만 20년 다 가도록 장롱면허로 운전대 한번 안 잡아본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운전을 해야 하는 운명이라는 것을 직감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남편의 도움으로 간신히 차에 올라 기본을 배워 집 뒤 공터에서 하루 종일 연습을 했다.

​열심히 연습한 덕분에 용기를 내어 동네 앞 도로 주행을 하기했다. 누가 못 볼까 아주 크게 초보운전 글씨를 써서 뒷 유리에 붙이고 시동을 걸었다. 중요한 시험보다 떨렸고, 첫 아이를 낳기 위해 수술대에 올라간 것보다 몇 만 배를 더 떨렸다. 발과 손동작이 협이 잘 안되었고 룸미러를 봐야 하는지 백미러를 봐야 하는지 깜빡이를 어디로 켜야 하는지 뇌가 오작동을 일으킬 것 같았다. 뇌는 벌써부터 꼬일 대로 꼬였고 오로지 직진이라는 기억 명령밖에는 없다. 세상의 모든 차는 나를 향해 달려왔고 여기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압도했지만 운전대를 놓지 않은 덕분에 무사히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한 나는 어느새 식은땀으로 온몸이 흠뻑 젖었다.

​그렇게 첫 시험운전을 나름 성공적으로 통과했고 다음은 시내주행. 시내는 일단 신호도 많고 직진이 아니라 유턴. 좌회전, 우회전. 신호 등등 장애물이 너무 많았고 내 옆에 손잡이를 꽉 잡고 잔소리를 해대는 남편이 가장 큰 장애 물이었다. 죽을 것 같이 힘든 건 나인데 본인이 화를 내고 있으니 어이가 없었다. 그래도 나를 위해 귀한 시간과 목숨을 걸고 동승해줬으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하며 꾹 참았다.

​운전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니 자신만만해졌다. 하지만 방심을 금물이란 걸 잊었다. 추운 날 히터를 빵빵 틀어놓고 한 가득 식구들을 태우고 허연 입김이 가득한 차 안은 밖이 보이지 않고 차선 변경하는 찰나에 꽝 들이받았다. 반대 차량의 사람은 목을 잡고 내렸고 사고에 대한 대책따위는 내 머릿속에 없었. 어찌할 바를 몰라 발동동거렸다. 내가 사고를 친것이다. 사고 대책은 둘째치고 너무 놀라고 떨려서 길바닥에 앉아 울고만 싶었다. 다행히 누군가 연락을 해서  남편이 왔고 다행히 해결이 되었지만 앞으로 험난한 운전 생활은 애교에 불과했다.

​그렇게 여러 번의 여곡절 끝에 이제는 운전 조금 할줄 아는 여자가 되었다. 황금 마티즈는 운전이라는 첫 경험을 함께 해주었고, 아이들과의 소중한 추억이 네 바퀴에 새겨져 전국을 달려주었다. 번쩍이는 황금 마티즈를 타고 경기도 평택까지 운전했으며 고속도로를 처음 탔던 그 긴장감과 공포심은 롤러코스터의 수만. 아니 온 몸이 마비가 되는 경험과 2시간 동안이 하루 종일이 되는 신기한 경험이였다. 그 이후 고속도로도 타본 여자로 한참이나 의기양양했었다.


운전은 처음은 모두 다 어렵다. 하지만 익숙하고 잘 다룰 줄 아는 요령이 생기면 많은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되어준다.

나도 모르는 어딘가 깊숙히 박혀있던 장롱면허를 꺼내 주었고 오르막길에서 뒤로 밀러 나는 극한의 경험도 주었지만 가장 중요한 전업주부에서 일하는 엄마로 나를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뛰어넘게 해 준 고마운 차이다. 그때의 황금 마티즈는 없지만 내 인생의 한 페이지를 멋지게 장식해준 소중한 벗처럼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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