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도 가을이 묻어 있나요?

사랑하기 좋은 가을.

by 나비

숲 속 나무집에 걸터앉았다.

커피 한잔 두고, 외로울 까 봐 싸라기눈 마냥 흰 고마리꽃과 아기자기 분홍빛 여귀 꽃과 함께.

발아래에는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다.

새와 아주 가까워졌고 나무의 수관 안에 들어 있다.하늘 가까이 나무 위에 올라 간 기분이다.

나무집은 이층 높이고 양옆으로 트여 있으며 나무 지붕이 얹어져 있다. 손을 뻗으면 나무줄기를 손쉽게 어루만질 수도 있다. 딱따구리가 파놓은 구멍도 보이고 혼자 상상하기 너무 좋은 곳이다.


주변의 색들은 가을이 오고 있다고 말하며 천천히 서둘지 말라고 경고를 보낸다.

조바심이 있다. 가을색을 얼른 만들어 달라고 형형색색의 빛깔들을 보고 싶다고.

하지만 가을이 깊어지고 온 숲이 아름답게 물들어가면 가을도 끝이 날 거란 걸 모른다.

천천히 가을을 느끼라고 숲은 나에게 이야기한다.


오늘의 숲은 공기가 차갑지만 신선하고 흐리지만 회색빛 하늘도 아름답다.

작은 바람이 일렁이자 작은 나뭇잎들이 소곤대며 까불자 갑자기 큰 바람이 불어와 온 나뭇잎들이 왁자지껄 노래를 부른다. 나무들은 빛에 반짝거리며 소리를 내고 바람에 거침없이 휘파람까지 불며 노래를 부른다. 나무들의 노랫소리에 맞춰 땅의 그림자들도 비록 소리를 내지 않지만 흔들거림으로 장단을 맞추기 시작했다. 바람은 자연의 지휘자였던 것이다. 자연은 바람으로 웅장한 연주를 하고 있다. 지휘자는 비록 연미복은 없고 보이지 않지만 분명 가을색으로 차려입었을 것이다.


나무에 달린 나뭇잎을 자세히 보니 다 제각각이다. 봄의 시작을 알린 벚꽃의 잎이 가장 많이 떨어져 앙상해졌고

바닥에도 가장 많은 잎들이 떨어져 바삭한 갈색으로 변해있다. 상수리나 참나무는 아직도 풍성한 잎을 자랑하고 있다. 이 산의 어른 나무인 키가 크고 우람한 플라타너스 잎들도 노랗게 익어가며 떨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도 가을을 지나고 있다. 한 해가 점점 기울고 있다. 2020의 날들이 가고 있지만 아직은 아쉬워하기에는 아깝다. 올 해를 더 많이 느끼고 더 많이 봐 둬야겠다. 다시 올 수 없는 날들이므로. 내 생의 마지막 날들이기에.

가을이 익어가는 것처럼 나도 성숙해지길 바란다.


<빨강머리 앤>과 <담보>라는 두 영화. 두 영화는 모두 부모가 아닌 사람들이 아이를 키우고 성장시키는 점에서 공통점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어른들도 성장한다. 삶이 통째로 바뀌었다. 로또보다 더 확실하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아이뿐 아니라 어른들의 인생도 바뀌는 일이므로 서로에게 다 좋은 것 같다. 여기에 나온 어른들은 모두 사회에서 비주류였다. 주류로 끼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자리도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로 인해 사회에서 평범한 삶을 살게 되었고 아이로 인해 기쁨과 행복이라는 감정을 배웠으며 또한 아이로 인해 불안과 걱정, 안쓰러움. 연민을 느끼게 되어 수많은 감정들을 아이로 배우게 되었다. 아이가 어른들을 생각하는 마음. 어른이 아이를 생각하는 마음. 바로 사랑.

사랑은 모두를 성숙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숲은 자연적으로 성숙해진다. 알맞은 때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씨가 맺힌다. 그 씨앗이 또 무한 반복이 되어 자연의 순환을 이루고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생명을 유지하게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연적으로 성숙이 어렵다. 그냥 살아갈 수는 있지만 성숙하여서 인생의 꽃을 피우는 사람은 적다. 사람은 동기가 있어야 한다. 아니면 어른들을 성숙하게 하려고 이 땅에 찾아온 천사들을 만나는 일이다. 천사를 만나기 어렵다면 바로 사랑하는 일이다. 꼭 자로 잰 듯이 정확하게 주고받는 사랑이 아니라 그냥 내가 조금 손해보더라도, 나의 소중한 것을 나눠줄 수 있는 넉넉한 사랑을 주는 것이다.

그건 그 누구보다 나를 위한 일이다.


나는 오늘도 거저 주는 자연에게서 무한한 사랑을 느낀다. 이 가을 자연처럼 나도 성숙하고 싶다.
사랑에도 가을이 묻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