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갈참나무 등에는 초록 이끼가 피어있고 딱따구리가 남기고 간 커다란 구멍도 상처로 남아 있다.
지난해 태풍으로 몇몇 부러진 가지 끝은 찢겨 있으며 그래도 아직 울창한 나무의 늠름함은 내가 앉아 있는 공간을 지배한다. 나무줄기는 깊게 파인 아버지의 주름 마냥 고단하다.
"안녕?"
"안녕? 나무야?""오늘은 바람도 불지 않고 꽤 얌전하네. 노래를 잘 부르고 일을 꽤 잘하는 친구는 어디 갔는지 아침부터 보이지 않네?"
"그 친구는 누구야?"
"나에게는 많은 친구들이 찾아온단다. 항상 변하지 않고 이 자리에 있고 혼자인 듯 하지만 수많은 누군가가 깃든단다. 그중에서 나의 영혼의 친구 딱따구리지"
"아니. 그런데 너를 아프게 한 딱따구리가 왜 영혼의 친구야?"
"딱따구리가 나를 쪼아 구멍을 내는 일을 아파. 하지만 정말 나를 아프게 하는 건 보이지는 않지만 내 속을 갉고 있는 벌레야. 겉으로 보면 알 수 없는 벌레들이 내 마음 깊은 곳을 갉아먹고 있지. 딱따구리가 아니면 할 수 없어. 뾰족한 부리로 나를 쪼아대는 일은 아프지만 내가 여기 오래 살 수 있게 만든 친구지. 아픔이란 건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상처가 더 아픈 것 같아. 영혼의 안식을 바란다면 아픔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된단다."
내 옆에 서 있는 갈참나무는 자세히 보니 너무 많은 상처를 가지고 있다.
주의를 둘러봐도 상처가 없는 나무는 하나도 없다. 모든 만물은 살아내기 위해 상처와 아픔을 겪는다.
내 모습도 상처 나고 아픔과 상흔이 선명한 삶을 지나왔고 그것을 잊고자 부단히 바둥거리며 살았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아픔과 고통보다는 나의 무의식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상처나 아픔은 알 수가 없었다.
수많은 질문과 치유로 나의 무의식의 깊이를 어느 정도 들어다 볼 수 있었으나 아직도 더 들여다봐야 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딱따구리가 찾아와야 하는 이유이다.
이제까지 아닌 척 참거나 기분 좋아지려는 일련의 많은 행위(수많은 방어기제)를 하면서 그런대로 살았지만 이제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고 더 이상 피할 수 없을 때 상담실을 찾아온다.
때때로 내 상처를 오롯이 투사한 자녀나 배우자, 직장상사, 시부모님과 갈등 문제로 찾아오지만 결국은 본인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주변에서 역동(나로 인해 만들어진 결과물)이 일어난 것이다.
상담중 내담자가
가장 힘든 부분들은 바로 내담자 자신의 상처와 마주하는 일이다.
그냥 화가 나고, 그냥 그 자리를 피하고 싶다. 또 떠올리기가 싫다.상처 난 나의 마음 깊은 곳을 바라보는 일은 또 다른 두려움이다.
그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용기를 내고 오롯이 자신과 마주하면 치유가 시작된다.
그 마음은 내가 나에게 미안해서,
이제까지 방치하고 돌보지 못한 내 마음 때문에 한없이 슬퍼진다.
슬픔과 안도와 기쁨의 눈물이 마구 쏟아진다. 비로소 편안해진다.영혼의 안식이 찾아온다.
내 마음 깊은 곳의 상처는 얼마나 오래 나와 있었을까? 오늘 말을 걸어보자. 내 마음이 안녕한지. 언제부터 아프고 힘들었는지 내 영혼에게 묻고 또 물어보자. 비록 딱따구리는 없지만 내가 나 자신의 친구가 되어 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