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산책 멤버들과 헤어져 혼자 걷는 길.
그 길 중간쯤 마당이 널찍하고 과수나무가 집 둘레로 심겨져 있는 집이 있다. 황토로 지은 집이 있고 허물지 않고 놔둔 옛집이 그대로 있는 곳에는 항상 웃는 얼굴의 맘씨 좋은 부부가 살고 계신다.
여름이 한창인 어느 날. 그날도 아침 산책을 하고 오는 길에 부부를 만났다.
집 둘레를 감싸고 있는 포도나무에 포도가 한창였을 때였다.
보랏빛으로 빛나는 알갱이는 터질 듯한 과육이며 먹으면 달콤한 향이 입안 가득 넘칠 것 같았다. 요 며칠 지나갈 때마다 한 개 맛보고 싶어 군침만 흘렸지만 선뜻 내 양심과 힘겹게 싸우느라 손 한번 뻗지 못한 먹지 못하는 달콤한 보석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건 지나갈 때마다 '포도가 익었는데 왜 안 따시지? 나무에서 건포도라도 만들려고 하는 건가?' 혼자 생각했다.
이 날은 마침 만난 김에 답답한 마음을 풀어볼 요량으로
"포도가 많이 열렸는데 왜 안 따세요?"
"그냥 내버려 두고 있어요. 새도 먹고 동물도 먹고 남는 건 우리도 먹지"
"와. 정말요? 그럼 저도 따 먹어도 돼요?"
"아유, 물론이죠. 마음껏 먹어요"
그 뒤로 몇 번을 지나갔지만 딱 한알만 따먹었던 것 같다.
사실 막상 먹으라고 하니 간절함이 사라졌다. 누구나 금기를 깨고 싶지만 깨어지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는 것처럼. 아니다. 맘씨 좋은 이웃의 말 한마디에 배가 불렀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은 그 집 앞을 지나가는데 사과나무에 열매는 져서 다 사라졌다. 빈 가지에 얼마 남지 않는 잎사귀만 푸른빛과 약간의 노란빛이 섞여 나무 끝에 달려 있었다. 하지만사과나무에 꽃이 피여 있다. 사과꽃은 4월에 피는 것 아닌가? 봄이면 분명히 새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처럼 화사하고 봄바람 마냥 다채롭게 피는 걸로 알고 있는데 요즘 계절에 상관없이 가을에도 철쭉이며 개나리가 핀다는 데 설마?
하지만 자세히 보니 보라색 나팔꽃이 제 집인양 자리를 잡았다. 가지를 감싸고 껴안고 유희를 하는 무희처럼
나풀거리며 사과를 꼼짝 못 하게 유혹하고 있다. 나팔꽃은 그냥 식물로 불리기보다는 나무가 되고 싶었던 걸까?
숲에 가면 커다란 나무들이 여러 작은 식물들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살기 위해 커다란 나무에 기대어 사는 작은 식물의 대담성도 자신의 몸을 내어주며 희생하는 나무도 다 살아가기 위한 방식이다. 누가 더 희생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우리는 대부분 어른들은 아이를 위해 희생한다는 말을 쉽게 하고,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일반 사람들에게 도움만 받는다고 생각하며, 나이 든 어르신들을 젊은 사람들이 돌봐준다고만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누구나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누구나 노인이 되고 누구나 몸이 불편할 수 있고 누구나 아이일 때가 있었다.
사과나무에 나팔꽃이 피었다고 해고 사과나무가 아니지 않고 나팔꽃이 사과나무에서 피었다고 사과나무가 될 수 없다.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나는 나다.
설령 내가 지금은 힘이 없어 누군가를 절대적으로 의지하고 있어도 내가 나인 것은 변하지 않는다. 그걸 인정하면 된다. 나의 에센스(본질)를 잃어버리지 말자.
나팔꽃은 사과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