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밖에 안 남은 감이 감나무에 맺혀 있다. 싱그러운 오렌지 빛깔에서는 달콤하고 부드러운 향기가 난다. 이 감마저 떨어지면 가을은 끝이 날 것이다. 가을이 끝나기 전에 오늘도 열심히 아침 산책길로 향했다.
다정하게 둘이 걷는 가을길 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간 발길이 묻어 있었다.
빨리 산책을 끝나고 어디로 가려는 다급한 발걸음도, 앞사람과의 보조에 맞추기 위해 부단히 움직이는 성급한 발걸음이, 천천히 가을을 음미하며 하루를 계획하는 느긋함에도, 오늘 밤 매력적인 연인과의 데이트에 셀레기도 한 발걸음도, 학교 가는 아이와 아침부터 전쟁을 치르느라 기진맥진한 발걸음 등, 수많은 감정들이 소리 없이 낙엽 위에 굴러다닌다.
이렇듯 우리가 걷는 길 위에 사람들의 감정이 다 다르고 성격도 그 생김새도 다 다르다. 나에게는 피곤함을 물리치고 걷는 발걸음에는 피로회복제 한 병 마셔 불끈 힘이 솟은 에너지와 신선함을 내뿜는 숲의 기운 때문에 상쾌하였다. 좀 더 누워있고 싶었지만 그 마음을 이기고 일단 숲 안에 들어서는 순간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오늘도 어제와 다른 풍경의 길들을 걷고 또 걷는다.
오늘의 주제는 인구주택 총조사.
함께 동행한 언니가 요즘 하는 부업이다. 나도 10여 년 전에 한 번 했었는데 아이들 학교에 갔을 때 잠깐의 소일거리로 돈을 벌 수 있었고 세상에 나가는 통로이기도 했었다. 그 당시에도 정기적으로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일 년에 여러 번 하다 보니 가정경제에 적지 않은 보탬이 되었다고 했다. 나도 물론 사고 싶은 것을 못 사고 살았던 때 였기에 100만 원이 넘는 목돈이 들어와서 힘들었지만 보람이 있었던 기억이 있다. 아이들과 내가 원하고 사고 싶었던 것을 사기도 하고 생활비에 보태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때 가장 힘들었던 건 개였다. 풀린 개도, 너무 사납게 짖는 개들도 너무 무서워서 한참을 서성이기도 했고 그냥 집으로 오기도 했었다. 특히 집 앞에 <개조심>이라고 씌어 있는 곳은 몇 번을 가도 용기가 나지 않아 결국에는 동네 이장님 찬스를 쓰기도 했었다. 정이 많은 분들도 있었는데 힘들다고 감이며 과자와 사탕을 주시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런 걸 왜 하느냐며 역정을 내시다가도 우리를 관리하시는 분이 전화를 하면 바로 순한 양이 되어 바로 협조하는 것을 경험하였는데 그 관리자는 인구조사 베테랑으로 선발되었다는 말이 사실로 입증된 순간이었다.
옛날 생각에 잠시 잠겼을 때 언니는 시골에 돌아다니며 느꼈던 마을 이야기를 해주었다.
10년 전에 내가 조사했을 때와는 달리 시골에 혼자 사는 어르신들이 너무 많았고 부부나 자녀와 함께 사는 분들은 거의 없다고 했다. 가장 힘든 건 외롭다며 우시는 분들. 경로당 욕을 하지만 자신을 가지 못하는 것에 화남과 속상함을 원망으로 풀어내시는 분. 사연이 기구한 분들이 너무 힘들게 사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자식들 거의 출가시키고 밭일이나 공공근로로 소일거리 하면서 살거나 그마저도 안 되는 분들은 노령연금에 의지해서 사셨으며 복지혜택이 없었으면 진짜로 힘든 어르신들이 많을 것 같다고 하였다.
하지만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가장 걱정이 되는 건 어르신들의 마음 건강이었다. 평생 권위적인 남편에게 억눌려 살았으며 여자라고 배우지 않아도 된다거나, 집안일 때문에 학교를 다니지 못한 것이 한이 되었고 오롯이 자식들을 보고 살았는데 자식들마저 떠나니 마음이 공허하고 살 이유가 사라진 것이었다.
또한 평생 힘들게 자신은 못 먹고 못 입었으나 자식들을 위해 헌신하였으나 그것에 대한 보상이나 인정을 받기보다는 자식들이 부담으로 작용하고 자식들이 힘들까 봐 힘들다는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한을 마음 깊은 곳에 내제화했다. 그로 인해 가장 가까이에서 지낼 이웃이 자신의 평생에 표현 못한 한들의 창구가 된 것이었다. 그러인해 관계가 어려워지고 또 모든 것을 차단하며 살고 그 안에서 또 외로움을 느끼시고 그 우울감으로 또 예민해지시고 그러면 또 갈등을 만들고 악순환이 되는 것이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노인의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률이 높아지고 몇 년 전에 농약 사이다 사건이라든지, 농약 소주 사건들 등 정말 어르신들의 생명이 위협받고 있다. 마을마다 경로당이 있고 수십 년을 함께 지내온 사람들이 서로 생명을 걸고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바로 미해결 된 각자의 문제가 있는 것, 그것을 해결해야 한다. 또한 덮어놓고 좋은 게 좋다는 식의 감정표현들, 시기와 질투의 마음 안에는 사랑받고 싶고, 관심받고 싶은 욕구들이 켜켜이 쌓여 꺼내지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그 마음이 꺼내져야 한다. 어르신들의 마음 깊은 곳에 응어리져있는 수많은 것들이 풀어져야 하며 이야기되야 한다. 또한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현재의 마음이 과거 어디서 부터 왔는지 그 마음을 들여다 볼수 있는 심리지원서비스도 절실하다. 치매에도 정신적인 부분들이 크게 좌우할 정도이니. 마음속에 응어리를 많이 가진 분들에게는 특히 치매가 아주 심하게 올 수도 있다고 했다. 나를 잊어버리는 것이 차라리 나을 것 같아서 그럴까?
항상 부모님 집에 가면 "우리가 엄마. 아빠 때문에 살았고 지금도 그래. 엄마. 아빠는 너무나 소중한 사람이야"라고 하면 너무 좋아하신다. 가식이 아니라 진짜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진심으로 존중해 줄 마음이 절실히 필요하다.
아침산책 길 끝에 만난 커다란 플라타너스 나무. 나무에는 수많은 잎들이 달려있고 늠름하고 아름다운 젊은 청년 나무였다. 청년 나무 같았던 분들이 어느새 세상에서 가장 작고 볼품없는 마른나무가 되었다. 이제는 겨울이 왔고 낙엽 마저, 하나 남았던 감 마저, 다 사라진 곳에서 살려고 오늘도 몸부림치는 나무가 되었다.
그 나무도 한때는 비가 오면 그 아래 작은 나무들에 비를 막아주었었고
밤새 태풍이 불고 바람이 불면 잠도 안 자고 한컷 팔을 벌린 수관으로 감쌌으며. 눈이 와서 얼어붙으려 하면 자신을 추위에 떨어도 나뭇잎을 다 떨어뜨려 따뜻하게 덮어줬으며, 벌레가 해치려고 하면 자신의 팔을 대신 내주어 당신이 대신 아파했었다.
그로 인해 작은 나무는 건강하게 잘 자랄 수 있었다. 하지만 나무가 청년이 되고 성인이 되어도 잘 모른다.
이 나무도 언젠가는 노인이 되면 그때나 알 수 있으면 다행이다.
어르신들 한 분 한 분 소중하지 않은 분 들은 없다. 오늘의 낙엽 속에 박혀 있는 수많은 족적만큼 어르신들의 세월이 이 세상에 많은 족적을 남겼는데 이제는 꼰대로, 늙은이로, 세금을 축내는, 냄새나고 별 볼일 없는 분들이 되었다. 하지만 나도, 우리 모두도 그렇게 될 것이다. 현재도 중요하지만 세월을 이기고 살아오신 분들이 존중받아야 함을 마땅하다.