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한창인 어느날 옛연인과 함께 들었던 노래의 설렘은 바로 전의식.코끝에 아련히 남아 있던 차안에서 풍기던 아련한 레몬향과 함께.
내가 나를 통제할 수 있는 환경은 바로 의식의 영역으로
배부르면 그만 먹거나, 힘들면 쉰다거나, 아이들 훈계하거나 기타 나의 사무적인 일처리는 통제 가능한 영역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내 말을 듣지 않고 거부하거나 반항할 때 그 안에는 내가 아이들을 내 욕망 아래 통제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어릴 때 나는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였다. 나와 다른 아이들이란 것은 중요하지 않고 나처럼 착한 아이가 되어 내가 부모로서 아니 내 부모님처럼 인정받고 싶은 권위만 내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노을이 지거나 밤이 찾아올 때 아무도 없다는 외로움이 밀려올 때는 어머니로부터 내려온 불안이나 우울의 기제로 멜랑꼴리한 무의식이나온다. 무의식은 내 의식 기억 너머에도 존재한다. 현재에 답이 없다는 것은 무의식의 너머 모체에서 이어지기도 하고 집단무의식으로 조상때 부터 내려온 세포의 기억이 세대간으로 전이될 수도 있다.
욕구가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해소하지 못했던 욕구가 짓눌리고 억압되어 무의식에 꾹꾹 담아 있기에 통제하기가 어렵고 간간히 누군가에게 나의 감정의 쓰레기를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하지만 절대 의식의 영역이 아닌 무의식의 영역이므로 나의 의식에서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그냥 아이들의 행동이 미운 것이다. 이유는 있겠지만, 별 이유는 없다.아이를 통해 내 무의식의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 결국은 내가 내 자신에게 화를 내고 있는 것이다.
그냥 남편이 미운 것이다. 이유는 있지만 옆에서 보면 별거 아닐 걸로 화가 나 있는 내 모습이 있다.
아버지의 상처로 인해 내가 남편을 통제하고 싶고 내 마음대로 조정하려는 모습에서
어느 순간 희열을 느끼고 있으며 아버지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해버리고 내 감정도 드러내고 꺼내지길 바랬다. 대상만 달라졌던 것이다. 어리고 약했을 때 하지 못했던 것들을 실컷 발산하고 있었다.
나는 불을 품는 용처럼 마음껏 질러대고 있다.
남편이 늦게 들어오는 것도 결국은 나로 기인되거라 할 수 있고 화가 나서 소리 지는 수순을 밟고 있다.
나의 감정이 꺼내지기 위해서는 남편이 늦게 들어와야 한다. 이것도 또한 나의 의식의 영역이 아닌 무의식의 영역이다. 잔소리 듣기 싫은 남편은 술을 먹고 늦게 귀가 한다. 그 악순환의 고리는 내 무의식에서 쉴새 없이 작동하여 계속 이어진다. 그 고리를 끊어 내는 일은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잠시 멈추고 나에게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