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사이 모두 안녕하길 기도합니다.

힘들더라도 함께 행복한 길을 찾는다면

by 나비

아침은 여전히 그대로이다. 따사로운 햇살 가운데 서 있는 봄이도, 언제부터 인가 우리 집이 지 집인 양 누워있는 털북숭이 떠돌이 개도 밤사이 안녕하다. 다행이다.


이웃집과 함께 주문한 택배가 와서 눈뜨자마자 방문하였다. 어느새 내가 좋아하는 풍부한 바디감의 커피가 들려져 있다. 간편한 캡슐커피로 이 집에 방문할 때마다 맛있다고 연신 함박미소를 지었던 나에게 잊지 않고 커피를 건네는 이웃 언니가 고마운 아침이다.


그 길로 걸었다.

오늘은 혼자서 걸었다. 함께 걸었던 다정한 벗들은 지금은 다 어디 갔고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궁금하던 찰나에 내 앞에 이웃이 나타났다. 바로 붉은 단풍나무에 걸려있는 노랑 검정 줄무늬 옷을 입은 무당거미. 커다란 몸짓을 하고 거미줄 붙어 똥꼬에서 연신 거미줄을 뽑아내고 있었다.

"안녕?" 그 말에 순간 얼음땡하고 얼어붙었다. 계속 쳐다보아도 움직이지 않는다.

순간 나는 포식자가 되었다. 거미를 위협하는 나를 거미 녀석이 무서워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먹이를 잡으려고 열심히 배수진을 치고 있었는데 자기도 잡아 먹일까 봐 정말 쫄고 있는 모양새가 재미있다. 참기름보다 고소하다. 거미 놀리는 재미가 좋다. 역시 누군가를 골리는 건 재미있다.


어제와의 추억과 꼼짝하지 않고 있는 거미에게 안녕을 고하고 또 걸었다. 집으로 걸어오는 길 위에서 이웃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했다. 내 손에는 어느새 포도 한 송이가 들려있었다. 포도를 먹고 있었는데 반을 뚝 떼어서 주었다. 연한 보랏빛 포도를 한 입 넣었더니 입안이 상큼하고 시었다. 여름이 지났는데 늦된 열매가 있었나 보다. 아직 덜 숙성되었으나 더 이상 나무에 달려 있으면 안 되므로 떨어뜨리기 전에 딴 것 같았다. 포도를 봄이 와 나눠먹었다. 생전 처음 먹어보는 것이라 어색해서 연신 뱉어 내더니 어느새 달콤함을 알게 되었는지 또 달라고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사랑스러워 나도 반을 뚝 떼어 주었다.


저녁이 다 지난 상담실. 오기로 한 상담이 미뤄졌고 퇴근 준비하려는데 전화가 울린다. 늦더라도 가면 안 되겠냐는 말에 기다리겠다고 오라고 한 얼마 후.

들어 선 아이의 몸에 상처가 나 있었다. 얼마 전 빗길에서 웅덩이에 미끄러졌던 아이. 오늘도 아프다. 하지만 미끄러질 때보다는 아프지 않다며 헤헤거린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마음이 더 아프다는 것을 알기에 너무 속상하고 또 속상했다. 아이가 힘든 것보다 더 감당이 안 되는 건 어른들의 태도이다.


아이와 유일하게 친한 친구 엄마는 우리 아이와 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며 힘든 아이와 엄마의 마음에 또 한 번의 피멍이 들게 한다.

그 아이가 도움을 준다면 아이는 친구로 용기를 가질 수 있을 텐데. 부디 아이의 친구 엄마가 아이를 편견 없이 바라보면 좋겠다. 아이가 나쁜 영향을 받을까 봐 걱정하기보다는 우리 아이가 그 아이의 희망이 되어 준다면 그렇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희망적이지 않을까? 그건 어쩌면 모두에게 좋은 일일 텐데.


또한 아이로 인해 파생된 여러 가지 일련의 일들로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어른들의 모습. 아이의 주변에는 아이를 이해할 수 있는 어른들이 없다. 아이가 화가 나게 한다. 맞다. 힘든 과정을 겪는 아이는 거칠고 함부로 행동한다. 아이 자신도 자기가 하는 행동을 이해할 수 없고 혼란스럽다. 하지만 그 행동으로 어른들의 해결되지 않았던 무의식이 건들어진다. 아이가 문제가 아니라 결국에는 어른들이 문제라는 것이 여실히 드러나는 상황이다. 어떡하면 좋을지 복잡해진다. 하지만 아이의 말 한마디가 나를 울린다.

"선생님에게 긴장을 풀고 완전히 의지하면 어때?"

"싫어요. 저 혼자 해결할래요." "하지만 긴장하면 더 실수할 수 있어"" 맞아요. 하지만 그게 잘 안돼요."

이제까지 살면서 아이 주변 어른들을 믿을 수가 없었기에 아이는 늘 혼자 자신의 방식으로 살았던 것이었다.

이제 와서 네가 틀렸다고 한다. 정작 이 모든 것의 중심에서 아이는 없다. 미성숙한 어른들만 가득하다.

아침에 만난 긴장 가득하고 꼼짝하지 않았던 무당거미의 그 모습과 겹쳐 재미있지만은 않다. 슬픔이 밀려온다.


오늘 하루의 여정을 바라보면 나는 결코 혼자 살 수 없다는 것을 여실히 알 수 있었다.

아침에 만나 커피 한잔의 이웃 언니. 포도 한 송이를 반으로 나눠 함께 한 길 위의 이웃. 숲길에 만난 아이들.

저녁에 만난 아이. 하루 종일 도움을 받았고 도움을 주었던 날들이었다.


한 아이가 상담실 문들 두드리지만 그 안에는 수만 가지의 부조리와 편견들. 차별. 아픔. 해결되지 않는 갈등들 등등등이 함께 온다. 또한 아이가 만나는 세상이 한꺼번에 찾아온다.


밤사이 아이가 안녕하길 기도한다. 거미줄에 꼼짝하지 않았던 무당거미도, 다정한 이웃들도 안녕하길.

이제 우리 모두는 시지않고 성숙해지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