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차갑다. 찬바람이 옷깃과 코끝에 닿았다. 겨울이 오려나보다. 아침 산책길이 고추장처럼 제법 매워졌다.
오늘은 원년 멤버가 아닌 새로운 사람과 걸었다. 걷는 건 두 번째이지만 한 동네에 산지는 3년이 다 되었다. 우리는 문만 열고 나가면 보이는 앞 뒷집에 산다. 그녀의 이름은 모모
그녀는 작은 체구에 귀엽고 사랑스러운 미소를 지녔고 외향적이고 밝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의젓하고 귀여운 큰딸과 장난꾸러기면서 쑥쓰럼이 많은 막내아들, 훈남 남편과 함께 살고 있다. 나와 국적도 생각도 다르지만 나이도 동갑이고 비슷한 면도 많이 있다.
모모는 회사에서 파견근무로 영국에 있을 때 유학 중이었던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고 한다. 결혼하고 이 곳 군산으로 남편의 직장 따라서 함께 왔고 지금까지 줄곧 살게 되었다고 한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시내에 살다가 지금 이 곳 시골마을까지 오게 된 것은 아이들에게 편안한 환경과 자연 가까이에 살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지금 사는 곳은 만족하고 특히 산이 가까워 매우 좋다고 하였다. 앞집 창문으로 비추이는 우리 집 풍경에 가을이 왔노라고 어느새 커다란 나무에 노란빛으로 물이 들었다고 하며 우리는 다른 집에 살지만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날. 날이 너무 좋아
"혹시 오늘 시간 있으시면 함께 걸으실래요?" 라며 전화를 걸었다.
"아. 오늘은 남편이랑 일이 있어서 나왔어요. 미리 전화를 주시면 좋아요. 혹시 다른 날은 미리 전화 주면 괜찮아요.""그럼 내일 어떠세요?" "네 내일은 괜찮아요." " 제가 집에 있어도 집안일을 잘하지 못해 시간이 많이 걸려요. 그래서 미리 시간을 약속해주시면 좋아요."
나는 또 실수했구나 생각을 했다. <미리 전화를 주면> 맞아. 나는 약속을 하지 않았다.
지난번에도 미리 전화해서 약속을 잡지 않았던 기억이 났다.
사람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습관을 버리는 것이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네에서는 그냥 전화를 해서 "오늘 걸을까?" 하고 '시간이 되면 만나고 안되면 만나지 말면 되지'라고 약속을 미리 하지 않는 것에 익숙했었다.
미안한 마음이 드는 순간 어쨌든 오늘이 괜찮다는 약속으로 우리는 집 앞에서 만났다.
우리는 색색으로 물든 작은 오솔길을 함께 걸었다. 우리 사이의 다정한 만큼 길도 다정했다. 모모가 이야기하고 나는 주로 듣는다. 어떤 생각인지 궁금할 때에는 주로 물어보는 건 나이고 모모가 대답을 한다. 주거니 받거니 우리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였다. 발음이 꼬이거나 받침을 간혹 빠뜨릴 때는 잘 못 듣기도 하면서. 그래도 한국말을 아주 잘한다.
학원을 보내지 않고 사교육을 반대하는 의견에서는 나와 비슷했다. 학교에서만 배우면 되지 왜 또 학원을 가서 배워야 하는지 아이들이 불쌍하다고. 마음껏 뛰어놀고 즐거운 학창 시절을 보내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러니까 우리나라가 언제부터 이렇게 사교육을 많이 시켰을까? 아이들이 사교육을 안 받고 그 시간에 좋은 일, 즐거운 일 많이 하고 살면 좋겠다.' 잠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검소하고 작은 돈이라도 허투루 쓰지 않는다는 말에 귀감이 되었다. 아이들 옷이며 책이며 장난감 등 비싼 물건들은 거의 사주지 않으며 오히려 시어머니가 아이들 좋은 옷 사라고 돈을 보내주신다고.
"아이들은 금방 크는데 비싼 것을 사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깨끗하게 입으면 될 것 같은데요."라고 한다. 정말 백 프로 공감이다. 하지만 나는 겉으로 보이는 것이 더 중요하게 생각된 적도 많았다. 형편이 안되는데도 아이들 교육이나 먹는 거. 입는 거 풍족하지는 않아도 다른 사람보다 떨어지지 않으려 애썼던 것 같다.
남편과도 서로 관심분야도 생각도 다르다고. 하지만 그 다른 것을 가지고 싸운 적이 거의 없다고 한다. 나는 다르기 때문에 그 부분을 인정하기 싫어 싸운 적이 많았다. '뭐지? 나는 혼란스러웠다."다르면 갈등이 생기고 갈등이 싸움의 원인이 되는 것 아닌가?" "저는 의견이 다르면 큰소리도 내요." 모모의 눈이 동그래졌다. 다소 위협적이었나 보다.
다름을 인정한다고 한다. 각자의 생활을 인정하고 그러면 싸울 일이 거의 없다고. 시어머니 사이에서도 의견 차이가 많고 조금 힘든 부분이 있지만 많은 부분을 수용하고 또한 거절도 부드럽게 할 말은 한다는 말에 어는 곳이든 시댁은 어려운가 보다.
나는 오늘도 배웠다. 한수를.
모모의 삶은 나처럼 복잡하지도, 많은 일을 하지도 않는다. 대신 삶이 간소하고 단순하며 기본에 충실한 느낌, 현실에 충실한 느낌이었다. 여유로워 보이기도 하고. 또한 타인의 삶, 아무리 가까운 남편이라고 해도 인정하고 존중하는 모습에서 나의 감정 그릇이었던 남편에게 또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나름 고민도 많고 타국에서 외롭기도 할 것이다. 아무리 이곳이 제2의 나라이고 사랑하는 가족이 있지만 고국에 있는 친구도 부모님도, 그립고 그리울 것이다. 애써 밝게 웃고 명랑한 그녀의 마음이 한편으로는 쓸쓸하게 느껴졌던 이유였던 것 같다.
생각이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한 그리고 배울 점이 너무 많은 동갑내기이면서 이웃인 모모가 있어서 오늘 참 행복했다. 그녀도 오늘 행복했기를 마음속으로 소망해본다. 오후의 햇살처럼 부드러운 미소의 일본 아줌마 모모가 생각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