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는 치유의 메세지

확찐자의 걷기 충만한 하루

by 나비

걷는다는 건 어제 덜 쓰인 잉여의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고

숯불에 구울 때 지글거리며 태워지는 지방이 비록 아니더라도 내 마음에 간절한 지글거림으로 간질거리게 태워지길 바라는 위이다.


십장생 같은 식욕을 참지 못하는 일인으로써 코로나가 또한 좋은 기회가 되었다.

외부로 나가는 일은 줄어들고 의자에 앉아 작업하는 시간이 길어짐으로 나의 헛헛함과 뇌에 과잉 소모된 에너지로 탄수화물의 공급이 절대적으로 많아진 나는 어느새 확 찐자가 되었다.


마을 산 입구에 나타난 다른 확찐자들과 접촉하여 그 누구도 다르지 않은 하얀 마스크로 부스스한 얼굴을 가린 채 연병장에 한 줄로 선 까까머리 군인처럼 줄을 맞춰 걷기 시작했다.

마스트로 입은 가렸지만 쉴 새 없이 새어 나오는 수다와 깔깔거리는 웃음은 아침에 벌레 잡으러 다니는 새들을 기겁하기 충분했고 산의 무법자인 멧돼지조차 얼씬 못하게 막아버리는 우리는 아무것도 무서울 것 없는 확~찐자다.


일렬종대로 걷는 우리는 천천히 걸으면 걷는 대로 빨리 걸으면 걷는 대로 맨 앞사람의 충실한 신하가 되어 뒤따른다. 혹여라도 낙오가 될지도 모르는 마음에 뿌리에 걸려도 휘청은 하지만 필사적으로 넘어지지 않으려 하고 낙엽에 미끌거려 뒷사람이 "괜찮아?" 하면 "응, 괜찮아" 나 혼자만 심장이 덜컹거려도 표 내지 않는 것이 우선이다. 나보단 우리가 먼저라는 마음으로 하나 되어 움직였다.


혼자 걷는 길도 재미있지만 단체로 줄지어 가는 것도 재미있는 건 뭐니 뭐니 해도

쌍방향 토론이라 말하고 수다라고 이름 짓는 행위, 바로 이야기. 영어로는 Talk.

여러 주제를 망라한다. 정치, 사회, 교육, 환경 그중에서 가장 오늘의 핫한 주제는 바로 <지네> 이야기.


" 내가 양말이 젖어서 잠시 빨랫줄에 걸어놨다가 다시 신었거든. 뭔가 내 발을 깨물고 있는 느낌이 들어 양말을 벗으니 그 속에서 커다란 지네가 나왔어" 우리는 모두 제 양말에 지네가 나온 양 호들갑을 떨었다.

"근데 그건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자고 있는데 뭔가가 타고 있는 거야. 불을 켜보니 이불서 나오는 거야!"

헉. 오늘 밤 자는 건 쉽지 않겠다.

"우리 남편은 벌레를 하도 무서워해. 어제는 지네가 나왔길래 옆집 닭 키우는 어르신 갖다 드리려고 잡아놨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사라진 거야. 근데 남편이 막 화를 내는 거야. 왜 놓쳤냐고. 내가 놓치고 싶어서 놓친 건가. 지 발로 기어나갔는데. 다행인 건 아침에 욕실에 있어서 잡았어." 남편의 과거 커다란 벌레를 기겁했던 장면과 캡처돼 더 생생하였으며 모든 남자들이 씩씩하다는 건 심각한 오류임에 틀림없는 사실이 되었다.


시골에 사는 여건상 앞으로도 자주 벌레에 대한 주제는 다양해질 것이고 지네 목격담과 피해 사실은 더 많이 늘어날 예정이어서 불안하지만 웃기기도 했다.

우리들의 이야기도 재미있지만 가까운 곳에 들리는 새들의 재잘거림과 바람결에 찰랑거리는 나뭇잎의 말들. 작은 꽃들의 소리 없는 미소에 들어있는 수많은 이야기와 나무줄기의 겉은 울퉁불퉁하고 거칠지만 그 나무에서 피어오르는 붉은 열매의 달콤함은 더없이 마음에 평화를 가져다줬다.


산 하나를 넘어서 다시 돌아온 처음이자 끝인 곳에서 우리는 헤어졌다. 내일을 기약하며.

멀어져 가는 뒤통수에 대고 '오늘도 파이팅' 조용히 작별인사를 건넨다.


모두들 이미 떠올라 붉어진 태양 속으로 총총총 사라졌다.

오늘

확 찐자가 확 날씬해질 수는 없지만 걷는 내내 다리와 발의 섬세한 근육과 조직들이 중력의 힘으로 우주 어디론가 날아가지 않게 잘 버텨 줬고 팔과 머리, 몸통이 균형을 맞춰서 잘 걸을 수 있게 해 준 내 몸에게 고맙다.


또한 나를 반갑게 맞아 준 자연, 더없이 나에게 많은 것들로 채워준 자연의 위대함에 또한 감사한 날이다.

함께 걸어 덕분에 외롭지도 무섭지 않았으며 왁자지껄 유쾌한 순간들은 만들어 준 님들에게 감사한 날이다.

감사함이 샘솟게 만드는 걷기는 나의 치유의 메시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