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다감한 감 잡았다.

어리석은 인간의 성장보고서

by 나비

교회 뒷마당.

여러 개의 감나무가 있다. 총 5그루. 그중에서 한 나무 빼고는 다 앙상한 가지만 있다.

성미 급한 감나무가 내년을 미리 준비하려고 다 떨어뜨렸나?

혹시 지나가던 새와 한 무리의 친구들이 다 따먹었나? 아니면 성격 급하신 이웃 어르신들이 딴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혹시 목사님이 산책하다 배가 고파 하루에 하나씩 먹다 보니 전부 다 먹은 걸까?


"누가 딴 것이 아니라 한 개도 열리지 않아서 그랴"

"단 하나도 열리지 않았다고요?"

" 봐봐. 한 개도 없잖아. 올해는 한 개도 안 열렸네. "

성격 급하신 어르신이 대답하신다. 네 그루 모두 열매를 맺지 못했다고.

하지만

그중 한그루에 아주 작은 감들이 방울토마토 마냥,

귀여운 아기 코알라가 유칼립투스 나무에 매달려 있는 것 마냥.

올망졸망 열려있다.

귀엽다. 이렇게 작은 감은 처음 보았다. 감잡았다.

반짝이던 주황색 감들이 내 호주머니 따뜻한 곳으로 이사 왔다.


감을 잡아서 몇 개를 호주머니에 넣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울음이 터져버렸다.

왜? 무엇 때문인지?

슬펐다.


교회 가기 전에 친정집에 잠깐 들렸는데

오늘따라 엄마의 어깨가 유난히 굽어보였고 고왔던 얼굴에 주름이 너무 많아 보였다.

나와 비슷했던 키도 많이 줄어들어 나보다 머리 하나가 없을 정도이다.

너무 굽어버린 엄마의 등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감과 겹쳐 안쓰러움이 밀려왔다.

감이지만 더 이상 누군가의 입안을 향기롭고 달콤하게 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열매를 키워낸 감나무와

여러 가지 환경 때문에 힘들지만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향기마저 잃어버리면서까지

이제는 더 이상 젊지 않은 우리들과 아빠를 끊임없이 사랑을 주시는 엄마와 닮았다.


급히 가려는 나의 손에는 어느새 국화차가 들려 있었다.

향이 좋다며 기어이 물을 끓이고 마른 국화를 종이컵에 담아 따뜻하게 데워진 물을 부어

딸에게 준다.

"향기 좋지?""응""아빠가 앞마당에 국화 심었잖아.

그거 말려서 끓였더니 향이 끝내준다. 그렇지?"

"응. 응" 나는 대충 말하고 빨리 나왔다.


어릴 때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도 성격이 급하시고 불같이 화를 자주 내시는

아빠는 우리를 늘 호령하는 무서운 사람이었다.

하지만 농사일을 하시는 데는 워낙 능력이 좋으셔서 인근에 사는 사람들이 수시로 선물을 가지고

오셔서 조언을 구하셨으며 밖에서도 호인이라며, 멋쟁이라는 소리를 평생 들으셨다.


그랬던 아빠가 힘드시다고, 이제는 농사가 너무 힘에 딸린다고

하시는데 아무 말도 할 수가 없고 큰 도움이 되지 않아 미안한 마음 였다.

딸을 위해서 고운 국화를 말려서 손수 물을 끓여서 차를 우려내는 아버지의 따뜻함이

오늘도 감동으로 다가왔으나 마음 한편으로 감처럼 아빠가 자신을 쓸모없는 사람으로 생각할까 봐 슬픔으로 다가왔다.


나에게는 한없이 다정다감한 부모님이 계셔서 너무 행복한 사람이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알기까지 너무 먼 길을 돌아와야 했다.

비단 나뿐 아니라 부모님도 마찬가지란 걸.


모두에게는 시간이 필요하다. 내가 보기에 쓸모없을 지라도 열매가 익고 성숙해져야 하는 시간들.
그래야 다정다감해진다. 서로.
그렇다면 쓸모 있어진다. 누구나. 모두.
쓸모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듯이.
나에게 귀한 교훈을 준 호주머니 속 쓸모 있는 작은 감에게 내년을 기약하고 싶다.
고마워. 작은 감아.
너를 통해 어리석은 인간은 또 한 번 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