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벌레는 밤에만 나오나요?
두려움의 막연함에 대하여
어제저녁
작고 통통한 하얀 벌레가 꿈틀.
"내 눈에 딱 걸렸어" 약간 움찔했지만
그대로 화장지에 싸서 쓰레기통에 버렸다. 차마 꾹 누르지는 못했다.
그래도 생명이니 내 손으로 해결하긴 싫었다.
숨바꼭질이 시작됐다.
'벌레와 나'
벌레의 출처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또 다른 녀석들도 찾아야 한다.
움찔은 한 번만으로 충분하기 때문에.
찾으려는 인간, 숨어 있는 벌레.
하지만 녀석들은 천장도, 가스레인지 위에도, 벽에도, 바닥에도 보고 또 봐도 없다.
쌀벌레인가? 쌀이란 쌀은 다 보았지만 한 마리 작은 나방 외에는 없다.
쌀 말고 의심이 될 만한 것들을 다 꺼내고 살펴보았다. 하지만 허탕 쳤다.
어이가 없다. 아무리 봐도 그 벌레 놈이 나올 만한 곳이 없다.
오늘 저녁
거실 청소를 하려는 데 의자 아래 작은 밥알이 떨어져 주으려는 순간 꿈틀.
벌레는 살이 더 올라 작지만 더 통통해졌다.
이번에는 마른 천에 잘 싸서 밖으로 보내주었다. 밖에서 살라고.
두 번째는 움찔하기보다는 귀여웠다.
녀석들과 다시 숨바꼭질이 시작됐다.
찾으려는 인간. 숨어있는 벌레.
녀석들은 커튼 안에도, 천장에도, 의자 아래도, 바닥에도 보고 또 봐도 없다.
아무리 봐도 없다.
이제는 천장에서 떨어질까 봐 두렵고,
내가 자고 있는 사이 내 이불속에서 꿈틀거릴지 모른다는 생각에 또 움찔해졌다.
그러다가 잠시.
생각을 해보았다.
벌레의 생김새를.
벌레는 하얗고 작고 통통하다.
그렇다면 작고 날씬한 쌀벌레와 다르고, 음식물의 작은 초파리 벌레와는 다른
젖살이 오른 아기 마냥 작고 통통하고 하얗다. 그렇다면 그건 필시 밤...벌레?
어제 아침에 이웃이 주신 한 무더기의 밤이 싱크대 위 열려진 검은 비닐봉지속에 들어 있었다.
산에서 딴지 얼마 안 되었고 벌레도 많이 먹었다는 말이 이제야 떠올랐다. 예상한대로 범인은 바로 밤벌레.
노랗게 익은 밤의 속살을 먹고 자란 벌레였다.
"비쩍 마른 아이들 살을 찌우는 데는 밤만큼 좋은 음식이 없다"라고 어른들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래서 어제보다 오늘 본 녀석이 더 살이 오른 까닭이다.
온 집안을 밤벌레 밭으로 만들고 싶지 않아 안타깝지만 급히 봉지채로 냉동실에 넣었다.
열심히 노력한 보람이 있었다.
막연하게 두려웠는데 두려움의 출처를 찾아보고 천천히 생각해보니 해결이 되었다.
두려움이란, 막연함이다.
두려움을 막지 말고 천천히 생각해보라는 교훈을 주고 밤벌레는 떠났다.
그런데 왜 밤벌레는 밤에만 나오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