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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 Sep 30. 2020

보름달의 빛으로 여물다.

감정의 에너지

황금색 쟁반을 힘껏 하늘을 향해 던졌더니 꼭 박혀 달이 되었다. 풍성한 한가위처럼 달도 풍요롭고 따뜻하다.

달과 경주를 했다. 달은 숲의 능선을 달리고 나는 논밭을 가로질러 달렸다. 집에 오니 달은 이미 앞서 가서 내 집을 비추고 있다. 작고 남루한 집이지만 그 빛으로 따뜻하게 나를 반긴다.


돌아가야 할 곳이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인지. 안전하고 편안하며 내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함께 할 가족이 있다는 건 축복이다.


아이의 집은 무서운 곳이었다고 한다. 언제 올지 모르는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의 눈에는 말라버린 눈물자국과 식어버린 밥상이 있었다. 슬픔보다는 엄마가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 공포가 있었다. 귀신보다 좀비보다 더 무서운 건 나를 지켜줄 엄마가 사라져 버릴 것 같은 두려움.


무서움과 두려움이란 누구에게나 있는 감정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 몸속 깊이 새겨져 있다. 사나운 맹수들 사이에서 다른 부족들의 침범을 지키기 위해 두려움이 생겼다. 두려움이 없었다면 튼튼한 울타리도 견고한 성도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는 엄마가 "너를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 어쩔 수 없어. 엄마도 힘들어"라는 말을 이해하고 받아줬다. 더 꿋꿋이 버텼다. 넘어져서 무릎이 까져도 혼자 일어났고 친구랑 싸웠을 때도 내 편이 되어 줄 사람은 없어 혼자 그 마음을 묻어놨다.


슬픔이나 외로움은 느껴지지가 않는다고 했다. 슬픔이나 외로움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공포, 엄마가 돌아오지 않는 두려움은 아마 가장 원초적인 감정 바로 생존이다. 엄마가 사라진 다는 것은 바로 나의 생존을 위협받는 것이다. 살기 위해 엄마를 붙들어야 한다. 붙들기 위해서는 어린 나이임에도 어른처럼 행동하고 오히려 부모를 걱정해야 한다.


마음을 꽁꽁 묻어둔 채 착한 아이로 공부를 잘하는 아이로 지금은 인정받는 어른으로 자랐다. 하지만 다른 사람과 소통이 어렵다. 무엇이 문제인지 도저히 알 수 없다. 다른 사람의 상황은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으나 마음을 알 수 없다. 꽁꽁 닫혀있는 감정. 어릴 때부터 혼자 해결했던 감정이 흐르지 않았던 것이다.


소통이란 말은 트일 소. 통할 통으로 트여서 통한다는 것. 먼저 나 자신의 감정이 트여있지 않고 막혀있다면 타인과 통하지 않아 결국에는 소통이 어렵다. 감정은 트여야 다른 사람으로 흘러들어 간다.

모든 감정을 내 몸이 받아들여 피처럼 흐르게 해야 한다. 피도 어딘가에서 막히면 죽을 수도 있듯이 감정이 막혀 있으면 답답하고 숨이 막힌다.


먼저 아이였을 때의 감정을 인정하고 받아줘야 한다. 내면의 아이가 울고 있고 공포와 불안의 감정을 알아야 하며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내면의 아이가 성장할 수 있다. 자신을 스스로 통제하고 억압했던 감정을 아이의 때로 돌아가 그대로 느껴야 한다.


아이의 공포심은 하나의 감정이 아니고 복잡하다. 공포심 너머에는 그리움과 슬픔, 외로움, 막연함, 불안과 걱정스러움, 불편함 등등 수많은 감정들이 들어있다. 그 많은 감정을 꼭꼭 싸매고 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반면 즐거움, 기쁨, 안전감. 고마움. 만족감 등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아이는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면서 살았던 것이다.

작은 감정이라도 느끼려고 노력해야 한다.

작지만 감사한 일이 얼마나 나의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지. 그냥 살아있음이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눈으로 한 송이의 장미를 바라보는 것은 황홀감을 주며, 이웃이 건네는 다정한 말 한마디에 고마움을 느끼며, 아기의 미소를 보는 것으로 기쁨을 느낄 수 있다. 차를 타고 가다 끼어들면 분노가 일고 사춘기 아들과 대화하다가 화와 짜증이 올라오며 슬픈 뉴스를 보면 슬픔과 격노, 걱정되는 감정들은 느낄 수 있다.


우리는 살아있기 때문에 감정을 느낀다. 우리는 모두 태어날 때부터 모든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놀라운 아이였다.
내 감정에 에너지를 집중해본다.                                           

비록 허름하고 누추한 집이지만 내 머리 위에 밤새 지지 않고 나를 밝게 비추는 보름달이 있으며 온 우주의 빛으로 나에게 포근함과 따뜻함을 주며
비록 나의 존재는 한없이 연약하고 부족하지만 내 무의식 깊은 곳에도 지지 않고 늘 나를 밝게 비추는 내 자아가 내 존재 자체로 빛날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며
네가 자랑스러워. 네가 사랑스러워. 네가 있어서 기뻐.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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